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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 참가기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 - / 추은지 추은지 (평화교회연구소 사무국장)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가 열렸다. 감사하게도 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청년 활동가로 총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독일로 출국하기 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나에게 큰 의미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기독교 내 각 교단에서 WCC 회원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WCC 탈퇴의 이유로 WCC는 다원주의와 동성애를 찬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들을 많이 들어왔던지라, 나에게도 WCC는 한국교회와는 다르게 매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곳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한국교회에서는 낼 수 없는 목소리..
낯선 평화들과의 만남 / 김진수 김진수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평화를 위하여 카를스루에 궁전 앞 큰 길을 따라 걸어내려오다 보면 흰색 텐트들이 줄지어 늘어져있다. 9월의 따가운 햇살을 그대로 받아내는 40여개의 천막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구호를 내걸고 부스를 운영한다.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진 브로셔를 나눠주는 이들, 서명운동에 동참해주길 외치는 이들,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공연하는 이들.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바쁘게 오가는 곳. 제1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희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펼쳐진 브루넨(Brunnen)의 풍경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Christ’s Love Moves the World to Reconciliationa and Unity” 2013년 부산에 ‘마당’이 있었다..
세계교회 그리고 한국교회, 기후위기대응을 위해 가야할 길 - WCC 11차 총회, 기후정의시위에 연대하며 / 임지희 임지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이번 세계교회협의회 11차 총회를 앞두고, 이번이 마지막 총회가 될 것이란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그만큼 7년 후 다음 총회를 기약하기 힘들 정도로 기후위기가 목전에 와닿았다는 것이며, “기후위기 대응”은 세계교회가 이번 총회에서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11차 총회를 마치고 한달여 시간이 지났다. 과연 이번 총회는 기후위기대응을 위해 얼마나 나아갔는가? 지난 총회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 WCC 총회 전체회의, ‘창조세계의 회복’을 주제로 열다 WCC 총회의 전체 첫번째 회의 첫 번째 주제는 ‘창조 세계를 위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화해와 일치’를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창조세계 없이 살 수 없으며, 창조세계의 회복은 그리스..
이상한 신학생의 WCC 여행기 / 김지원 김지원 (협성대 신학대학원, NCCK 교육위원) 1. 그래 계속 이상해주자 독일. 유럽여행은 다녀온 적 있지만 독일은 관심 가는 나라도 아니었기에 들르지도 않았었다. 유럽의 한중간에 위치한 나라라 비행편이 많다는 정도와 신학 강의에서 들었던 독일 철학과 신학자들에 대한 얕은 지식이 전부였다. 그리고 칼스루에라니. 베를린도 뮌헨도 하이델베르그도 아닌 유명하지 않은 곳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할까 싶었다. 게다가 신학생인 나는 8월 말에 개강 일정이 시작돼 WCC에 참석하면 2주나 학교를 빠지는 무리한 일정을 감수해야 했다. 더군다나 학교에서 딱 한명, 나 혼자 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장학금은커녕 공결처리도 되지 않는 비협조적인 상황, 은근하게 반대하는 학교의 분위기와도 맞서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도 그만두게 ..
이 빌어먹을(수도 없는) 세상에서 / 정성훈 정성훈 (상천감리교회)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이 또 들린다. 홀로서기를 시도하던 청년들의 극단적 선택, 생활고와 질병으로 고통받던 수원 세 모녀의 극단적 선택. 줄곧 들려오곤 했던 단어지만, 지난 여름, 유나양 가족의 ‘극단적 선택’ 이후, 이 단어가 무척이나 자주 들려온다. 혹자는 10살의 어린 소녀는 선택한 적이 없다지만, 그렇다면 부모는 과연 그것을 선택‘한’ 것일까? 스스로 자신의 생과 자녀의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에 놓였던, 아니 내몰렸던 이들에겐,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져야 할 누군가와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왜 열심히 노력하며 일하지 않았냐고! 그러면서 굳이 좋은 차를 탈 필요가 무엇이었냐고! 아이는 무슨 죄며, 아이만 불쌍하다는 우리의 말들은 결국 이 극단적 선택의 모든 책임을..
“이제 물이 찼다.”사회적 저체온증을 앓고 있는 시대를 비추는 말 / 김진아 김진아 목사 (기장총회 교육국 교재개발부장, NCCK 교육위원)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고사하고, 말이라도 그렇게 하던 시대마저 지나갔다. 한국 주류미디어의 시선은 ‘함께’가 아니라 혼자에 맞추어져 있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측면에서 혼자 해내는 것은 미덕이자 능력, 더 나아가서 가치와 흠모의 대상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강력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일은 알아서 하는 것이다. 누구도 알려주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이 말은 프라이버시의 존중이나 개인 권리 보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아주 적극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각자도생’의 불문율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성글기 짝이 없는 가운데 맞이하게 되는 ‘함께’가 아닌 ‘..
누가 이웃을 소비하는가? / 이윤석 이윤석 (NCCK 교회일치위원, 군산복음교회 담임목사) 이웃의 ‘고립과 단절’을 구경하고 소비하는 사회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우리 시대가 ‘고체 현대’에서 ‘액체 현대’로 변화했다고 짚었다. 그는 계획적이고 안정적이며 합리적이면서 예측가능한 사회인 고체 현대가, 급격한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등장, 소비주의의 심화 등으로 인하여 액체 현대로 변화되었음을 논증했다. 이를 통해 바우만은 오늘의 우연성, 불확실성, 이동성, 예측불가능성이 낳은 개인적 결과를 강조하고자 했다. 이 시대는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고, 개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유형의 삶을 모색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개인화하고 사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임을 그는 통찰했다. 전남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을 다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