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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기후위기

기후위기 - 거짓말 아닌 거짓말

 

 

“기후위기” 참으로 답답한 주제다.


너무 자주 들어서 감각이 무디어진 탓인가? 한 개인 혹은 한 교회는 물론이요 한 나라가 감당하기에도 너무나 벅찬 주제라서 그런 것인가? 위기의 원인이 너무나 근본적이라서, 그래서 개인의 삶은 물론이요 집단의 삶을 향해서도 감당할 수 없는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라서, 정면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일단 비스듬히 곁눈질하듯 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코로나 19로 인한 재난을 경험한 이후에도, 그리고 곳곳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환경재앙을 바라보면서도, 위기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이해 가능한 말이 아니다. 신익상이 말한 것처럼,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심각함은 잘 안다. 그 위기가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당장 내게 시급한 그래서 내가 모든 힘을 다해서 감당해야 하는 문제는 기후위기를 핑계 삼아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아니 그런 식으로 문제 삼거나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져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기후 위기가 아무리 심각해도 나의 문제, 우리 교회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교회가 기후위기를 넘어 생태적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후위기의 삼각성과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삶의 문제 사이에 연결성을 신앙적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진형은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생태적 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자신 안의 욕망을 성찰하여 우리가 상호의존의 존재임을 자각함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생태적 전환은 우리 사회의 약자와 생태계를 향한 지배와 폭력의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선한 싸움의 결론일 것이다.”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기술에서 올 것인가 신앙에서 올 것인가를 묻는 유승리의 질문에 대한 답도 같는 곳에 있으리라 짐작한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삶 위에 기후위기가 생존의 위기로 구체화되는 현실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살아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의 문제를 삶의 과제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세 분의 귀한 글을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부디 기도와 성찰의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건과 신학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