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건과 신학 1기/성(性), 몸의 언어에 대한 예의

우리 모두가 텔레그램 성착취의 “공범”입니다. / 강은정

 

강은정(안양나눔여성회 디지털성폭력예방교육센터)

 

남자아이들은 다 야동 보면서 크는 거라고요? 아들이 야동 볼 때 휴지를 넣어주셨다고요? 한창 성장기 호기심을 막으면 엇나갈 수 있다고요? 일탈계 여성들이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성착취를 당한 것이라고요? 일부 비행 청소년들의 문제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이, 그래서 우리 모두가 바로 텔레그램 성착취의 “공범”입니다.

 

디지털성폭력은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대상화하고 소비・유통함으로써 돈을 벌어들이는 거대 성산업 구조와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엄격하며 가해자에게는 관대한 한국사회 문화구조 속에서 오늘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1997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빨간마후라 비디오’를 기억하실 겁니다. 해당 비디오는 10대 남학생 두 명이 일방적으로 촬영하고 여학생의 동의 없이 유포했지만 잇따른 언론 보도 속에서 그 여학생은 단 한 번도 피해자로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언론 보도 이후 청계천 불법 비디오 암시장을 들끓게 했던 수많은 비디오 구매자들과 오늘의 텔레그램 성착취 현장에 들락거린 가담자들이 무엇이 다를까요.


이 부끄러운 역사는 2000년 당시 피해자 이름이 버젓이 붙어 유포된 연예인 동영상, 소위 ‘○양 비디오’를 보기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수많은 인터넷 가입자에서 2016년 폐쇄되기까지 17년 동안 수많은 불법촬영물 온라인 유통의 시초가 된 ‘소라넷’의 100만 명의 이용자로, 그리고 각종 불법 촬영물과 성범죄 영상을 조직적으로 유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불법자료를 걸러내는 역할을 해야 할 필터링 업체와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피해 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업체에 이르기까지 견고한 카르텔을 구축해왔던 수많은 인터넷 플랫폼과 소비유통에 가담했던 수많은 한국남성들로 인해 견고히 이어져 왔습니다.


또 다크웹 기반의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유통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씨와 120만 회원들, 텔레그램 메신저의 100개가 넘는 채널을 통해 심리적・물리적으로 취약한 여성을 협박하고 착취하여 생산한 수백억 대 성착취물과 수십만의 가담자들을 통해 디지털성폭력이 여성의 신체와 사회문화를 기반으로 어떻게 확장하고 진화해왔는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 범죄의 심각성을 우리는 왜 오늘에서야 모두 함께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고발과 보도가 이어지고 갓갓, 박사 등 많은 가해자들이 검거되면서 이미 많은 이용자들은 미국 서버 디스코드로 이동했습니다. 그 이름과 장소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성착취는 진행 중이고, 비웃기라도 하듯 n번방, 박사방 자료는 몇 십 개씩 압축된 형태로 더 싼 값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찾는 사람이 있고, 돈을 지불하면서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태와 문제의 핵심을 빗겨나가는 주장이 바로 일탈계, 섹트계 책임론입니다. 일탈계를 운영하는 상설 운영자가 어림잡아도 1만 5천여명 가량 됩니다. 그렇다면 그 여성들 모두가 성착취의 대상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요? 피해자가 피해자 될 만 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2차 가해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2차 가해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가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사실 ‘폭력의 원칙’과 ‘안전한 사회’입니다. 피해자가 평소 어떠한 사람이고, 피해 당시에 어떤 언행을 했든 당사자의 자율적 동의와 그에 대한 존중 없이 이루어진 모든 행위가 폭력으로 성립한다는 사실을 놓치면 우리는 핵심에서 벗어나 피해자 탓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미성년일 경우 더욱 분명해 지는 것이 바로 ‘안전한 사회’에 대한 고민입니다. 설사 미성년 아이들이 일탈적 방식으로 자아감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생계를 위해 옷을 벗고 달려든다고 하여도, 어떻게 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도리일까요? 여러 가지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 때문만이라도 어서 이 아이에게 옷을 입혀 안전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소위 ‘어른의 도리’가 아닐까요? 개인정보를 범죄자의 손에 빼앗긴 채, 인류역사에 다시없을 처참한 노예로 착취를 강요당하면서도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철저히 폐쇄적으로 이루어졌던 이 성착취를 아이들이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일부의 지적대로 닉네임 ‘갓갓’이 운영한 n번방의 주요 타켓층은 일탈계를 운영한 미성년들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유료 성착취 전문 모델을 구축한 닉네임 ‘박사’가 운영한 박사방의 피해자는 일탈계를 운영하지 않은 일반 여성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해자들은 특별히 피해자의 조건과 상황을 가리지 않으며, 일탈계 책임론은 이 피해를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여성들을 협박하고 착취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 수많은 ‘어른들’, 가해자들의 행위가 피해자들의 신분과 행위에 상관없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한국 사회 남성 문화 속에서 어쩌면 당연시되어 왔던 야동문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기반은 바로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고, 옹호하고, 대변해 온 야동, 즉 야한 동영상을 시청하고 소비하고 유포하고 공유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우리 사회의 문화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남성 성욕의 해소에는 야동이, 즉 여성을 대상화하고 파편화하고 도구화한 자극적인 도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구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성산업은 점점 극악해지며 오늘의 텔레그램 성착취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여성들의 삶은 공중화장실에서부터 침대를 넘어 온라인 공간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제공되고 소비되고 유통되고 평가됩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나 불안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남성들의 ‘야동 볼 권리’ 라는 이유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안전할 권리’는 잊혀졌습니다.

