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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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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내전의 도덕적 등가물 / 정경일 정경일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대선 며칠 후, 내가 조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연구 단체에서 대선 평가 토론을 제안해 왔다. 몸과 맘이 피폐해 있던 때라 내키지 않았지만,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지 않으려는 기획자의 열정과 회복탄력성이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토론 제목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대선관전평’... 물론 스포츠 경기나 정치적 선거 후에 관전평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후보 간, 정당 간, 국민 간 정치적, 심리적 대립과 갈등이 너무 격렬해서, 나를 비롯한 토론자들의 이야기는 ‘관전평’이 아니라 ‘참전담’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당락을 가른 결과도 0.73%p 초박빙이어서, 승전담도 패전담도 내상 없이 꺼내기 어려웠다..
이‘놈’의 대선: ‘남혐’ 상상하기 / 김정원 김정원 목사 (향린교회, 성공회대 박사과정) 근래 “너- 남혐있어?”라는 물음을 종종 듣곤 하는데, 그 물음에 답하기 전 그 사람의 저의를 예상해본다. 이자가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은 ‘너 페미니스트야?’, 혹은 ‘너 설마 심상정 찍을꺼야?’, 그것도 아니라면, ‘너 목사가 돼가지고 세상의 반을 혐오하는 거야?’, 마지막으로는 ‘싸우자’ 정도. 대개 그들의 저의는 나의 예상 중 하나 이상에 부합한다. 저런 물음은 보통 혐오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데서 온다. 혐오란 대등한 관계에서 발생되지 않는다, 아니 발생될 수가 없다. 흑인이 백인을 증오할 수는 있어도 혐오할 수 없고, 비장애인의 배제에 장애인이 분노할 수는 있어도 혐오할 수는 없다. 다수의 이성애자 앞에서 소수의 동성애자가 위축될 수는 있으나 혐오할 ..
혐오의 계곡을 탈출하기 / 김민희 김민희 (서울사는 소상공인) 대선으로 초토화된 나의 정서적 쇼크를 말하기 위해 내가 초등학교때 읽었던 한 우화로 시작하겠다. 오랜 전투 중에 보급품이 다 떨어지고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다 못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서 지휘관이 물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보급품이 무엇인가?” 병사들이 대답했다. “우리가 지금 속옷을 한 달 동안 못 갈아입었습니다. 속옷을 갈아입고 싶습니다.” 지휘관이 모든 병사들을 모이게 한 다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앞의 사람과 속옷을 갈아입도록!” 내 심정이 어떠냐고? 앞의 사람과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그 병사의 마음이다. ‘우리’라고 여겼던 ‘우리’안의 더러움도 견디기 힘든 판에 타인의 더러움까지 뒤집어 써야 하는 혐오의 계곡에서 희로애락애오욕을 담당하는 오감..
무지(無知)를 두려움으로 가열하면 / 박흥순 박흥순(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 사용했던 크레파스에 ‘살색’이 있었다. ‘살색’이라니! 피부색을 색칠할 수 있도록 다른 색과 구분해 놓았다.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은 어김없이 ‘살색’을 선택해서 사람 얼굴이나 손과 발을 색칠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당시에도 피부색을 빨간색이나 검정색으로 색칠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구분해 놓은 ‘살색’을 주저 없이 사용했고 사용해 왔다. 그렇게 단일민족신화에 갇혀 낯선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살색’이 하나만 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살색’이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결국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살색’이라는 명칭이 인종과 피부색에 ..
성(性), 몸의 언어에 대한 예의 / 송진순 송진순(이화여자대학교) 지인인 여성학 교수님이 경찰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을 마치면서 퀴즈를 냈다고 한다. “이별에도 OO이 필요하다. 빈칸에 들어갈 말이 무엇일까요?” 대부분 중년 남성이었던 경찰들은 “눈물, 정산(현금), 낭만, 예의” 등 많은 답변을 내놨지만, 정답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반면, 여대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바로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정답은 안전이다. “안전 이별하세요!” 한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인사다. 다양한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도 막상 남녀 관계에서 안전을 생각지 못했던 남성과 행복하고 즐거운 연애를 앞두고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여성의 현실 인식, 이같은 극명한 인식 차이는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있는 젠더 의식을 반영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
n개의 성착취, 가·피해자 조명을 넘어 우리의 시선이 가야 할 곳 / 이명화 이명화(한국YMCA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센터장) # 청소년 인권과 섹슈얼리티 의제에 관련하여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입니다. 언젠가 성에 관한 이야기를, 저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존재했습니다. 물론 혼자 기록하고 sns상에서 담론을 주고 받는 나날 역시 저에게 있어 아주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를 속에 품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이 연설대전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세상이 조금은 변화를 따라 걷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청소년 당사자가 작지 않은 힘이 있는 자리에서 성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쁘고 한 편으로는 울컥했습니다. 동시에 ‘이제서야 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또 하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