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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뉴노멀의 3가지 열쇠말: 단순성, 연대성, 우주적 영성 / 김경재

 

김경재 (한신대 은퇴교수)

 

코로나 이후 개인적 사회적 삶이 어떤 형식으로 변화할까 궁금증 혹은 절박한 관심으로 인해 ‘뉴노멀’ 담론이 많아진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뉴노멀’이라는 단어자체부터 거부감을 갖는다. 왜냐하면 노멀(normal)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표준적인, 전형적인, 정규적”이라는 뜻이 본래 의미이고, 그 본래 뜻이 일상 언어생활에서 느슨해져서 “보통의, 통상적인, 정상적”인 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Covid19펜데믹 이전, 세계를 풍미한 소위 신자유주의 질서와 1960년 군사구테타 이후 추진해온 한국사회의 산업화, 정보화, 생명공학화가 추구하던 “표준적이고 전형적이며,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가치관과 생활스타일을 ‘노멀’(normal)이라고 가정하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적으로 잘살아보기와 더 풍요롭게 잘 살아보자는 철학이었다. 그리고 소비에트사회주의 체제 몰락이후, 더욱더 자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세계관만이 살아남은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 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학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그 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당장 기후붕괴, 코로나전염병 비슷한 전염병의 출현가능성과 창궐, 지속불가능한 경제적 양극화, 개인적 삶을 구석구석 관찰하는 ‘빅 부라더’ 사회의 현실화가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든 좋든 ‘뉴노멀’은 다음 3가지 특징을 강화해가는 삶의 패턴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첫째는 삶의 단순성에로 큰 유턴(U-turn)이 일어날 것이다. 삶의 단순성(simplicity)이란 단순히 빈곤성(poverty)과 다른 개념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경제사정이 여유 있을 지라도 큰 저택, 큰 자가용, 으리으리한 큰 소파나 가구(家具), 먹고 마시는 식생활을 단순화시키는 삶을 더 선호해갈 것이다. 그런 삶의 스타일이 지구 기후붕괴나 생태환경보호에 도움된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런 삶이 내면적으로 더 자유롭고 만족하고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직접대면 형태이거니 비대면 형태이거나 지금보다 훨씬 삶의 연대성을 실감하려는 생활패턴이 될 것이다. 연대성은 관계성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기존 종교적 용어로서는 ‘만물동체의식’(萬物同體意識)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코로나19펜데믹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교훈은 생명체는 이리저리 얽히고 관계되어있는 유기체적 생명현상임을 일깨워 주었다. 소위말하는 사회성보다 더 근원적이다. 하찮다고 생각하거나 적대시한 바이러스세계, 균류나 곰팡이 세계, 곤충과 동식물 세계, 이웃인간세계와 긴밀하게 관계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는 핸드폰이나 텔레비전 등 영상매체를 통해서 가상현실(visual reality)에 눈과 귀를 주었지만, 점점 길가에 밟히는 잡초와 담장이 넝쿨과 산야의 들꽃들 곧 지구에서 수십만년 삶을 견디어온 생명의 다양성에 눈뜨고 그들을 돌보는 청직이로서 인류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셋째는 우주적 영성에 점점 더 깊이 눈뜨고 근시안적인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념투쟁, 종교갈등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우주 속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질문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성직자나 기업재벌이나 일국의 정치권력자나 시장바닥의 서민들 구별없이 감염시켰고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는 우주속 은하계안에 있는 태양계안에서 살면서 태양주위를 돌고있는 작은 녹색행성 둥근비행기에 탄 공동운명체임을 깨닫게 했다. 전통 제도적 종교들은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성 곧 우주적 영성에 눈뜨고 존재의 더 깊은 근원과 진화속에 ‘아름다움과 새로움과 정신성을 강화해가는 창조적 정신’의 신비에 대하여 더 깊은 생각을 할 것이다. 종교와 진화과학이 화해하는 영성을 목마르게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