 

이제 이 문제는 일부 악마를 표방한 ‘갓갓’, ‘박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해・피해를 넘어 사회 부적응 청년, 또는 비행 청소년, 일탈계 운영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거대한 성산업 구조와 더불어 우리 모두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방관하는 동안 이뤄진, 예견된 사회적 참사입니다. 우리 문화 속의 사회 구조적 폭력의 고리를 축소하고 약화시켜 마치 그들만의 일인 것처럼,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고 회피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불안 속에 기생해온 우리 사회의 결과물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청소년들은 가해를 저지를 확률도, 피해를 당할 확률도 가장 높은 취약계층입니다. 12살 초등학생도 불법피해촬영물을 생산하고 유포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가해 행위들을 보고 배운 대로 그대로 실행에 옮겨본 것입니다. 많은 언론과 사회적 화살이 10대 남성을 향해 있으나, 그 너머의 불편한 진실을 이제 우리는 마주해야 합니다.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인권쯤은 가볍게 무시하고 협박, 강요, 착취하며 짓밟는 것을 어른들을 통해 배운 아이들입니다. 착취한 영상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지를 배운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온라인 성매매 구조 속에서 가해자로 지칭되는 그 10대 남성들 또한 우리 어른들이 구출하고 새롭게 가르쳐야 할 피해자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니,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더 이상 이 성산업 구조와 사회문화 구조 속에서 ‘야동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을 가해자로, 또 피해자로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26만의 거대한 가담자 무리 속에 내가 없었다는, 나는 아니라는 비겁함은 더 이상 해결책이 아닙니다. 과거 어린 시절이라도 ‘야동’, ‘국산 야동’, ‘노모자이크’, ‘일본AV’ 콘텐츠 한번쯤 클릭해 본 어른이라면, 이제 우리 어른들이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내 아들의,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아직도 야동이 필요하다고, 어느 방식이든 그 해소 창구를 내주지 않으면 더욱 은밀해지고 불법이 성행할 거라고 주장하는 우리 모든 어른들이 바로 이 텔레그램 성착취의 근본적 가해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비해 온 그 수많은 야동과 촬영물 속에 발생했을 수많은 피해자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