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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이 빌어먹을(수도 없는) 세상에서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김한나

 

김한나 (NCCK 신학위원)

 

지난 6월, 전남 완도군에서 10살 된 조유나양의 가족이 탄 차량이 29일 만에 육지로 인양되었다. 부검 결과 조양과 그 부모에게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고, 그들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숙소 CCTV에는 조양이 축 늘어진 상태로 부모의 등에 업혀 나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로 혐의를 적용했지만, 가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각주:1] 

이처럼,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자녀를 일방적으로 살해하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지속해서 발생하는 심각한 병폐 중 하나다. 또한, 일부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단순히 ‘일가족 동반 자살’로 규정하여 ‘오죽하면 자식을 죽였겠나’라는 동정여론과 함께, 자녀살해를 쉽게 용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부모가 왜 자살을 했느냐?’ 라는 의문에 앞서 ‘부모가 동반 자살 시 왜 자녀를 살해했는가?’라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조양 사건과 같은 ‘자녀살해 후 자살’ 사건의 원인을 자녀를 소유물 혹은 부속물로 여기는 부모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고 언급한다. [각주:2] 실제 몇몇 사례에서 살펴보면, ‘자녀살해 후 자살’을 선택한 부모들은 평소 자녀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식을 부모 없는 자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경우 부모들은 자신을 살인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자녀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녀살해 후 자살’ 사건은 가족의 결속력을 중시하고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동양 문화권에서 자주 발생한다.  [각주:3] 
    

학자들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유교주의적 가족 이해가 이러한 사건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즉 아버지를 중심으로 배우자와 자녀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상정하는 유교주의적 가족관념으로 인해, 아버지가 직면한 위기는 곧 가족성원 전체의 존립 위기로 인식되고 죽음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가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각주:4] 또한, ‘자녀살해 후 자살’ 사건의 가정은 주변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러한 고립된 삶은 부모가 죽은 후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불안으로 이어져 ‘자녀살해’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 복지제도의 미비로 인해 부모가 자녀 양육의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국내의 상황과 핵가족화된 가족 형태 등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사건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자녀살해 후 자살’ 사건을 ‘동반 자살’이 아닌 아동학대의 범주로 명확히 규정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 시도로부터 생존한 일부 피해자들은 그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건 당시의 공포와 불안을 일상에서 반복 경험하며 고통을 받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사건은 낯선 사람이 아닌 가장 신뢰하던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이기 때문에 자녀에게는 더 큰 정신적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여기서 심각한 것은 아동학대로 인해 부모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는 과정이 아동의 영적 성장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각주:5] 이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배우고 학습하는 아동기에 부모의 학대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가해자인 부모의 모습을 투영하여 하느님을 공포와 불신의 대상으로 여기며 그분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게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를 경시하는 유대 사회 속에서 오히려 한 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마18:1-5) 주님은 어린아이의 겸손함과 부모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태도, 교훈을 순수하게 믿고 수용하려는 자세 등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하기를 원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우리가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고 양육해야 함을 명령하신 것이다.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마18:10) 

사랑으로 양육과 보호를 해주어야 할 부모로부터 살해를 당하는 아이들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피해 생존자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교회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임이자, 인간의 영적 영역과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서, 하느님의 사랑과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된 가족들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손을 내밀고, 정부와 협력하여 이들을 위한 복지와 인식개선에 힘써야 한다. 제도적 변화도 중요하겠지만, 가족을 운명공동체로 간주하는 유교주의적 가족관의 와해와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이 시급한 과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사회구성원의 가치관 변화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여, 사회적 여론형성과 제도적 개혁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https://www.yna.co.kr/view/AKR20220802068800054   [본문으로]
  2.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20629_0001925250#_enliple [본문으로]
  3.   ‘나는 왜 죽어야 하나요?’, SBS ‘그것이 알고싶다’, 2022.7.30.   [본문으로]
  4. 이현정, ‘부모-자녀 동반자살’을 통해 살펴 본 동아시아 지역의 가족 관념’, 한국학연구 40(2012.3.30.),191쪽, [본문으로]
  5. 안미옥, ‘아동학대에 대한 교회의 인식과 대처 방안에 대한 연구’, KRJ 41(2017), 133-168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