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건과 신학/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15)
[머리글] 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에서 Covid19로 인한 재난 상황을 반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상황이 호전되기 보다는 제2 제3의 확산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아무도 정확한 예측을 내 놓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정치와 언론은 연말이나 내년쯤이면 백신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다시 과거의 자연스러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파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이후의 삶은 결코 코로나 이전의 삶과 같은 것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이, 아니 코로나 이전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다 솔직한 전망입니다. 언제든 원하면 서로 만나 대화하고, 따뜻하게 서로를 느끼고, 냄새 맡으며, 서로의 호흡을 섞어 가며 살던 삶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모든 상황에서 변함없이 허락되는 삶의 형식이 아..
뉴노멀의 3가지 열쇠말: 단순성, 연대성, 우주적 영성 / 김경재 김경재 (한신대 은퇴교수) 코로나 이후 개인적 사회적 삶이 어떤 형식으로 변화할까 궁금증 혹은 절박한 관심으로 인해 ‘뉴노멀’ 담론이 많아진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뉴노멀’이라는 단어자체부터 거부감을 갖는다. 왜냐하면 노멀(normal)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표준적인, 전형적인, 정규적”이라는 뜻이 본래 의미이고, 그 본래 뜻이 일상 언어생활에서 느슨해져서 “보통의, 통상적인, 정상적”인 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Covid19펜데믹 이전, 세계를 풍미한 소위 신자유주의 질서와 1960년 군사구테타 이후 추진해온 한국사회의 산업화, 정보화, 생명공학화가 추구하던 “표준적이고 전형적이며,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가치관과 생활스타일을 ‘노멀’(normal)이라고 가정하면..
뉴노멀에 대한 개인적인 사색 / 문선주 문선주(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개인적으로 2020년은 전례 없는 마음의 평안으로 가득했다. 갱년기 여성으로 이유 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에 쉽게 농락당하던 나로서는 기대하지 않은 마음의 봄날을 경험했다. 코로나 상황 속 나만의 반전은 이렇게 ‘은밀하게 위대하게’ 도달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사람은 모름지기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충고를 신봉했다. 결혼 후, 지방의 소도시에서 사역하던 남편이 수도권의 신도시로 이동했을 때, 드디어 지방을 떠나 더 큰 세상에 간다고 설래했다. 그리고 그 신도시를 떠나 미국으로 유학 갈 기회가 생겼을 때도, 좁은 한국을 떠나 세계를 누빌 기회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더 넓은 곳으로 간다고 삶의 반경이 넓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
뉴노멀 시대의 신앙과 신학 / 유경재 유경재(안동교회 원로목사)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세계는 지금 포스트코로나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학자들마다 나름대로의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분명한 것 하나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그 이전과 확실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뉴노멀’이란 말이 등장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약간의 삶의 변화가 아니라 문명 자체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모든 통계나 경험들이 무용지물이 될 만큼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몇 차례의 큰 역사의 변동이 있었다. 첫 번째로 큰 변동은 출애급 사건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오랜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선..
하나님 뜻 안에서 내 일상이 재편될 수 있기를 / 양다은 양다은 간사(한국YMCA전국연맹) 코로나19.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가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이며, 무한 생산과 무한 소비에 기초한 경제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 철저한 위생 관리를 위해서 더 많은 일회용품을 생산하고 버린다. 어떤 카페는 개인 컵도 받아주지 않고, 배달음식은 늘고 일회용 마스크 소비도 계속해서 증가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새들의 두 발이 마스크 끈으로 묶여서 날지를 못하는 사진이 SNS에 돌아다닌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로 환경 문제에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생겼고 특히 ‘무한 소비’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미니멀리즘이다. 내가 필요해서 실제로 쓰는 물..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 윤혜린 윤혜린(철학박사, 윤혜린철학글짓기의집) 너무 가까이 닥친 거대한 사물은 볼 수가 없다. 감각의 역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역시 현실로 닥쳤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시공간적 거리가 확보된 한참 후에 그때서야 사후적으로 인식될 것 같다. 시대 변화에 분석적,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면 그저 동시대인으로서 이 힘든 시간대를 함께 통과하면서 느낀 점 정도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나는 난생처음으로 해보는 일들이 많다. 지난 여름에 괴산에서 한 달 살이를 했다. 그때 지역활동가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벌이는 춤 수다(자유롭게 춤추면서 몸을 통한 표현과 소통 방식을 익히는 것) 프로그램에 운 좋게 끼게 되었다. 원래 하던 교육장에서 두 번 추었다. 세 번째 진행자의 집 근처..
코로나 시대: 마리아의 노래 / 서광선 서광선(이화여대 명예교수) 1. 예수가 나타나기 전, 세례 요한이 요단강 근처에 나타났다. 세례 요한은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광야의 자연 속에서 살았다.(마태 3:4) 세례 요한의 설교는 파격적이었다. 한 마디: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그리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야단 쳤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닥쳐올 징벌을 피하려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으로 모여든 군중들이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