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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바캉스

[취지문] ‘바캉스’가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쉼’을 생각한다.

‘바캉스’가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쉼’을 생각한다.

- 양권석(성공회대학교)

 

철지난 바캉스 이야기는 왜? 휴가철 다 지났는데 뒤 늦게 무슨 휴가 이야기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닐까? 지치고 덥고 짜증나서, 이곳 저곳으로 달려가지만, 오히려 무더위와 매연과 사람들의 홍수에 더욱 지쳐서 돌아오는 경험이 더 많았던 바캉스 시즌이 끝난 지금이 오히려 휴식과 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으로 이번 <사건과 신학>은 다양한 종교적 전통에 속하면서,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귀한 분들을 모시고, 쉼과 휴식에 대한 생각들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 여름휴가라는 중대사를 치뤄내면서 지쳤던 몸을 추스려 다시 일상과 일터로 돌아가는 그 길에서 오히려 참다운 쉼과 휴식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김조년 선생님의 말처럼 바캉스라는 말이 산업화와 함께 우리에게 온 말이라면 정말로 아이러니다. 대중을 산업노동력으로 동원하기 위해서, 그 때까지 이어져 온 노동과 휴식의 리듬을 완전히 개조하여 365일 24시간 일에 매달릴 수 있도록 시간, 공간, 인간관계를 급격히 재조직하던 때가 아니었던가? 휴식과 쉼의 가치가 배부른 자의 사치로 여겨지던 바로 그 때에 바캉스라는 말이 등장했고, 사실상 휴가와 쉼이 사라진 자리에 바캉스라는 말이 오히려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바캉스는 불가능해진 쉼과 휴식을 향한 전도된 욕망이요, 그 쉼과 휴식의 환상적 성취를 선전하는 휴가상품을 향한 소비 욕망과 집착이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홍인식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언급해 주셨듯이 여름휴가 혹은 바캉스라는 말을 들으면, 멈춤, 휴식, 안식 같은 이미지가 생각나면서도, 동시에 탈출이나 일탈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작업장에서 일하듯이 바캉스라는 목표와 성과의 성취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애쓰는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서 휴가도 경쟁이 되고, 돈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그 액수에 정비례하여 얻어지는 투자 대비 효과가 되고, 소비상품이 된다. 경쟁과 독점을 위한 욕망이 충돌하고, 누리는 자의 사치와 못누리는 자의 절망이 쌓이는 과정이 되고, 빈부격차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쉼없이 계속되고, 우리의 삶은 잠시 멈추어 쉬거나 생각할 틈도 없이, 해소할 수 없는 피로가운데 내 던져진다.

하지만 필자들의 생각은 바캉스에 대한 비판에 머물지는 않는다. 멈춤, 쉼, 휴식의 참된 의미를 성찰하고 있고, 참된 휴식과 휴가의 의미와 가능성을 다양하게 상상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그 밝고 명랑한 얼굴들 뒤에 감추어진 피로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잠시 도피하거나, 일탈하거나 해서 풀릴 것 같지 않은 피로감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와 가족과 학교와 사회가 그들의 삶을 만들어 온 전 과정이 그들을 내리 누르고 있는 모습 같은 것이다. 그런 상황을 느낄 때 마다, 이들이 며칠 쉰다고 그 오래된 피로가 풀릴까, 이들이 잠시 자기를 잊기 위해서 몇 시간씩 컴퓨터 게임을 한다거나 일탈적 행동을 한다고 정말 그 피로를 풀어 낼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여러분 자신과 세상을 지금까지 배운 틀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으려면, 그래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정말로 얻고 싶으면 딴짓을 좀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일, 전혀 할 수 있으리라 예상치 못했던 일, 전혀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세계와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휴가가 필요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살아오고 흘러온 과정을 멈추어, "나는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 과정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해 온 언어를 의심에 붙이는 과정이며,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전혀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한상봉 선생님은 시몬 베이유의 생각을 이어 파업이 곧 휴가라고 말한다. 노동자의 삶을 옥죄는 감옥같은 일터와 족쇄 같은 기계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요,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과 깊은 화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아나뱁티스트인 문선주 선생님에게서 이는 휴가 시간을 보내는 대안적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혼자만의 도피가 아니라, 공동체적 관계를 확인하는 휴가, 일상과 직업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 깊은 갈등들이 화해의 가능성을 만나는 휴가, 자연과 생태와의 관계 회복을 꾀하는 자연친화적 휴가를 말한다.

정경일 선생님의 명상에 관한 개인적 경험의 회고는, 멈춤과 쉼의 의미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멈추어 쉬면서 자신과 세상을 다시 본다는 것은, 파편화된 경쟁의 공간에서 피할 수 없이 연결된 삶을 깊이 통찰해 내는 일이며, 분 단위, 초 단위로 갈라서 팔거나 사는 시간이 아니라, 비록 짧은 순간일지라도 거기에 영원이 깊이 스며드는 충만한 시간을 만나는 일이다. 윤혜린 선생님은 일이 아니라 휴가의 생산력을 말한다. 그리고 기본 소득을 보장해 줌으로써 그 휴식이나 휴가의 생산력이 살아나는 새로운 경제와 삶을 그린다. 모든 것이 상품가치로 환원된 세계로부터의 결별하여, 다른 사람의 삶과 자연의 의미를 깊이에서 재발견하는 휴가와 휴식의 본래적 의미가 살아나는 삶을 꿈꾼다. 성서가 말하는 안식일과 희년의 희미, 그리고 창조질서가 회복되는 세계의 꿈이 여기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귀한 글들 위에 여러분들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일 만큼이나 휴가와 휴식의 힘을 믿는 새로운 삶이 구체화되는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