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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이 빌어먹을(수도 없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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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먹을(수도 없는) 세상에서 / 정성훈 정성훈 (상천감리교회)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이 또 들린다. 홀로서기를 시도하던 청년들의 극단적 선택, 생활고와 질병으로 고통받던 수원 세 모녀의 극단적 선택. 줄곧 들려오곤 했던 단어지만, 지난 여름, 유나양 가족의 ‘극단적 선택’ 이후, 이 단어가 무척이나 자주 들려온다. 혹자는 10살의 어린 소녀는 선택한 적이 없다지만, 그렇다면 부모는 과연 그것을 선택‘한’ 것일까? 스스로 자신의 생과 자녀의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에 놓였던, 아니 내몰렸던 이들에겐,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져야 할 누군가와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왜 열심히 노력하며 일하지 않았냐고! 그러면서 굳이 좋은 차를 탈 필요가 무엇이었냐고! 아이는 무슨 죄며, 아이만 불쌍하다는 우리의 말들은 결국 이 극단적 선택의 모든 책임을..
“이제 물이 찼다.”사회적 저체온증을 앓고 있는 시대를 비추는 말 / 김진아 김진아 목사 (기장총회 교육국 교재개발부장, NCCK 교육위원)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고사하고, 말이라도 그렇게 하던 시대마저 지나갔다. 한국 주류미디어의 시선은 ‘함께’가 아니라 혼자에 맞추어져 있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측면에서 혼자 해내는 것은 미덕이자 능력, 더 나아가서 가치와 흠모의 대상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강력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일은 알아서 하는 것이다. 누구도 알려주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이 말은 프라이버시의 존중이나 개인 권리 보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아주 적극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각자도생’의 불문율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성글기 짝이 없는 가운데 맞이하게 되는 ‘함께’가 아닌 ‘..
누가 이웃을 소비하는가? / 이윤석 이윤석 (NCCK 교회일치위원, 군산복음교회 담임목사) 이웃의 ‘고립과 단절’을 구경하고 소비하는 사회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우리 시대가 ‘고체 현대’에서 ‘액체 현대’로 변화했다고 짚었다. 그는 계획적이고 안정적이며 합리적이면서 예측가능한 사회인 고체 현대가, 급격한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등장, 소비주의의 심화 등으로 인하여 액체 현대로 변화되었음을 논증했다. 이를 통해 바우만은 오늘의 우연성, 불확실성, 이동성, 예측불가능성이 낳은 개인적 결과를 강조하고자 했다. 이 시대는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고, 개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유형의 삶을 모색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개인화하고 사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임을 그는 통찰했다. 전남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을 다루는..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김한나 김한나 (NCCK 신학위원) 지난 6월, 전남 완도군에서 10살 된 조유나양의 가족이 탄 차량이 29일 만에 육지로 인양되었다. 부검 결과 조양과 그 부모에게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고, 그들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숙소 CCTV에는 조양이 축 늘어진 상태로 부모의 등에 업혀 나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로 혐의를 적용했지만, 가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처럼,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자녀를 일방적으로 살해하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지속해서 발생하는 심각한 병폐 중 하나다. 또한, 일부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단순히 ‘일가족 동반 자살’로 규정하여 ‘오죽하면 자식을 죽였겠나’라는 동정여론과 함께, 자녀살해를 쉽게 용납하는 사회적 ..
리셋 버튼과 밥상 공동체 / 이해청 이해청 (성공회대학교)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출구는 점점 더 사라져만 간다. 삶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 어느새 손은 리셋 버튼 위에 올리어져 있다. 인간이라 지칭되는 그 명사에 도전장을 내밀고서라도 누르고 싶은 생각이 날뛴다. 심지어, 이제는 출구가 없더라도 좋다. 버튼을 누르고 싶도록 만드는 참혹한 현재, 이 현재가... 두 달 전 일가족이 완도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오갔다. 대략 두 주전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당시, 내 머리에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애도와 추모로 때우기만 하고 변화의 노력이나 의지는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지독한 회의가 몰아쳤다. 그렇게 고민만 하고 한 주가 흐..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들을 돌아보며... / 이영미 이영미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새가정 총무) 디어 마이 프렌즈! 2016년에 방영되었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제목이다. 소설가인 박 완(고현정)이 엄마(고두심)의 친구들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하고, 황혼을 보내는 이들의 삶을 적어가는 드라마다. 감동과 울림을 주는 여러 장면이 있지만, 그 가운데 잊지 못할 장면은 딸 완이가 30년 동안 꾹꾹 묻어왔던 이야기를 울분을 터뜨리며 엄마 장난희를 향해 분노하는 장면이었다. 딸 : 앞으로 내 인생에 끼어들지마. 엄마 : 끼어들면? 끼어들면? 엄마가 니 인생에 끼어들면 어쩔건데, 이 기집애야! 딸 : 난 엄마꺼니까,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은 못하지... 여섯 살 때, 할머니 집 앞 들판에서 약 먹였을 때, 나는 분명히 알았거든. 난 엄마꺼구나, 그러니까 무서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