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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를..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 참가기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 - / 추은지

 

추은지 (평화교회연구소 사무국장)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가 열렸다. 감사하게도 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청년 활동가로 총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독일로 출국하기 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나에게 큰 의미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기독교 내 각 교단에서 WCC 회원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WCC 탈퇴의 이유로 WCC는 다원주의와 동성애를 찬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들을 많이 들어왔던지라, 나에게도 WCC는 한국교회와는 다르게 매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곳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한국교회에서는 낼 수 없는 목소리들, 우리나라보다 더 진보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앞으로 내가 한국에서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WCC가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기대를 품고 26일, 나는 조금 일찍 출국하여 카를스루에 바로 옆 도시인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를 여행하고 다시 카를스루에로 돌아와 29일부터 시작되는 “정의로운 여남 공동체 사전대회(Just Community of Women and Men Pre-Assemble)”에 참석했다. 9년 만에 열리는 총회였기에 많은 이들이 더욱더 반갑게 환대해주었고 그곳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사전대회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과 함께 각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더이슈를 공유했고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성사전대회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성경 공부 시간이었다. 다양한 인종을 가진 3명의 신학자가 성경 공부를 인도했고 사도행전 8장 26~39절의 내용으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소그룹으로 나중에는 소그룹에서 나누어진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성경 공부가 진행되었는데 짧은 본문이지만 그 속에 있는 소수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겪었을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지, 현재 기독교 내에 우리가 또 다른 소수자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 지 고백하고,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환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아주 활발히 이루어졌다. 내가 교회 혹은 신학교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논의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따뜻한 감동과 또 은혜를 받게 되었다.

 

사전대회 중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도 또 다른 경험과 감동을 얻게 되었는데, 충분히 모든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노력과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회의가 진행되면서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인도자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이틀간에 사전대회를 마무리하면서 정의로운 여남공동체 사전대회의 성명서를 작성하는 부분에서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진행되는 과정은 이틀 동안의 사전대회를 총망라하는 성명서 초안을 참가자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한 문장씩 읽어 나가며 오류가 있거나 추가로 들어갈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모든 참여자가 함께했다. 의견이 있는 이들은 손을 들었고 진행자는 경청하고 성명서를 수정했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모든 회의가 어느 소수의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참여자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 WCC의 회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이크를 잡는 이들은 정해져 있고 그들이 또 다른 소수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앞으로의 활동에서 그런 부분들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느끼기도 하였지만, 모두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사전대회가 끝나고 8월 31일부터 본격적인 총회가 시작되었다. 총회는 개회식과 개회 예배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개회 예배는 앞으로 진행될 WCC가 압축되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총회가 지향하는 바를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다양한 인종과 성별로 이루어진 찬양단이 예배 전체를 이끌어갔고 그들이 부른 찬양은 다양한 언어와 전통 찬양들이 섞여 있었다. 개회 예배의 가장 첫 곡으로 “주께서 왕위에 오르신다”라는 한국민요찬양을 함께 불렀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찬양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박자가 매우 익숙해 “얼쑤”가 절로 나오는 찬양이라 신기해하던 중 우리나라 찬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다양한 인종과 성별이 적절히 섞여 순서를 맡아 예배를 인도했고 중간에는 청각장애인 성직자가 나와 수어로 기도와 찬양을 올려드렸다. 수어를 읽을 수 없어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 성직자의 기도와 찬양이 그곳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하나님께 온전히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를 울리는 예배가 끝이 나고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워크숍과 부스 그리고 총회의 등이 진행되었다.

 

총회가 진행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WCC 총회를 6번을 참석했다는 미국에서 온 참가자,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하는 아이티 목사, 자녀가 BTS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잘하고 최근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봤다는 독일 참가자, 한국의 상황을 잘 알고 있게 연대하겠다고 해준 신학생들, 미국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계시는 한국인 교수님, 그리고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여성 활동가들 등 정말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총회 기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WCC 총회만 놓고 보았을 때, 사실 참여하기 전 품었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해 실망한 부분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 보수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만큼 WCC는 그렇게 진보적으로 앞장 서 있지는 않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보고서를 정식으로 채택하고 총회 선언문과 위원회를 새로 만드는 등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긴 하였지만, 총회장 곳곳에 버려지는 일회용품들 그리고 몇천 명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 곳에 모이는 것 자체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기독교 내 성 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는 총회 안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3년 총회에 성 소수자 그룹의 워크숍이 불허되어 만들어진 ‘Rainbow Pilgrims of Faith’만 총회장 밖에서 활동할 뿐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의 걱정과 달리 WCC 총회는 그들의 언어로 “매우 은혜롭고” 또 때론 매우 보수적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사실 나는 실망감이 컸다. 우리보다 더 진보한 운동을 할 그것으로 생각하여 한 수 배우려 WCC에 참석했지만, 그들이 더 앞서가지도 않고 때론 한국에서의 활동이 더 진보한 경우도 있는 듯했다. 이러한 이유로 WCC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자신감도 생겼다. 나와 나의 동료들이 하는 운동이 부족한 것이 아니구나, 잘 싸우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 열심히 싸우고 운동해서 우리가 더 진보해서 우리가 그들을 가르쳐 줘야겠다는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렇게 WCC의 일정이 마무리되어가는 중에, 내가 WCC를 참가했던 목적, 감리교 청년단의 청년 빈곤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총회에 참가하면서 배웠던 경험들과 한국의 상황들을 적절히 섞어 한국 청년들이 겪는 빈곤 상황과 그들이 겪는 빈곤을 비교하며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우리가 빈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그리고 한국 전통 놀이 “강강술래”로 우리 서로의 일치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고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로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총회 일정 중 마지막에 있었던 워크숍이라 진행자도 참가자들도 힘겹게 워크숍에 참여하고 진행했지만, WCC 11차 총회의 주제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를 경험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모든 WCC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사실 총회 기간을 참석한 그 시간이 지금은 꿈과 같이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을 통해 WCC를 통해 얻은 것들을 정리하며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되었다. 자신감을 얻었고 지금은 힘겹고 어려운 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경험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귀한 경험을 통해 배웠던 것을 앞으로 나의 활동에 어떻게 묻혀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