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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는 “사건과 신학”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는 “사건과 신학”

- 양권석(성공회대학교)


1.  신학은 때와 장소에 관한 물음이다. 

생물학이 생물을 연구하고, 사회과학이 사회를 연구하듯이, 신학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신학은 신 혹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 아니다. 신학이란, 반드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은 어떤 분인지를 묻는 노력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지 그 분의 부름을 듣는 노력이다. 

"지금 여기"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 지금이라는 시간 혹은 때, 그리고 여기라는 장소와 관련해서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 신학이다. 그렇게 보면, 신학은 곧 때와 장소에 관한 물음이다. 울어야 할 때와 장소가 있고, 웃어야 할 때와 장소가 있다.  함께 기뻐해야 할 때와 장소가 있고, 분노해야 할 때와 장소가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어떤 때와 어떤 장소인지 묻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시간과 장소를 하느님의 사랑이 펼쳐지는 무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 세상을 향해서 하느님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분노하고 있는지 기뻐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마태 16:3)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신학함의 핵심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신학은 신에 관한 개념화가 아니라, 때와 장소를 분간하려는 노력,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려는 노력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때와 장소 그리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려는 노력은, 곧 지금 여기 이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부름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도록 부름 받고 있는가?' 이것이 신학이 처음부터 끝까지 묻고 있는 질문이다. 신학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부름을 식별하려는 노력이며, 동시에 그 부름을 살아내려는 노력이다. 식별이면서 실천이고, 실천이면서 식별이다.


2.  대화와 소통 가능한 신학이어야 한다.  

신학이 지금 여기라는 때와 장소에 관해 묻는 다는 말은, 곧 현재의 문화적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현재의 문화적 상황을 분석하여, 문제와 도전과 의미들을 찾는 일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집단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현재의 문화적 상황을 분석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입장에서 때와 장소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이 때와 장소의 의미를 묻고, 하느님의 부름을 파악한다는 것은, 각기 다른 관점과 입장을 가진 때와 장소에 대한 이해와 분석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배우는 과정이여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대화에 참여하여 배우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여하기 위해서는, 신학의 관점으로부터 때와 장소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을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의 역사가 전개되는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장소를 하느님의 은총이 펼쳐지고 전개되는 곳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신학은 때와 장소를 분별하려는 세상의 모든 노력들과 만나서 대화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해온 신앙인의 역사와 삶을 끊임없이 다시 읽는다. 그리고 다양한 시대적 소명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며 실천한다.


3.  “사건과 신학”: 에큐메니칼 신학의 새로운 형식  

이처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배우기를 원하는 신학이 되려면, 그래서 남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상관없이 내 말만 하면 된다는 배타적 독백이 아니라, 남들의 예리한 비판과 도전 앞에 스스로를 열어젖힐 수 있는 대화적 신학이 되려면, 당연히 신학을 표현하는 형식과 그것을 소통하는 방식 또한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과 유리된 관념의 공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결된 주장을 만들어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교조적 신학이 아니라,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참여와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보다 겸손한 새로운 표현형식과 새로운 소통형식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생각들과 질문들을 나누며 긴 논의를 이어간 끝에, 우리가 하려는 작업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묶을 수 있었고, 세 가지 방향을 함께 동의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이 시대 이 사회의 삶의 문제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주제로 신학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다. 둘째로 정리되고 완결된 논문 형식이 아니라, 날것인 채로의 공감과 반감이 그대로 드러나게 할 수 있는 짧은 에세이 형식, 혹은 대담형식 등, 보다 직설적인 형식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라인 상에서 가능한 다양한 플랫폼들을 활용하기 위한 실험들을 계속하기로 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매우 전통적인 소통형식에 익숙한 사람들과 기관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연대기구다. 때문에 새로운 표현형식과 매체를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어색하다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기존의 회원들 중에는 이런 형식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접근조차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뉴미디어를 통해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와 함께하는 에큐메니컬 운동과 신학 형식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리고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 길 바란다.


4.  왜 <스카이 캐슬>인가? 

“사건과 신학”이 다룰 첫 주제 혹은 사건을 찾기 위해서 많은 고심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한 다른 신학 매체들이 다루고 있거나 다룰 예정인 주제는 피하면서, 참여자들이 관심과 마음이 모아지는 쪽을 향해서 걷다 보니, 선택된 것이, 최근에 종영된 JTBC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었다. 이미 수많은 반응들과 응답들이 드러났고, 또 다양한 분석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교육문제 그 이상을 말하고 있다. 아니 교육문제 자체가 우리가 가진 기대와 욕망, 두려움과 공포가 깊이 얽혀 있는 문제라고 볼 때, <스카이 캐슬>은 교육문제를 넘어 우리 시대의 삶의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드러낸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 시대 우리들 삶의 실상을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드라마는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사건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 신학위원회 "사건과 신학"의 첫번째 주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 놓은 글들을 보면서, 생각은 거창했지만 표현은 매우 수줍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바라기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또 공감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날카로운 비판도 필요하고 따뜻한 격려도 필요하다. 여기에 실린 글들이 말머리가 되어서, 더 많은 이야기 더 좋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뜻있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보다 넓게 열리고 펼쳐지는 “사건과 신학” 힘찬 마당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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