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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사랑과 폭력

성, 가족 그리고 사이버 세계 / 김한나

성, 가족 그리고 사이버 세계

- 김한나(성공회대학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마태오 22:39)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이 두 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의 중심이 되며 근원이 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계명은 인간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명령을 지킨다. 사도 요한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라고 말한다(요한I서 4:21).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이 이웃의 범주는 우리에게 잘해주는 친근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박해하고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의 힘으로 원수를 사랑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안에 주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을 기뻐하실 리가 없다. 가족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귀한 공동체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하면서 가족에게는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많다. 가정 폭력과 관련된 매일의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부모와 자녀, 형제들 사이에 뿌리 깊은 증오와 이기주의의 실상을 보게 된다. 그중 이번 ‘여중생 살인 사건’과 같이 성과 관련된 폭력 범죄가 자주 목격되는데, 이는 가족 구성원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성적 탐욕과 쾌락을 위한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성은 귀하고 아름답다. 성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를 떠나서 성을 단순히 자신의 쾌락만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은 하느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며 모든 것이 나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존재해야만 한다는 사고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질서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성을 경험하며 즐거움과 기쁨을 누려야 한다.

성과 관련된 폭력과 왜곡은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사이버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사이버 성폭력은 사이버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까지 큰 영향을 끼친다. 사이버 공간에서 글, 이미지 혹은 영상을 통해 상대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이 곧 사이버 성폭력이다. SNS를 통해 불법 촬영된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글이나 사진을 상대에게 전송하는 행위는 이미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의 성적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단순히 성적인 도구로 여기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이버 성폭력은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가해자는 이러한 행위를 가벼운 놀이나 장난으로 인식하며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않을 위험이 있다. 하지만, 언어를 통한 폭력은 힘이 있어서 상대에게 큰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준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혀는 악의 불씨라고 말한다. “혀는 불과 같습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몸을 더럽히고 세상살이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망쳐버리는 악의 덩어리입니다.”(야고보서 3:6) 우리의 악의와 죄악 된 마음의 생각은 언어를 통해 이웃에게 독을 쏘아 댄다. 그 독은 듣는 자뿐만 아니라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짓는 죄는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귀한 인간을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희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든 사이버 세계에서 글과 영상을 통해 일어나든 마찬가지이다. 그 행위의 근원은 마음의 교만한 태도이며, 단지 부패한 마음이 혀를 통해 다양한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음란한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오 5:28).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개인의 죄는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에게 행한 폭력은 그들이 속한 교회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역사 속에서 단 한 사람의 패악한 범죄자가 많은 사람을 고통과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수많은 사건을 통해 입증되었다. 사이버 세계에서의 한 마디의 증오의 말과 성적 희롱의 말이 한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이버 세계는 누구나 접근이 쉽고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유출된 정보를 삭제하기가 어려우므로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갈 위험이 있다.

사이버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사람과 사람이 모여 함께 소통하며 다양한 가상의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개인의 가상 활동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그들이 속해 있는 가상 공동체와 더 나아가 현실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사이버 윤리는 당연히 필요하며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윤리 의식 또한 함양되어야 한다. 사이버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내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그 누구도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행위는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사랑의 마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분과 동행할 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한 빛을 비추신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과 멀어지면 우리는 정욕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셨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간다면 그분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며,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성적 왜곡과 죄의 사슬을 끊고 변화된 삶을 살도록 이끄실 것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이며(I고린토 3:16), 몸과 마음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다.

사이버 세계에서 사랑의 윤리를 실천한다면 그 영향력은 당연히 현실 세계에까지 미치게 된다. 온라인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은 현실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사이버 공간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글과 이미지, 영상을 통해 전한다면, 그 사랑은 사이버 세계뿐만 아니라 현실에까지 그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 대신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말을 전하고, 무엇보다 상대의 비방과 모욕에 악의를 품고 보복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알고 스스로 절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어느 곳에서나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지녔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어디에 있든 그들과 소통하는 그곳, 그 자리에서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사이버 세계의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뿐만 아니라 가상 세계에서 말과 이미지로 가해지는 폭력을 줄이는 길은 바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