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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학교폭력

학교폭력, 공동체 회복의 과정으로 : Changing Lenses / 황필규

 

황필규 (NCCK인권센터, 회복적정의협회)

 

여자프로 배구 팀 소속 쌍둥이 자매가 10여년 전 초·중·고등학교 시절 함께 운동한 동료에게 가한 학교폭력 사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졌고, 이것이 언론을 통해 재확산되며 일파만파 되었다. 가해 당사자로 지목된 선수들은 현재 무기한 출전 정지와 함께 퇴출 위기에 처해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 멤버를 비롯한 연예인들도 학창 시절에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보면, 한창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특히 예체능계에서 관행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당사자 주변인들 또한 학교 폭력에 그렇게 예민치 못했다고 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은 10년 전부터 피해자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피해 당사자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일상이 파괴되고, 삶이 망가지는 것을 목도하게 되면서 학교폭력은 인간 존엄의 문제이고 비인간적, 반인권적, 반교육적인 모습으로써 학교 공동체의 위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문제와 과거 의도했든 안했든 간에 행해진 수 많은 폭력들이 가해자는 세월이 지나 잊혀 진 일인지 몰라도, 아직 피해자와 이해 관계자 모두에게 여전히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어 그때 고통의 순간은 멈추어져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학교폭력의 문제를 올바로 전환시켜야 할지에 대해, 지금 학교 현장과 인권평화 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안적 방향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학교폭력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누군가 영향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바로 갈등 전환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인하고, 잘못에 대한 처벌로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함께 유죄 확정을 하고 낙인찍어 최고 벌칙은 강제로 학교 공동체로부터 아웃시키는 것이다. 이런 응징과 보복적 절차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들이 속한 집단과 관련자 모두에게 결코 만족스럽지도 정의롭지도 못한 부정적 감정만을 남게 하고 있다.

 

학교폭력 대책에 공동체회복이란 관점에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인 당사자들에게 각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한다. 1)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각자의 자리에서 말하게 한다. 2) 왜, 무엇이 그런 행동을 나오게 한 것 인지를 묻는다. 3) 그런 행동이 누구에게 어떤 피해와 영향을 미쳤는지를 말하고 들여다보게 한다. 4) 이번 일로 발생된 피해와 고통이 회복되기 위해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5) 향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각자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이를 온전히 이행하기 위해 누구로부터 어떤 도움들이 필요한지 등을 말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발적 책임을 강조하는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회복적 정의’ 개념을 구체화한 하워드 제어 박사는 이를 “렌즈 바꿔 끼기Changing Lenses”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과정은 통상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과정과 결을 달리하기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솔직히 시간과 노력이 꽤 걸린다. 지금은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은 과정이기도 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는 여러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미성숙한 질풍노도기에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배우는 교육의 장에서 벌어지기에 갈등과 폭력을 이해하고, 전환시키는 과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사고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향후 인간이해와 관계맺기, 상호소통 등의 주요 가치들을 올바로 습득하느냐, 못하느냐의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회복적 정의의 여정에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1) 직면하기, 2) 자발적 책임, 3) 관계 회복, 4) 공동체 회복, 5) 정의 회복을 통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에 조정자Mediator의 역할이 요청된다. 갈등 당사자 간에 의사소통을 돕는 사람으로서 중립적 마인드를 가지고 상호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조정자는 다섯 가지 회복 과정에 회복적 질문과 공감적 경청을 통해 당사자가 자발적 책임을 지도록 한다.

 

이와 같은 대화 모임은 실제로 학교폭력 가해학생과 학부모가 참석하는 경찰서 선도프로그램 ‘사랑의 교실’에서 지난 3년간 함께 진행해 오면서 대부분의 당사자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높게 받고 있다.

 

학교는 우리 모두 가족공동체 다음으로 접하게 되는 제2의 공동체이다. 그곳에서 학습과 배움, 성장이 일어난다. 우리가 학교 공동체에서 갈등과 폭력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따라, 각자 삶의 질이 달라질 수가 있다. 그곳에서 스스로 대화와 소통을 통한 관계 회복을 경험하고 학습한다면, 향후 각자 몸담게 될 조직과 공동체가 보다 건강하고 평화로워질 수 있겠다.

 

개인들이 경험하는 학교폭력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 스트레스, 상실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자기 보호를 위한 생리적 본능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이 혼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반드시 그들이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로 치유적 정의, 회복적 정의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국가대표 선수로 촉망받고 정상의 자리에 오른 젊은이가 응징과 보복으로 날개가 잃고 추락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젊은 날 함께 흘린 동료들의 땀방울이 각자 삶을 향기롭게 꽃피우게 될 것이다.

 

“ ‘직면’하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지금의 고통은 내가 할 수 있는 ‘직면’을 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