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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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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 / 이혜영 이혜영 (미국장로교(PCUSA) 파송 선교동역자, 여신학자협의회)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건축된 지 4년정도 되는 신축 아파트인데 앞에 공원이 있다는 이유로 4년 전에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처음 이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는 주위가 개발이 되지 않은 황량한 곳이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주변에 높은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불과 4년만의 일이다. 최근 우리 아파트 바로 옆에 이름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입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황당한 논쟁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그 내막은 이러하다. 그 아파트의 초등학생들이 들어갈 학교를 배정하는데 길을 건너면 바로 있는 초등학교에 배정하지 말고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아파트 촌에 사이에 있는 초..
아파트를 넘어서는 신앙 / 황푸하 황푸하 (새민족교회, 옥바라지선교센터) “이 나라는 아파트에 미친 나라야.” 서대문 형무소 앞 옥바라지 골목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때 마지막 남은 구본장 여관 이길자 사장님의 외침이다. 정말로 대한민국은 아파트에 미친 나라가 되었다. 대학 강단에서 은퇴한 어느 교수님에게 그림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쉬는 시간에 그 교수님과 아파트 베란다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경치라고 할 것도 없이 다른 아파트 동들을 보고 있었다. “자네, 저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겠나?” 내가 말했다. “아니요. 회색 아파트들뿐인걸요.”, “아닐세. 저 회색 아파트에도 햇빛이 반사되어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주님께서 주시는 빛으로 모든 것 안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네.” 그 말을 듣고 침묵 ..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 / 박흥순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장) ‘마을’이나 ‘동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한다며 낭만적이라고 핀잔을 듣는다. 거의 무너져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붙들고 목이 쉬도록 외친들 되돌릴 수 없다. 기후 위기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외쳐도 꼼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마을’, ‘동네’, ‘공동체’, ‘공유’라는 단어에 반응하리라 기대함이 어리석다. 놀라운 것은 자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에는 호의적이고 관대하다가도 이해관계로 얽히면 얼굴색이 바뀌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부실 공사로 거짓 위용을 자랑하던 삼풍백화점이 1995년 6월에 붕괴하고 502명 희생자가 있었던 그 자리에 고급 주상 복상 아파트 아크로비스타가 당당하게 자리 잡았..
소유가 아닌 존재의 의미 / 김한나 김한나 (성공회대학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던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거나 그저 상투적인 질문이라 여겼던 나는 어느 순간 어디에 사느냐가 나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역적 편차가 크지 않았던 지방에서는 어디에 사느냐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남과 강북이라는 기준이 명료한 서울에서는 강을 기준으로 나누어진 신분의 체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단순히 강을 기준으로 나누어지던 사회적 계급은 이제 아파트냐 빌라냐, 혹은 어느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점차 세분화되고 있다. 어느덧, 우리는 인간의 가치가 그가 소유한 물질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
“드라마 오징어 게임; ‘K-’를 생각한다” 그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하고도 파리에서 달고나 뽑기를 하려고 길게 줄을 늘어서고, 근엄한 표정의 병정을 떠올리게 하는 독일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 거리 한복판에서 딱지치기를 한단다.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는 뉴욕과 런던에서는 각 학교들이 이번 핼러윈 파티에서 이 분장을 금지한다는 공문을 가정에 전달했다고도 한다. 다 아시는 ‘그’ 드라마에 대한 얘기다. “오징어 게임” 도대체 어떤 점이 그들을 자극했는지 모르겠다. 한편 당사자에 해당한다할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논란이 있었나보다. ‘표현이 너무 잔인하다’, 또는 ‘곳곳에 표절의 문제가 있다’, ‘하나의 플랫폼이 과도하게 비대해지고 있다’는 등 말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일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폄훼했다고 문제를 삼기도 했고. 아무튼 국내..
오징어 게임과 K-기독교 / 이찬석 이찬석 (NCCK 교회일치위원, 협성대학교) 복음적 또는 보수적 신학자로 평가받는 칼 바르트(Karl Barth)는 ‘복음과 종교’를 구분하여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복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지만, ‘종교’는 인간적인 것(이성, 문화 등)에 근거한다. 복음은 계시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에게로 오는 것이지만 종교는 인간(세계)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에게 이르려는 시도이므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노예의 반란과 같다고 바르트는 주장한다. 여기에서 바르트는 기독교를 ‘복음’이 아니라 ‘종교’로 규정하고, 그의 종교비판의 정점에는 기독교 또는 교회가 있다. 그는 교회가 신의 문제를 일깨워 주기보다는 잠들게 하였다는 극단적 비판을 한다. 바르트가 설정하였던 복음과..
K-문화 꽃이 피었습니다! / 김한나 김한나 (NCCK 신학위원, 성공회대학교) 죽음의 공포라는 극한 상황 앞에서 ‘오징어 게임’ 속 인물들의 가면은 서서히 벗겨진다. 사회적 약자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던 세련된 지성인에서부터 극 중 가장 이타적인 주인공까지도, 결국 속임수와 폭력, 살인을 통해 생존과 부를 좇는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를 통해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자기중심주의의 실체를 드러낸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 한팀을 이루었던 연대도 결국 개인의 이익 앞에서는 와해되고, 가장 가까운 상대마저도 배신하는 등장인물들의 행태는 우리의 보편적인 얼굴을 보는 듯하다. 극의 막바지, 주인공과 깐부 할아버지의 대화 속에서 인간이 욕망하고 집착하는 것들이 얼마나 공허한가에 대한 자조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과연 우리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