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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성탄, 성찰 2019

소망이 사라진 곳

 

한수현(감리교신학대학교)

 

왕의 왕
유대땅 언덕에 목동이 서있네
소망이 사라진 곳을 향해
그 때에 구세주 탄생하셨다는
천사의 소식 들려왔네
호산나
호산나
온 땅이여 찬양해
참 소망의 주 오심을
세상은 여전히 어둡게 보여도
주님은 왕의 왕 구세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노래, 빌 가이더 트리오(1970년대 미국의 유명 가스펠 트리오)의 노래 중 하나인 ‘왕의 왕(King of Kings)’의 한국어 가사이다. 필자는 2019년을 정리하며, 25일 성탄절을 맞이하며 이 노래가 자주 생각났다. 예수가 태어나던 때, 유대왕국은 헤롯대왕의 치하에서 마지막 남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결국 70년에 로마에 의해 무너지게 될 예루살렘과 그 위에 세워진 성전에 기대어 명맥을 이어갔다. 에서의 자손인 에돔의 후예로 말해지던 이두메인이었던 헤롯은 유대의 마지막 왕조 하스모니안 왕조의 여자와 결혼함으로 유대인의 대왕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런 그의 꿈을 이루고자 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성전 건축 계획이었다. 성전을 짓는 시간은 십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성전을 증축하여 일대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기 위한 계획은 헤롯이 죽고 그의 아들의 아들에 까지 이어졌다. 63년에 완공된 성전은 불과 6년만에 서쪽벽만 남긴채 로마에 의해 처참하게 짓이겨진다. 결국은 무너질 소망, 그 사라질 소망을 향해 한 목동이 서있었다. 그렇게 노래는 시작한다.

 

소망이 나타날 곳을 향해 서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사라진 곳을 향해 우리는 서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2019년은 적어도 나에겐 그런 해였다. 세월호 특별법도, 검찰개혁도, 노동자들 위한 개혁입법도, 경제개혁도 사라진 소망으로 저물어 가고 있다. 차별금지법도, 성소수자를 위한 입법들마저 차기 총선을 위해 묻어버렸다. 그렇게 소망으로 시작한 2019년의 시작은 어느덧 언덕 너머로 그 어떤 기약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언덕위의 목동은 돌아설 줄 모른다. 발길을 돌려 누군가를 찾아갈까, 이젠 포기하고 새로운 주제와 사업을 찾으러 가야하나? 그러나 목동은 그 언덕위에 꼿꼿이 서서 소망이 사라진 곳을 보고 있다. 때로는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이익, 나의 욕망,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이야기라면 아직도 여전히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언덕에 함께 올라 소망이 사라진 곳을 향해 서있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일상에 바빠 그들이 서있는 곳에 함께 서있지 못해도, 그들이 서있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 2020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젠가 그 곳에 탄생하는 구세주는 아마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어떤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그 곳을 향하여 기다리는 자에게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무엇일 것이다. 예수를 따르던 자들은 그것을 '참 소망'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무엇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 채 드려도 행복했던 예수를 '참 빛'이라 하였다. 그 빛이 세상의 어둠을 헤치고 온 땅을 밝히자 그 빛을 따르던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밝아졌다. 그래서 2020년은 기다림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소망을 자신을 즐겁게 하기보다 타인의 삶에 빛이 되는 데에 둔다면 하나님의 아들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이름으로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