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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4월의 꽃, 총선

‘마르틴 루터의 관점’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를 생각해 보기 / 정창기

 

정창기 (기독교한국루터회총회교육원 연구원)


  대한민국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간 우리나라의 정치 양극화는 매우 극심해져 왔습니다. 보수와 개혁을 대표하는 거대 양당의 적대 정치는 언제나 그랬듯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고, 국민들 또한 이념, 세대, 계급, 젠더, 지역 등 다양한 사회적 균열과 적대가 팽배해져 왔습니다. 국민들의 살림과 안전, 국가의 외교, 안보 등의 문제들은 계속 어려웠고, 따라서 정부의 지지율도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조한 수치를 보여 왔습니다. 정치를 향한 국민들의 실망과 무력감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선거와 정치참여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며 행동해야 할까요? 더욱이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시점이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세상에서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더욱 어렵고 고민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정치참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대답은 Yes 나 No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정치에 참여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관점으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오해를 많이 받는 루터의 두 왕국론에 대해서도 나누어 보겠습니다. 


종교의 귀환

  신의 권위 아래에서 인간 생활의 전체 문제들을 다루던 전통과 기억 대신,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세속화 실험은 근대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근대화는 불가피하게 개인적 의식과 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종교의 쇠퇴를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공적인 영역에서 종교를 사적인 작은 영역으로 때어 놓는, 인류 근대 문명의 분리주의 역사였습니다. 꽤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 세속화된 사회, 그리고 비종교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 생각에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히 세기가 바뀌면서부터는 종교의 귀환, 탈세속 사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종교적 신앙과 의례가 개개인의 삶의 차원에서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현대사회의 구체적인 이슈들에도 종교가 큰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위르겐 하버마스의 변화된 견해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9/11사태와 이슬람의 존재감은 하버마스의 정치적 공론장에서 종교의 목소리가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정치철학자 롤즈의 제안처럼, 종교 언어가 공적 영역으로 나올 때 보편적으로 접근가능한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주:1] 왜냐하면 종교가 광신적으로 또 편협하게 질서를 파괴하는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찰스 테일러는 종교의 공적 영역으로의 합류에 번역이라는 조건을 매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세속적 관점이 왜 우위에 서서 종교의 번역을 강요하는지 묻기도 합니다. 종교적 언어가 세속적이고 중립적인 언어로 모두 번역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번역하지 않더라도 비신앙인들에게도 이해되고 공유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각주:2]
 
  하버마스와 테일러의 주장들은 각각 일리가 있습니다. 특별히 필자는 하버마스의 주장을 통해 그것과 유사한 루터의 ‘두 왕국론’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종교적 광신과 폭력을 경계하고,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으로 세속영역과 관계하기를 추구했던 루터의 관점을 하버마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무엇을 말하는가?

  루터의 ‘두 왕국론’에 대한 오해가 깊습니다.[각주:3] 루터가 세속적 왕국과 영적 왕국을 둘로 구분하고 그 경계를 분명히 하여 서로 상관하고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는 오해입니다. 루터의 정치적 저작들만 보면 분명히 오해의 여지는 있습니다. 증인으로서의 기독교 윤리로 바르트를 다룬 데이비드 하도르프도 독일 기독교인들이 루터의 두 왕국 이론을 사용하여 교회와 국가를 율법과 복음의 두 가지 기능으로 완전히 분리하여 나치 정권을 합법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각주:4]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의 정치 질서를 해체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영적 영역의 주도와 세속적 영역의 종속이라는 하나의 구도로 통합 되어있던 세계를 영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이 구분되는 그리고 동등한 구도로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세속적 영역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증진 시키는 작업이었기에 당대의 세속 군주들에게도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성과 속의 구분은 양쪽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당대의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상황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던 사상이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전횡으로 종교개혁의 움직임은 이미 독일 사회 곳곳에 만연 해있던 시기였습니다. 루터 이전에도 여러 차례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었고요. 이미 많이 알려졌듯이, 루터의 행보, 그 시작은 순수하게 학자로서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고, 개혁의 열망에 루터는 불을 붙인 격이었습니다. 이후 루터의 전략적 판단이었는지, 세속 영주들과의 이해관계가 맞아서였는지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루터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속 영주들과 동맹관계로 그리고 그들의 세속권세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진행 시킵니다. 이러한 루터의 방향성은 민중 혁명의 열망과는 갈등을 일으키며 비판받기도 합니다. 당시 종교개혁이라는 뜨거운 바람, 즉 루터의 사상은 계층을 막론하고 무장봉기를 불러왔습니다. 중세 말 몰락해 가던 기사 계급의 반란도, 스봐비아 지역에서 일어났던 거대 농민반란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과격한 성령론자들, 가짜 예언자들도 나타나며 교회의 전통과 질서들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루터는 과격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루터 말기에 가면 변화하지만, 로마 가톨릭과의 대화와 연합, 일치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로마 가톨릭의 질서에 일침을 가하면서 동시에, 무장 봉기와 같은 폭력이 난무하는 급진적 혁명을 저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두 왕국론 사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요컨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착취하며, 교회와 나라의 질서를 짓밟는 로마 가톨릭과 여러 계층의 급진론자들을 향해 서로의 영역을 지키자는 취지의 생각이 바로 두 왕국론이었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사상은 영적 권위와 세속 권위의 영역을 절대적으로 영구히 지키자는 것은 또 아니었습니다. 루터 자신도 시간이 흘러, 종교개혁 진영의 황제와 교황을 향한 적극적 무장 저항을 승인하기도 합니다. 다만 광신과 폭력이 아닌, 종교 밖의 세속영역에서는 보편 이성이 최고의 무기가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왕국론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걸까요? 독일의 나치당에게 그러했듯 그리스도인은 침묵하고 방관해야 한다는 걸까요?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두 왕국론에 대한 적용과 접근은 오해입니다. 루터는 우리가 세상에서는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세속의 이성을 가지고 참여하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도 또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이며, 하나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맹목과 신앙을 투영하여 폭력이 난무하는 종말의 세상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이성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선한 통치에 거하는 삶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엇을 위한 참여인가? 

