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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 윤혜린

 

윤혜린(철학박사, 윤혜린철학글짓기의집)

 

너무 가까이 닥친 거대한 사물은 볼 수가 없다. 감각의 역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역시 현실로 닥쳤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시공간적 거리가 확보된 한참 후에 그때서야 사후적으로 인식될 것 같다. 시대 변화에 분석적,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면 그저 동시대인으로서 이 힘든 시간대를 함께 통과하면서 느낀 점 정도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나는 난생처음으로 해보는 일들이 많다. 지난 여름에 괴산에서 한 달 살이를 했다. 그때 지역활동가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벌이는 춤 수다(자유롭게 춤추면서 몸을 통한 표현과 소통 방식을 익히는 것) 프로그램에 운 좋게 끼게 되었다. 원래 하던 교육장에서 두 번 추었다. 세 번째 진행자의 집 근처 망초밭에서 바람과 함께 춘 군무는 클라이맥스였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교육장에서 서너 분이 춤을 추고 나머지는 각자 자기 집에서 추는데 줌을 통해 중계가 된다. 최근 선유동 계곡에서의 춤 수다도 집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줌으로 연결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서울 내 방에서 가을이 머문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을 보고 그리운 친구들의 면면도 살펴볼 수 있었다. 한바탕 춤추고 나서 도시락 같이 까먹는 재미는 없었지만, 서로 눈을 맞추고 손잡으며 안부를 묻는 스킨십은 없었지만, 최소한의 연결성이 유지되니 참 다행이었다. 줌이 꺼지고도 내 몸은 건들건들 어디선가 음악이 나오면 흔들 준비가 되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모임도 있다. 글을 쓰고 직접 삽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한 번은 단톡방에서 대화를 하다가 줌으로 넘어가 서로의 작품을 보여주고 코멘트를 주고받았다. 최근 두 번째 모임은 오프라인으로 만나 서로의 원 작품을 보면서 진행했다. 아쉬운 구석을 지적하면서 제안도 해주고 좋은 점도 격려하느라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모임이 끝난 후 우리 모두 문방구에서 미술도구를 한 아름 사 들고 귀가했으니 더 열심히 작업하자는 무언의 결의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코로나 상황 변화에 따라 대면과 비대면 공간에서의 활동이 서로 번갈아 이어지면 관계성은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십대들과 처음으로 독서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 코로나가 염려되어 화상 수업 방식을 고려하다가 아예 아날로그 방식을 실험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독후감을 편지로 써서 보내면 나는 답장편지를 하는 식이다. 우체국 등기 우편물로 주고받는다. 마치 예전 펜팔하듯 편지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우편함을 계속 들여다 보는 설레는 나날이다. 십대 친구들 입장에서도 매우 낯선 이런 방식이 호기심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가 보다. 한 학부모님은 자신의 아이가 내가 보낸 손편지를 매우 ‘경건하게’ 읽는다고 하였다. 때로는 써놓은 부분을 지우고 다시 쓰고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쓴 (얼굴 모르는)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으며 내게도 경이로운 느낌과 감동이 스며든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이들의 마음 상자 안에 어떤 느낌들이 살고 있는지, 요새 어떤 식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는지 조금은 알 법도 하다. 비대면 방식의 소통도 재미있고 설레며 효과적일 수 있음을 경험해 간다.

 

개인적인 경험의 다양성과 차이에 무관하게 코로나19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전면적인 대면 사회로의 복귀가 될까? 코로나 이전에 우리는 이미 웹기반 비대면 소통 공간, 즉 가상 현실 공간 안에서 대화하고, 게임을 하고, 수업을 해왔다. 가상현실: 현실은 반대항이나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대면: 대면의 이원성이나 온라인: 오프라인의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내 경험으로 이 두 시공간은 중첩되어 우리에게 넓고 깊고 다양한 여러 세계들을 가져다 줄 것 같다. 매체가 아니라 메시지, 콘텐츠가 문제이다. 어떤 장벽도 소통 의지 앞에서는 무의미해진다.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의 의지가 축소되는 것, 투명 칸막이가 사라진다 해도 내 옆의 친구, 지인과 별로 접촉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 지나 온 것은 이상향으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 그때 우리 대부분은 몸이 아파도 몇 일 집에서 쉴 팔자가 아니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거리 개념조차 없어서 지하철에서 툭툭 치고 다니기 일쑤였다. 식량과 ‘괜찮은’ 일자리가 백신이라는 당연한 앎조차 ‘세상의 기본’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한 걸음, 두 걸음, 백 걸음 디디면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기본이 갖추어진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