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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청년(靑年), 그들의 세상을 말하다 -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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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문> 감히 어떻게 / 양권석 양권석(성공회대학교) 이 달의 사건과 신학은 따로 주제를 정하기 보다는,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여덟 사람의 글을 모아 보았다. 주제는 여덟 명이 모두 제 각각이다. 미래의 소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점점 더 어두워만 가는데, 학자금과 주거비용으로 무거운 부채를 안고 시작하는 청년들의 사회 생활에 ‘희년’이 필요하다는 외침이 있는가 하면, 청년 실업의 문제가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인 직장문화와 관련되어 있음을 고발하면서, 사업장의 민주화 없이는 청년실업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청년이 바라보는 정치 이야기도 있다. 유권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위해서 봉사하고 정치인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한 지금의 정치 현실을 고발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들을 대표할 수 있는 올바른 대의정치 실현을 위..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 도라희년 도라희년(믿는페미) 11월의 마지막 주일, 어느 때보다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예배를 드렸다.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감사로 넘쳐나는 그 때, 동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불법촬영유포 피해 협박을 받던 한 여자 연예인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숨을 고른 후, 인터넷 기사를 찾아봤다. 그를 애도하는 글만큼 많이 보인 댓글은 불법촬영피해영상을 ‘유작’이라고 소비하며 죽음을 조롱하는 글, 윤리적인 잣대로 자살의 타당성을 논하는 글, 그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사회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글이었다. 젠더폭력의 최전방에 노출돼 있는 연예인들의 생명과 죽음은 언제나 사람들의 ‘논쟁거리’로 쉽게 타자화 된다. 여자가 죽어가는데도, 그래서 죽..
청년의 일자리는 많다. 그런데 왜 / 전세훈 전세훈(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청년단체 배움품앗이 대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한국의 청년 일자리 문제가 정말 극악무도한 수준일까? 생각보다 한국의 청년일자리에 대한 거시지표는 괜찮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못 미치는 청년 실업률을 가진 국가다. 2018년을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의 평균 청년 실업률은 11.0%, 한국은 9.8%다. 그 외에도 최근 5년 간 청년실업도 높다고 할 수 없다(아래 그림 참고). 이는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 이러한 통계상의 오류가 나오는 이유는 ‘청년’을 ‘몇 살까지로 볼지’가 달라서다. OECD 국가들은 청년기준이 15~24세다. 반면에 한국은 병역과 학업 문제로 취업연령이 높아서 15~29세가 청년이다. OECD 평균보다도 고용률이 낮은 이유 역시도 경제활동..
정치가 약속하는 내일 / 정유현 정유현(녹색당 전국사무처 활동가) 20대 국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들의 힘으로 일궈낸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기대 속에서 지금의 정부가 등장했다. 광장으로 나왔던 천만 시민들이 바라고 꿈꾼 세상은 분명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회로의 정의로운 대전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 안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나. 2019년 12월 6일, 오늘도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한 일터에서 죽어나간다. 장애인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한다. 이주여성들은 숱한 폭력을 당하고도 침묵을 강요받고, 여성들은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죽임 당한다. 청소년들은 등교 거부를 하며 기후위기를 외치고 성소수자들은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다. 동물들은 소비되고 버려지고 이용당한다. 누가 이상적인 사회를 바라던가...
고함: 에큐메니칼(刀)에 대한 쓸모 from Young Ecumenist / 남기평 남기평(한국기독청년협의회, EYCK) 2019년은 ‘자존감’에 대한 자기계발서가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오버스펙이 정점에 달했기 때문에, 판가름을 할 또 다른 기준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서류전형 후(기존의 스펙은 당연하거고), 면접에서는 ‘자신감’과 ‘당참’이 필요하게 된다. 거듭되는 과잉 속에서, 우리(청년이)가 속한 사회는 개인의 쓸모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이제 더 이상 자의나 능동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좌절-실패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 실패는 시도한 후 쓸 수 있는 단어라고 본다-을 직접적으로 겪은 후, 자연스럽게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좌절은 냉소를 불러일으키고, 계속된 좌절은 자존감을 무참히 찌그러트린다. 결국, 우리(청년이)가 속한 사..
신학교를 그만둡니다 / 이중호 이중호(청년) 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제소리를 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왼쪽 입꼬리 위에 점이 매력적인 이중호입니다. (오른쪽 입고리 위에도 퍽 매력적인 점이 있습니다.) 지난 10월 31일을 기점으로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자퇴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퇴서를 내면서 이런 글을 Facebook에 올렸습니다. 『학부를 포함하면 그래도 6년을 공부했고 휴학 기간을 포함하면 오늘까지 10년이란 시간을 신학함의 자리에서 보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며 저는 끝까지 인간을 사랑하는 신을 읽었고 들었고 보았고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받은 제 소명을 멈출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교단 목사가 되는 것은 그만 멈춥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있을 때면 ‘노잼’은 죄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
시스템과 우정이 부재하는 대학에서 / 정혜진 정혜진(Somnium 간사) 나는 공부를 하며 때론 가슴이 뛰고 대체로는 고통에 시달리는 대학원생으로서,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술장)에 부재하는 것 두 가지를 이야기함으로써 대학의 불평등 문제와 청년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의 대학에는 시스템과 동료가 없다. 연구자를 키우고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거의 없고 그것은 동료 없음을 가리킨다. 누군가는 “대학에는 당연히 동료라는 것은 없고 경쟁 상대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동료’라는 명칭이 와 닿지 않는다면 ‘친구’라고 바꿔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혹자는 “왜 여기까지 와서 친구를 찾느냐”고 이야기한다. 동료든 친구든 동학이든 하여간 대학에서는 기대하지 않게 되는 관계의 유형이 있고,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