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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청년(靑年), 그들의 세상을 말하다 - 2019년

시스템과 우정이 부재하는 대학에서 / 정혜진

 

정혜진(Somnium 간사)

 

나는 공부를 하며 때론 가슴이 뛰고 대체로는 고통에 시달리는 대학원생으로서,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술장)에 부재하는 것 두 가지를 이야기함으로써 대학의 불평등 문제와 청년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의 대학에는 시스템과 동료가 없다. 연구자를 키우고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거의 없고 그것은 동료 없음을 가리킨다. 누군가는 “대학에는 당연히 동료라는 것은 없고 경쟁 상대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동료’라는 명칭이 와 닿지 않는다면 ‘친구’라고 바꿔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혹자는 “왜 여기까지 와서 친구를 찾느냐”고 이야기한다. 동료든 친구든 동학이든 하여간 대학에서는 기대하지 않게 되는 관계의 유형이 있고, 그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학(원)의 인간관계의 기이함’을 토로하는 데서도 실감할 수 있다.

 

석박사 과정을 밟는 많은 연구자들은 상당수의 논문 지도가 어깨 너머로, 간접적으로 경험되거나 (유사)술자리 또는 논문심사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 논문 지도는커녕 수업에서 교수를 본 적을 손에 꼽는다는 대학원생들도 여럿 만났다. (결코 수십 년 전 이야기가 아니다.) 대체로 교육은 시스템(체계) 없이 교수 재량에 따라 이루어진다. 대학 자본은 교수 권위를 최대한 활용해 대학을 경영한다. 대학 행정이 엉망이고 대학 내에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은 딱히 새롭지도 않은 사실이다. 교육이 선생의 시혜가 되니 학생-교수 간의 위계는 고착된다. 교육이 위계 관계를 토대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후진지를 알고 있더라도 실제 교수들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앎을 위반하게 한다. 대학원생은 배우기 위해, 연구자로 살아가기 위해 교수의 권위에 종속된다. 교육/지도가 친밀성의 관계에 기대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다수의 대학 내 성폭력은 논문 심사를 앞두고, 논문 지도를 빌미로 삼아 자행된다. 대학원생들은 공부는 교수 없이 하는 거라며 세미나를 구성하거나 독학자가 되는 등 대학 안에서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연구를 계속하고자 한다. 그러나 오직 권위(들)만 존재하는 학술장에서 강제되는 것과는 다른 연구자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러한 상상을 포기하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다.

 

타인의 슬픔에는 가까스로 곁을 내어줄 수 있어도 기쁨에는 함께 하기 어려운 외로운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나의 불안한 위치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히게 되는 순간에는 불안이 우리의 공동 운명이라는 말은 무력하다. 고통의 공통성을 자원 삼는 전략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에, 딛고 일어서고자 하기 때문에, 고통은 자꾸만 위계화된다. 나는 그런 외로운 순간마다 ‘다르게 살겠다’는 다짐을 애써 반복하곤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떻게 다르게 살까? 학술장에서 크고 작은 이익집단을 구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찾고/되고 싶어 하는 것은 욕심일까?

 

대학에 시스템과 동료 대신에 존재하는 것이 ‘이익 네트워크’다. 이철승은 386세대가 완성한 조직 구조의 유형을 ‘네트워크 위계’로 명명하며 자리와 충성의 교환, 파벌의 확장, 권력직/이권의 교환 및 장기보전을 그 부정적인 효과로 지적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의 대학에서 이와 다른 방식의 학술 실천을 찾아볼 수 있을까? 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의 발전에 비례해 경쟁도 발전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경쟁은 상품의 값을 싸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노동생산성과 생산규모에 의존하기에 소자본은 항상 대자본에게 격파된다. 경쟁은 언제나 다수의 소자본가의 멸망으로 끝난다. 물론 대학원생들은 자본가가 아니지만, 자본주의 정신이 되어버린 경쟁은 학술장 또한 가격 경쟁을 위해 죽어라고 생산성(실적)을 높이는 생존자들의 행동 양식이 미덕이 되는 공간으로 만든다. 어떻게 이익 네트워크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 것이며, 경쟁자가 아닌 동료가 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