본문 바로가기

사건과 신학 1기/성착취 폭력사건, n번방

야만은 침묵을 먹고 자란다. / 김신애

 

김신애 목사( YWCA아카데미위원회 위원, 인천기독교신문사)

 

2019년 11월 28일 텔레그램 성착취를 기획보도한 한겨레 취재팀의 오연서 기자는 후기에서 후속보도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연말까지 단 한 건의 기사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감당해야 했던 정신적 압박보다 이때 느낀 세상의 침묵에 훨씬 더 큰 무기력감과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침묵의 시간은 길었다. 트위터에서 ‘경찰사칭 성폭행 사건’으로 알려진 것은 2018년 8월 경, 당시 n번방 가담자의 경찰 신고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2019년 1월 서울신문, 4월 시사저널, 8월 전자신문에서 ‘텔레그램 불법촬영물 공유’와 n번방에 대해 보도했고 같은 해 7월 추적단 불꽃이 텔레그램 성착취에 대해 취재, 자료 등을 경찰과 언론에 제보한 뒤 경찰수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9월 구속된 고담방 운영자 ‘와치맨’은 고작 3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 이후 2019년 11월 한겨레 기획보도, 2020년 1월 SBS ‘궁금한 이야기 Y’ 방송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세간은 잠잠했다.


2020년 2월 9일에는 66명의 n번방 사건 동조자가 검거됐고 14일에는 텔레그램성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됐다. 단순합산 시 가해자 수가 26만여명이라는 숫자가 처음 제시된 것은 이들의 성명에서였다. 한 달 뒤인 3월 20일 ReSET의 발표에서 숫자는 60여개의 방, 3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한 방에서의 최대 인원은 2만 여 명에 달했다.(경찰은 중복인원과 부계정을 감안해 실제 이용자를 1만명~3만명으로 추산했다) 언론과 대중이 제대로 반응한 것은 이 엄청난 규모 때문이었다. 최초 경찰신고에서 유의미한 사회적 반응이 일어나기까지 1년 7개월이나 사건을 방치하고 키워왔던 셈이다.


서로 다른 사건을 단순비교 할 수는 없지만 엽기적인 정도로 따지자면 성서에서는 사사기 마지막 부분인 19장부터 21장까지의 레위인의 첩 이야기가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에 필적할 만 하다.


사사시대, 에브라임 산골에 살던 한 레위 남자가 베들레헴에서 한 여자를 첩으로 데려왔다. 어느 날 무슨 일에 화가 나 친정에 돌아가버린 여자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처가에서 장인의 강권에 닷새나 발이 묶여 있다가 기어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기브아 땅에서 레위인은 자신을 위협하는 동네 불량배들에게 첩을 대신 내주어 밤새 윤간당하도록 했다. 다음날 아침 여자는 문간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 레위 남자는 시신을 집까지 운반해 온 뒤 열두 도막을 내 온 이스라엘 지역으로 보내 피해를 알렸다.


20장에는 이 일로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악한 일을 처벌한다’는 명분으로 기브아의 베냐민 자손과 전쟁을 일으켜 사흘간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매일 하나님께 물어 전쟁의 가부를 확인받는데, 첫날 2만 2천명이 쓰러지고 이튿날 1만 8천명이 죽는 등 수세에 몰리던 연합군이 마지막 날 크게 대승을 거둔다. 이날 베냐민 사람 가운데 칼을 쓸 줄 아는 사람 2만 5천명이 모두 쓰러졌고 성읍은 불에 탔으며 사람이나 가축 할 것 없이 전부 도륙당했다.


