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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3.1운동 100주년

3.1운동 100주년, 우리는 왜 하나 되지 못했을까? / 김한나

3.1 운동 100주년, 우리는 왜 하나 되지 못했을까?

- 김한나(성공회대학교)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골로사이 4:14)

 

   사도 바울은 심각한 분열의 문제를 겪고 있는 고린토 교회에 편지를 쓴다. 당시 고린토 교인들은 자신이 받은 은사에 대한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사를 경시했고 이는 자연스레 교회의 분열로 이어졌다. 이때 바울은 우리가 받은 은사는 각기 다르지만, 그것은 같은 한 성령에게서 왔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한다(I고린토 12:4-7, 공동번역).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유기적인 인간의 몸에 비유하며 각 사람을 그 지체로써 묘사한다.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I고린토 12:27)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이다. 비록 인간의 몸처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하나의 성령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 서로 공동의 이익, 즉 우리 몸을 자라게 하는 일을 위해 함께 일한다. 그러나 우리의 하는 일은 각기 다르고 우리의 모양도 서로 다르다. 사도 바울은 이를 손과 발, 눈과 귀가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비유한다. 만약, 사람의 몸이 모두 눈으로만 되어 있다면 우리는 보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지체가 한 몸에 속하여 각자의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마디마디가 연결되어 서로 영양분을 공급해 줄 때 몸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한국 교회 3.1운동 100주년 기념 과정은 심각한 한국 교회의 분열 상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심각하게 진행되었던 교회 분열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우리가 기념하는 것이 100년 전 나라를 잃은 믿음의 선조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던 3.1운동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3.1운동은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의 민족으로 부르신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여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운동이었다. 그들은 일제의 갖은 박해와 핍박을 견디며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 연합했다. 이러한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남북통일과 교회 일치를 향해 나아가야 할 한국 교회는 100주년 기념식에서조차 하나 된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했다.

   유기적 조직체로서 인간의 몸이 분열되면 우리는 생명을 잃는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용납하지 못하며 상대의 약점과 허물을 비판한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잃어갈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하고 말한다 해서 발이 몸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하고 말한다 해서 귀가 몸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I고린토 12:15-16) 이처럼 하나의 교회가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을 이루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 당연히 속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다른 교회와 한 몸이 된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교회는 하나의 믿음 안에서 한 분이신 성령을 통해 하나의 몸으로 견고하게 묶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성령으로 하나 된 교회를 그대로 보존해야 할 사명이 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에페소 4:3-4)

 

   성령으로 연합된 교회는 한몸에 속한 다른 지체를 미워할 수 없다. 오히려 각 지체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사랑으로 상통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함께 힘써야 한다(에페소 4:13). 고린토 I서 13장을 통해 사도 바울은 고린토 교회뿐만 아니라 같은 분열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호소한다. 그는 더욱 큰 은사이자 더 큰 은총의 선물인 ‘사랑’을 간절히 구하라고 권고한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I고린토 13:1) 그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어도,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드는 희생을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I고린토 13:2-3).

   사랑은 오래 참아주고 교만하지 않으며 화를 내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낸다. 그리고 사랑은 가장 위대하며 영원하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바로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하며 영원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의 근원은 하느님이시며 우리가 사랑할 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해진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요한I서 4:12)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신다(요한 17).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우리의 하나 됨의 중심이자 표본은 바로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일치다. 하느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온전히 따른다. 이처럼, 우리도 거룩하신 성부와 성자의 일치 가운데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참된 일치를 이루어 한 마음 한 뜻을 품을 때,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나타나시며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된다(요한 17:21,23). 우리의 일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교회의 존속과 생명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사랑과 일치가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당신을 온전히 나타내신다. 2019년 3월 1일, 만약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되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고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면 어땠을까? 사랑과 일치의 영이신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며 한 몸을 이룬 우리 가운데 당신의 거룩한 빛을 온전히 비추셨을 것이다. 또한, 그 빛은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을 그 따뜻한 빛 가운데로 초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충만한 사랑과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친교가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3.1운동 101주년, 102주년, 103주년에는 우리가 진정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세상에 일치와 사랑이신 우리 주 하느님을 온전히 드러내기를 소망한다.

 

“한 빛에서 많은 빛이 나오네 우리의 한 빛 예수 그 안에서 우리 한몸을 이루네 한 빛 예수

이 세상에 많은 선물 있지만 가장 큰 선물 사랑 그 안에서 우리 한몸을 이루네 사랑 예수”

(‘한 빛에서 많은 빛이’, 대한성공회 성가 34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