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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바캉스

메노나이트와 여름 바캉스!

메노나이트와 여름 바캉스!

- 문선주(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참으로 어색한 조합 아닌가?

급진적 제자도를 표방하며, 시대의 세속문화를 거슬러 성경적인 삶을 위해 대항문화를 형성하는 메노나이트들이 자본주의의 총아이자, 소비문화의 절정을 찍는 여름 바캉스를 즐긴다는 말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전동 킥보드를 탄다든가, 고급 스테이크를 먹고 숭늉을 마시는 것처럼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 틀림이 없다.

 


자, 먼저 이 두 단어가 가지고 있는 괴리감을 이해하기 위해 정리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메노나이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16세기의 급진적 종교개혁을 이끈 아나뱁티스트[각주:1]들의 후예들이다. 당시 기독교는 세상을 통치하는 국가권력의 핵심이자, 삶의 반경과 관계를 결정하는 법의 칼날이 되어, 저항할 수 없는 공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아나뱁티스트들은 국가와 신앙의 경계에 분명한 선을 긋고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탈피하여 자발적인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신자가 되어 근원적인 개혁을 외쳤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뼈 속까지 들어있는 정신은 ‘비순응주의’이다. 그들은 성서적인 원리를 위해 시대정신에 저항했던 급진적인(radical)인 성향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21세기의 메노나이트들도 이 시대의 자본주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개인적 신앙보다는 공동체를, 패권에 의한 평화보다는 예수의 평화와 초대교회의 제자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바캉스라는 단어는 어떤 말인가? 바캉스라는 단어는 라틴어 vacationem에서 유래 되었는데, “여가, 자유, 의무에서 면제”라는 뜻이 있고 현대에는 더 나아가 ‘여행과 낭만’의 이미지로 자리매김을 했다. 일과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약간의 일탈을 누리는 바캉스는 그 단어를 듣거나 떠올리기만 해도 연상되는 즐거움과 흥분을 자아내는 힘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위축감과 소외감을 안겨주는 묘한 이중성을 가진 말이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일하고 성취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소비하고 즐기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에 바캉스는 소비의 한 형태로서 자본주의라고 하는 큰 동력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로, 바캉스는 빈부의 격차를 판가름해주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제 바캉스는 일로부터의 해방과 탈출이라는 고전적인 의미보다는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보이지 않는 체계로의 흡수이자 자본주의가 만개시킨 소비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메노나이트와 바캉스의 조합을 다른 말로 해 본다면 자본주의라는 큰 흐름에 대한 ‘역류’와 ‘편승’이라는 나름의 충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노나이트들도 ‘여름은 덥고, 일은 버겁고, 쉬어야 회복되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바캉스를 떠난다. 특별히 자본주의의 메카인 북미지역에 많이 몰려 있는 메노나이트 사람들 모두가 일반개신교 사람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두는 형태의 바캉스를 지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자본주의에 역류하는 ‘메노나이트식 바캉스’라고 볼 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할 수 있다.

 


첫째는 공동체지향형 바캉스이다. 자본주의는 상품이라는 거대한 물결로 파도를 이룬다.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이라 해도 그들과 일부러 교제를 나누지 않아도 돈만 있으면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며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도록 개인주의로 몰아간다. 고로 바캉스도 자기결정, 자유, 선택 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된 상품으로서 조직생활과 규율로부터 한시적 탈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혼행(혼자 하는 여행)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메노나이트들은 공동체를 더 공고히 하는 바캉스를 즐긴다.