21장에서 이렇게 큰 피를 흘리고 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 장로들은 갑자기 베냐민 지파의 살아남은 남자들에게 측은지심이 생긴 나머지 이들에게 아내를 구해주기로 결정한다. 이번에는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은 길르앗의 야베스 지파를 공격해 남자와 동침하지 않은 여자 사백명을 제외하고 남자와 아이와 여자를 모두 죽인 뒤 베냐민 사람과 결혼시켰다. 모자란 여자는 실로의 축제에 춤추러 나온 처녀를 보쌈해 충당했다. 이로서 모두가 평화(?)를 되찾은 듯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으로 점철된 점입가경에 대한 해명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는 말 뿐이다.


애초에 레위인이 첩을 얻지 않았다면, 도망간 여자의 의사를 존중해 찾으러 가지 않았다면, 장인이 사위를 붙잡아놓으려 애쓸 게 아니라 혼인을 물렀다면, 돌아가는 길에 굳이 고집부려 기브아에 묵지 않았다면, 불량배들에게 자기 대신 첩을 내주지 않았다면, 시신을 열 두 도막 내 수치를 주지 않았다면 여인은 불행하지 않았을까?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이 분노와 혐오에 사로잡혀 전쟁을 일으킨 것은 정당한 일이었을까? 전투에서 싸울 줄 아는 6만 5천이 죽고 베냐민과 야베스 지파 주민이 대거 도륙당한 것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온당한 희생이었을까? 동족과 이웃을 모두 잃고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된 여성과 춤추러 나왔던 축제에서 납치혼을 당하게 된 여성들은 어떤 괴로움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저마다 자기의 뜻에 따라 매정한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이스라엘 지파연합은 레위인이나 기브아의 불량배들에 비해 선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야만이 횡행한 것은 단지 ‘왕’이 없었기 때문으로, 이후 이스라엘은 왕을 가짐으로써 좀 더 나아진 사회를 구축한 것일까?


이런 의미없는 물음 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민망하고 끔찍한 일이 성서에 상세히 기록되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몇 세기나 지난 일인데 읽는 것만도 고통스럽고 억장이 무너지는데 차라리 기록에도 남기지 않고 잊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라도 하게 되면 뭐라 말을 덧붙이기가 고역이다. 후대로서 무슨 교훈을 추구하기도 곤란한 노릇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고대근동에 비해 훨씬 문명화된 세계에서도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5.18 광주와 윤금이 씨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과 민가협 어머니들과 미선이 효순이와 강남역 4번출구와 권인숙과 김지은과 서지현,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들은 그 증인들 중 극동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첨단 기술과 정교해진 언어를 뒤집어 썼을 뿐 불의와 착취, 야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권력을 탐하며 살육을 즐기는 사람들이 악의와 약자와 절망을 잡아먹고 쑥쑥 자라난다. 레위인의 첩을 회피하고 싶었던 나처럼 나약하고 비겁한 마음들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침묵을 만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질식시킨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관련된 기사 댓글이나 SNS 반응이 참담하기 그지없다. 의미없는 숫자놀음으로 물타기 하는 사람, 어떻게든 피해자 탓에 골몰한 사람, 성착취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영웅담으로 떠벌리는 사람, 뒤늦게 성착취 영상을 찾으며 천박한 호기심을 채우려는 사람, 다른 플랫폼을 찾아 착취를 ‘계승’하려는 사람까지 등장하고 있다.


내 생각에 이들은 모두 상상을 넘어서는 잔혹성에 압도당한 이들이다. 사건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축소해 버리거나 자신을 과잉상태로 만들어 마치 악을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숙주로 삼아 불안과 공포와 폭력은 빠른 속도로 확대 재생산 된다. 레위인의 첩 이야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덩치를 불리는 폭력의 규모 속에서 매정해진다.


이런 류의 패닉에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없다. 매일 먼지처럼 쌓이는 야만에 성실히, 꾸준히 저항하는 일상의 분투만이 우리 모두의 타락을 막을 수 있다. 매정하고 독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와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 나 하나 쯤이야, 한 번 쯤이야 해도 되는 일과 그래선 안 되는 짓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눈을 똑바로 뜨고 비극 너머의 희망을 목청껏 증언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한 무의미한 저항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