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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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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에서 히어러까지 (From Hero To Here-er) / 도임방주 도임방주 (KSCF 제19대 총무) # 1. 장면 하나 학생운동과 청년운동, 청년학생운동.. 쓰기 시작하기 전 취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원고 요청하신 분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이하 KSCF) 총무에게 보낸 것이 분명한데 어디에도 이란 단어는 없다. 을 으로 읽어야만 했다. # 2. 장면 하나에 대한 단상 학생운동이 저물어갈 무렵인 것 같다. 운동 현장에서 학생보다 청년 또는 청년학생이란 단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수가 줄어들기에 묶어 크게 보일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시위하고 있는 대학생들도 “청년학생”이라 스스로 말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학생’은 이제 단독으로 쓰일 수 없는 단어가 된 것 같다. KSCF 문서를 작성할 때만큼은 이라고 적는다. 학생이라는 단어를 놓고 ..
삼일운동과 예수운동,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한수현 삼일운동과 예수운동,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한수현(감리교신학대학교) 삼일운동 이후 백년이 지났다. 신학교 시절, 한국교회사 시간에 삼일운동 당시 전체 인구 1%에 지나지 않던 기독교인 비율에 비해 삼일운동에 참여했던 기독교인의 비율은 30%에 달했다고 들었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는 “대한독립만세”라는 구호가 자신들의 신앙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던 모양이다. 참기독교인이 참조선인이라는 믿음과 조선의 독립이 결박을 풀고 자유케 되는 신앙 체험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서양 종교였던 기독교의 힘을 빌어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친일 보다는 친미, 친유럽이 더 조선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식민과 전란의 시대에서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