  앞서 그리스도인들이 또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 참여하여도 됨을, 그리고 이성을 가지고 해야 함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무엇을 위한 참여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마이클 라핀은 루터의 정치신학을 포스트모던적으로 재 사유하면서 루터의 정치적 저작들이 아닌 여타 다른 저작들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루터의 창세기 1장 주석을 언급합니다. 그곳에서 루터는 창세기 1장에서 동생을 죽이고 집을 떠나는 “가인의 방황을 시민 정부(정치)와 연관된 벌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루터는 가인이 도시를 건설하지만, 그 도시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담이 에덴을 떠났을 때는 하나님께서 특정 땅을 경작할 일을 주시고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돌보시고 보호하실 것이라는 표징으로 말이죠. 하지만 가인에게는 그러한 표징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불확실성과 방황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고 자신을 향하시는 곳을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라핀은 루터의 창세기 4장 19절 주석에도 주목합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한 구절인데, 이는 라멕의 불확실성이 자신의 가족을 늘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져왔다고 루터는 말합니다. “즉 욕망에 근거하여 자신의 가정과 정부를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각주:5]
  
  이러한 루터의 통찰은 우리를 몇 가지 현실적 지침으로 안내합니다. 첫째, ‘크리스텐덤’적 태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루터가 두 왕국론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바이기도 한데요. 크리스텐덤은 우리가 주류 다수이고, 이 땅을 기독교 왕국으로 생각하는 발상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을 다 정복하여 구원받게 하고, 이 땅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종교적 신념이 꼭 세속 질서의 방식으로 모두 정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바꾸자는 변혁적 관점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했던 것처럼, 우리의 불확실함이 확실성을 확보하려는 욕망으로 세상 가운데 발현되는 것을 우려하고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인간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믿음이 아닌 하나님의 경륜과 통치에 대한 믿음과 신앙으로 그 위치를 바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신뢰하기보다 인간의 노력만으로 삶의 축복을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태도를 왜곡시킵니다. 이것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먼저 감별하고 해석하려 하기보다,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고 복무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현대사회는 진실이 무엇인지 도무지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의 홍수, 미디어 시대입니다. 그리고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강력한 정치적 수사들이 난무하는 포퓰리즘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이성이 혹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지는 않는지 분별이 필요합니다. 

  앞서 두 개는 우리가 어떻게 선거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태도의 문제였다면, 마지막은 무엇을 위해서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선거와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정치에 머무르는 삶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추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희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서 만물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정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구체적인 이웃에 대한 관심 그리고 집단, 민족 간의 화해 더 나아가 고통받는 피조세계에 대한 회복 의지로 이어집니다. 즉 내 주변의, 내 밖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루터의 신학적 정치

  루터는 영적 권위 밖에서는 법과 이성이 종교적 교리와 신념보다 더 강하게 작동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전제되는 것은 세속적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세속 통치자나 법, 이성들도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사로잡혀 있어야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즉 인간을 위한 교만과 욕망에 사로잡혀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삶의 정치가 아니라,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선하신 정치에 거하는 삶을 추구했던 것이었습니다. 루터의 신학은 말씀 중심의 신학이었습니다. 교회 중심의 신학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밖의 세속영역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정의로 우리를 인도하고 이 땅의 이데올로기, 숨어있는 거짓 신학들을 물리치는 정치신학입니다. 폭력적 크리스텐덤이 아닌 섬김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진실을 알 수 없는 시대에 진실을 분별하려 이성의 노력을 다하며, 나의 이기를 넘어서는 관심과 사랑에 사로잡혀 선거장에 나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과 말씀의 끊임없는 신실함에 따라 살아가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1. Habermas, “‘The Political’. The rational Meaning of a Questionable Inheritance of Political Theology,” 23-25. [본문으로]
  2. Taylor, “Why We Need a Radical Redefinition of Secularism,” 49-51. [본문으로]
  3. 엄밀히 보자면 루터는 두 왕국론의 기틀 아래에서 ‘두 정부론’이라는 용어를 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두 왕국론’으로 통용되기에, 이 글에서는 두 왕국론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루터 신학의 관점과 문제로써 ‘두 왕국론’을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다음을 참고하라. 베른하르트 로제, 『루터 입문』, 박일영 역 (서울, 복있는 사람, 2019) 367-378. [본문으로]
  4. David Haddorff, Christian Ethics as Witness: Barth’s Ethics for a World at Risk, 132. [본문으로]
  5. Michael Laffin, The Promise of Martin Luther’s Political Theology: Freeing Luther from the Modern Political Narrative. 189-19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