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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사랑과 폭력

가족,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 한주희

가족,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 한주희(대한성공회 여성선교센터/동대문교회)

 

이런 가족 필요 없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지난 해 5월 실시한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 문구다. '가정'과 '폭력'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로 된 이 '범죄'는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담장 밖에서 공론화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보면 10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남편에게 맞아 멍든 눈가를 달걀로 문지르며 마을 아낙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문제를 범죄로 인식하고 공적 영역에서 대응하고 있는데도 가정폭력 발생률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5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03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피해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55명에 달했다. 이것은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숫자이기에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는 여성과 주변인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 내 아동학대의 경우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7년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2001년 2,105건에서 해마다 늘어나 2017년에는 2만 2,367건으로 약 10배가 증가했으며 2001년부터 2017년까지 학대 행위자가 부모인 경우가 매년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보호하는 피해 아동수는 2017년에 1만 8,254명이었다.

오랜 가부장 문화 속에서 아내와 자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인식과 갈등을 힘과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인식이 여전히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정이 필요해!

최근 가정의 형태는 급변했다. 전통적으로 생각해왔던 가정, 가족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나 부부만 사는 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동거가정, 미혼모가정, 그리고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마을 가족도 등장했다. 더 이상 가정은 부모 자식이라는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정 상에 매여 있다. 아버지-어머니-자녀, 그리고 거기에 조부모로 구성된 가정이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지레짐작한다. 물론 이런 가족구성이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런 구성이 아니라고 해서 비정상적이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다. 가정의 행복은 구성원이 누구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함께 맺고 있는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혈연으로 맺어져 있어도 그 관계가 서슬 퍼런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족도 가정도 아니다.

진정한 가정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관계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며,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도 공격받거나 상처받지 않는 공동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동체가 바로 가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교회를 또 하나의 가정이라 부르는 일은 어색하지 않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믿음과 사랑, 섬김을 몸소 실천하는 공동체이기에 가장 거룩하고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섭리와 그분의 사랑이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교회라는 공동체에 우리는 모두 가족으로 부름 받았다. 한국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가 가족이기주의와 개교회중심주의를 벗어나 모든 피조물이 한 가족, 한 가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우리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돌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들임을 알아차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