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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올림픽에 관한 단상

파리 2024 올림픽에 관한 단상 / 김서영

 

김서영

 

들어가며

프랑스 파리에서 2024년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화려하게 센강에서 펼쳐진 개막식을 시작으로,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최선을 다한 경기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사랑과 자유’의 축제라고도 불리는 파리 올림픽의 화려함 뒤에는 다양한 그림자들이 존재한다. 이 글은 그러한 그림자들을 문제 제기하고, 파리 올림픽에 대한 사회적, 신학적 성찰을 하고자 한다.


문제 제기 1: 탄소발자국을 줄이다?

파리 올림픽은 탄소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약속하고 준비한 첫 번째 국제 스포츠 행사다. 이전 올림픽에서 배출된 평균 350만 톤의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ARO 접근법(방지, 감소, 상쇄)에 배출량 예측과 실천을 추가한 방법론을 도입했다.[각주:1] 인프라 건설을 줄이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소들을 선정했으며, 경기장에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이용해 재생 가능한 전기를 공급했다. 식사는 지역 제철 농산물과 채소 위주로 준비했고, 음식물 낭비나 쓰레기를 최소화했으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감소시키는데 노력했다. 또한 ‘기후 코치’라는 앱을 개발하여 파리 올림픽 관계자들이 탄소발자국을 인식하고 줄일 수 있게 도왔다. 이렇게 파리 올림픽은 전 지구적 기후 비상사태를 인식하고,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후원사들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데 진정으로 관심이 있어 협력한 것인지, 아니면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을 위해 올림픽을 이용하고 있는지 말이다. 진심이든 이용하려 했든 결국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협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기업들이 자사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친환경 기업으로 둔갑하는 것은 자연을 마치 도구로 여기고, 인간 문명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마구 사용해왔던 인간의 부끄러운 형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생태계를 살리는 척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모습은 인간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둘째,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뿐만 아니라 모인 모두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데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다. 근본적으로 올림픽은 세계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이기에 탄소 배출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올림픽을 계속 개최하는 것이 맞는지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올림픽을 계속해야 한다면,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관계자들의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올림픽 장소에 모인 선수, 관중, 기업, 주최국의 협력이다. 때때로 기후 비상사태에 대해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의 대응의 큰 효과를 이야기하며,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 변화에 대해서는 덜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 또한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고, 개개인의 변화는 실타래가 얽혀 있듯 서로 연결되어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따라서 모두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힘쓰는 것이 바로 그곳에 모인 이들과, 더 나아가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끊임없이 요청되는 바임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 제기 2: 올림픽 정신이 지켜지다?

올림픽 정신은 스포츠를 통해 심신을 향상시키고, 선수 간의 우정과 연대감을 증진시키며, 평화롭고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기여하는 것을 추구한다.[각주:2]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땀을 흘리며 경기하는 과정에서 나누는 존중과 우정이 세상을 평화로 이끌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이러한 올림픽 정신이 깃든 장면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탁구 혼합복식에서 메달을 받은 남과 북, 중국 선수들이 함께 셀피를 찍은 장면이다. 웃음 가득한 선수들의 표정은 정치적으로 갈등과 외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 동아시아의 얼어붙은 긴장을 완화시키는 듯했다. 이 장면은 올림픽 정신이 가장 잘 표현된 사례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에서 이렇게 올림픽 정신이 지켜지는 상황만 있지는 않았다. 올림픽 개막 하루 만에 금지약물을 복용한 이라크 유도 선수와 나이지리아 복싱 선수가 적발됐다. “올림픽 대회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의 어록처럼, 올림픽의 이상은 참가와 노력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각주: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메달에 집중되고,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심지어 약물복용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니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메달 수에 따라 국가의 순위가 매겨지는 올림픽 형식이 국제 평화 증진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세계 스포츠인들의 우정의 장이 아닌, 국가 간의 국력 과시의 전시장으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시장 경제 속에서 진행되는 파리 올림픽은 단순한 국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결합한 형태의 산업임을 인지해야 한다. 박구용 교수는 올림픽 조직위원회, 방송사, 기업, 국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①국가 대표라는 상징적 이름으로 선수들을 호명하여 힘겨루기를 시켜놓고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걷거나 각국의 방송사로부터 중계권료를 걷는 올림픽 조직들, ②지불한 중계료를 훨씬 능가하는 광고료를 챙기는 방송사들, ③국가 대표와 자사의 상품을 동일시하는 광고를 통해 국민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기업들이 협연하는 올림픽에서 국가는 제법 잘 팔리는 상품일 뿐이다”.[각주:4]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 같지만, 실제로 올림픽은 자본의 힘과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올림픽 정신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올림픽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후원사들이 올림픽을 이용해 그린 워싱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신학적 응답

파리 올림픽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인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 제기와 연결하여 설명하자면, 1) 전 지구적으로 요청되는 기후 비상사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지, 2) 지나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를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하도록 이끌 뿐만 아니라, 3) 연대와 화합의 가치를 되새기도록 돕는다. 누군가는 이러한 반성이 그리스도인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고립된 집단 공동체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본받아 세상에서 샬롬,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평화에 대한 소망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의 평화를 꿈꾸는 올림픽 정신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타자와 생태계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으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죄로 여기며, 자기중심적이고 소비적인 삶의 습관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회개요,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의 방향임을 고백한다. 또한 전 세계에 기후 비상사태가 선언되면서,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도 기후 정의와 관련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녹색 교회를 세우는 등 다양한 활동에 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지구가 점차 지속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가는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지를 하더라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은 화석연료,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지내온 삶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 탄소발자국 줄이기를 위해 시행한 여러 활동들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서, 또한 교회, 기독교 공동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점검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건강한 식탁 공동체에서부터 에너지 절약에 이르기까지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창조세계를 돌보는 척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이러한 시장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죽음의 경제”라고 규정하고, “생명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민중과 지구의 문제를 말하는 대안적 세계화(아가페 운동)”를 제안했다.[각주:5]이 운동은 불평등과 부정의를 극복하고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데 동참하도록 이끌어왔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자본의 논리에 맞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함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스도인은 공정하지 않은 승리를 바라거나 경제적 이득만을 최우선시하는 세상의 논리를 비판하며, 평화로 가는 길에 연대와 화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나가며

올림픽이 오랫동안 지향해온 정신과 이상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했다. 파리 올림픽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시도와, 모인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상대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이러한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앞으로 개최될 올림픽에서도 지속되기를 바라며, 다음 네 가지의 소망을 담는다. 첫째,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국가와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경각심을 느끼고 동참했으면 좋겠다. 둘째, 파리 올림픽에서 시도했던 탄소 배출량 감축 방법론을 평가하고 수정하여, 다음 올림픽을 준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매뉴얼로 발전시켰으면 한다. 셋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양심까지 속이는 행동들을 반성하고, 올림픽 조직위원회, 후원사, 참석자, 시청자 모두가 기존의 올림픽 정신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넷째,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지구 공동체가 평화를 구현하는데 동참하도록 부름받았음을 늘 기억하길 바란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갈등, 사건 사고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파리 올림픽이 세계 평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했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