예를 들어, 여전히 16세기 문화와 옷과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전기나 자동차 등 현대화된 기계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쉬 사람들은 플로리다의 어느 한 동네를 찾아, 자주 볼 수 없었던 다른 아미쉬 가족을 만나 밀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각주:2] 후터라이트 공동체의 젊은이들은 여름 채소 수확기에 다른 공동체에 가서 일을 돕는 목적으로 여행이 계획되기도 한다. 현대화된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는 메노나이트사람들은 메노나이트교회모임, 예를 Mennonite General Assembly나 Mennonite Conference에 교회 대표자격으로 참석함으로 여름 바캉스를 대신했던 기억을 회자한다. [각주:3] 메노나이트에서는 교회의 대표를 평신도가 할 수 있다. 그들은 가족단위로 함께 메노나이트교회모임에 참석하여 성인들은 총회에서 필요한 안건을 다루고, 자녀들은 그들만의 즐거운 여름휴가를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보내게 된다.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이 오히려 자주 만날 수 없었던 형제자매들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둘째는 갈등전환형 바캉스이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을 즐거움과 안락, 오락의 세계로 초대한다. 거기에는 일상의 탈출과 더불어 ‘자기실현’을 약속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휴가를 통해 난제와 책임이라는 현실은 잊고 축제와 환상과 모험의 시간으로 채우도록 유도한다. 온통 자신의 필요에만 집중해도 괜찮은 유예 받은 시간이 바캉스이다. 그러나 메노나이트들 중에는 휴가기간을 사용하여 스트레스해소가 아닌, 사회 내 갈등해소를 위한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내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 Area)을 방문하여 그들과 교제하며,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경제최강국을 이룬 미국과 캐나다라 할지라도 이면에는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유기된 삶이 있다. 이들의 존재자체가 망각되는 시대에 어떤 메노나이트들은 매년 여름만 되면 장기간의 휴가를 내어 인디언들이 사는 보호구역을 찾는다. 대부분의 인디언 보호구역은 사막과 같은 황무지에 위치해 있고 물 부족을 경험하는 곳이다. 모두가 외면하는 땅에서 어떤 메노나이트들은 그들과 교제하며 인디언의 문화를 배운다. 뜨거운 사막 지대에서 조상들의 죄악을 직면하고 유기된 인디언의 존재를 기억하고 국가와 민족이 유발한 갈등을 전환하여 새로운 창조력으로 인디언의 문화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메노나이트들의 바캉스는 결코 자본주의가 이끄는 이기적인 욕망에 제한받지 않았다. 인디언 보호구역 뿐 아니라, 갈등이 발발한 곳에 메노나이트들이 찾아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갈등을 완화하려는 평화활동가들의 노력은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셋째는 자연친화형 바캉스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필요와 편의를 극대화하는 소비문화를 위해서는 자연이 파괴되는 바캉스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근시안적인 눈앞의 이익을 좇아 위락시설이나 케이블카 설치에 눈먼 세상을 보거나, 해변에 돌아다니는 쓰레기의 방대한 양에 고통 받는 환경에 관한 소식을 들으면 바캉스는 자연파괴의 주범이라는 말을 확신하게 된다. 메노나이트는 교단차원에서 자연친화적인 Camp시설을 만들어서 청년과 청소년,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자연 속에서 신앙과 공동체성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있다. 미시건의 Camp Amigo[각주:4], 인디애나의 Camp Friedenswald[각주:5] 는 우리가족이 여름만 되면 놀러가던 대표적인 장소였다. 캠프장 주변의 산과 강과 호수 주변에는 위락시설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을 벗어나 카누를 탄다든가 오두막 속에서 추억을 만든다든가 자연 속 벌레들을 살피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심신을 쉬게 하는 게 전부이다.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자연이 주는 치유를 경험하고, 자연의 벗이 되는 경험은 ‘충전’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의라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의 입김에 물들어 바캉스마저도 경로화되고 규격화되어 빈부의 격차를 확연하게 드러내며, 무엇인가를 소비해야 하는 소외와 배제와 착취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 비순응적인 삶의 궤도 속에서 바캉스조차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신앙의 제자도, 공동체, 평화의 가치를 반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들의 바캉스에는 거나한 소비 대신 따뜻한 만남이 있었고, 소외와 배제 대신 경청과 화해의 노력이 있었고, 자연에 대한 착취 대신 자연과 함께 하는 평화가 있었다. 바캉스가 일상의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다는 차원에서 메노나이트의 휴가는 일상에 대한 통찰력과 에너지가 배가되는 경험으로 풍성하다.


 

  1. 아나뱁티스트는 16세기 급진적 종교개혁을 일컫는 운동성이라면 메노나이트는 네델란드에서 메노 시몬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한 분파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둘의 차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고 동일한 공동체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글의 메노나이트는 북미지역에 거주하는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들 중심의 사례임을 먼저 밝히는 바이다. [본문으로]
  2. “Where the Amish go on vacation" The New Yorker, 2018년 4월 17일, 2019년 8월 15일 접속, https://www.newyorker.com/culture/photo-booth/where-the-amish-go-on-vacation. [본문으로]
  3. “A Proper Mennonite Vacation" The Drunken Mennonite Blog, 2016년 8월 9일, 2019년 8월 14일 접속, https://slklassen.com/2016/08/09/a-proper-mennonite-vacation/. [본문으로]
  4. http://www.amigocentre.org/ 참조하라. [본문으로]
  5. https://friedenswald.org/ 참조하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