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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3.1운동 100주년

[취지문] 삼일운동 100년, 우리가 바르게 기념하고 있는 것일까? / 양권석

 

3월의 <사건과 신학> 선정 취지 
삼일운동 100년, 우리가 바르게 기념하고 있는 것일까?   


- 양권석(성공회대학교)


삼일운동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 삼일운동과 관련해서 잘했던 일들을 상기하며 자랑하고 기억하는 것도 얼마든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 앞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그 엄청난 희생과, 그 희생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 때문에도 그렇지만, 역사는 본래 우리가 해석하여 소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누구도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거리를 두고 우리 앞에 서서 우리의 숨기고 싶은 것들을 비추어내면서,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요구하는 성찰의 거울이어야 한다. 

삼일운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도, 국가라는 이름으로도, 그리고 특정 종교의 이름으로도, 그 분노와 희망을 결코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마음 곧 천심이 민중들의 항거를 통해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래서 왕조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 등장하는 민족이나 국가도, 그리고 특정 이념들은 물론이고, 특정종교의 구원과 해방에 대한 가르침도, 삼천리 방방곡곡을 뒤덮었던 사람들과 태극기의 물결을 생각하며,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성찰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삼일운동은 기성의 지성이나 기득권이 기대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민중들을 통해서 계시처럼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지도자들의 상상을 뛰어 넘은 운동이었고, 이미 존재하던 저항운동이 가지고 있던 민중에 대한 교만한 기대와 판단을 일시에 뒤바꿔버렸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삼일운동 백년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아직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그 때 그 사건 속에 숨어있는 선조들의 소망과 하늘의 뜻을 읽어내는 일이고, 그리고 그 소망과 뜻을 이어가기 위해 지금 새롭게 다짐하는 일이어야 한다. 보라! 감히 누가 식민주의는 더 이상 현재가 아니라 과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거사 논쟁은 물론이고, 오늘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 시대의 식민주의도 학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교묘하거나 은밀하지 않다. 오히려 더욱 노골적이고 더욱 강권적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지고 공놀이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과거의 이야기로 말해서 되겠는가? 그런데도 역사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변호하는 수단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국내외 정치에서는 물론이요, 우리 사회의 모든 관계들 안에서도, 그리고 내 안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식민주의와의 싸움을 이어갈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삼일운동을 기념한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나누면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 “사건과 신학”팀은 삼일운동 백주년을 기념하는 교회와 우리들의 자세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바른 마음과 자세로 이 백주년을 맞이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함께 나누는 작은 단상과 반성들이 이어져 마음의 큰 물결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100년 전 그분들의 기도를 이어가는 소중한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