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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학교폭력

학교폭력 ; 말해지기 어려운 이야기

 

“학교폭력”

 

유명인들의 학창시절 폭력이 폭로된 것을 계기로 잠잠했던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온 학교폭력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어디에도 명확한 대답은 없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우리 사건과 신학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3월, 학교폭력 사건이 온 사회에 떠들썩할 때 사건과 신학으로 다루기 위하여 주제로 삼았지만 접근하기에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말해지기 어려운 진실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학교폭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야말로 학창시절, 철부지들이 저지른 일을 문제삼아 뭐하겠냐는 시각에서부터, 행여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창창한 아이들의 앞길을 막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각까지, 그러니 조용히 좋게 좋게만 문제를 해결하자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바로 그 학창시절에, 바로 그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은 십수년의 시간이 흘러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아니 그 상처는 몸과 마음을 파고들어 일상생활이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고,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를 이끌어냄으로 공동체가 회복되는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회복적 정의’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학창시절 폭력의 대상자이기도 했던 김자은은 “착한 말 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도 황필규가 ‘직면하여 문제를 바로 볼 것을 그리고 어렵지만 정의 회복을 통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 형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김자은은 교회가 그런 공간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희망의 이름을 빌어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건과 신학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