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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더 글로리와 학교폭력

드라마 글로리와 학교폭력 / 오세조

 

오세조 목사 (NCCK 신학위원장)

 


 

들어가는 말

요즈음 드라마 <더 글로리>의 인기가 상당하다. <더 글로리>는 <파리의 연인>(2004년), <미스터 션샤인>(2018년) 등의 인기 작가인 김은숙 작가의 극본을 바탕으로 안길호 PD가 연출을 맡아 ‘시즌 1’과 ‘시즌 2’로 나누어 넷플릭스(Netflix)에서 방영되었다.

<더 글로리>는 공개 직후에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아시아권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2023년 2월에는 넷플릭스 최대 흥행작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반영하듯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문동은’역을 맡은 송혜교의 인기뿐만 아니라, 악역으로 등장하는 조연 배우 5명의 인기도 상당해서 이들 모두는 ‘제2의 연기 인생을 산다’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다.

더불어 드라마 속의 ‘최혜정’이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인 ‘하도영’을 두고 평가한 ‘나이스 한 개새끼’라는 신조어는 사람들 간에 꽤 유행했다. 이뿐만 아니라, ‘시즌 1’은 2022년 12월 30일에 방영되었으며 ‘시즌 2’는 이로부터 약 2개월 후인 2023년 3월 10일에 비로소 방영되었는데, 시즌 2가 개봉하기도 전에 이미 유튜브에는 드라마 속의 악역들이 과연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예상하는 짧은 영상물들이 아주 많이 올라왔으며, 그 조회수도 상당했다.

그러면 왜 우리 사회는 드라마 <더 글로리>에 이토록이나 열광하는 걸까? 단순히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유명하며, 또한 이들의 연기가 매우 뛰어나서일까? 물론 이런 부분도 드라마의 인기에 한 몫을 분명 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더 글로리>에 열광하는 또다른 이유는 아마도 이 드라마의 주된 주제가 ‘학교폭력’이기 때문임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그저 단순하게 고발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복수극’이라는 것도 큰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사실 폭력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폭력’이라는 주제는 우리 인간 사회에서 동떨어질 수 없는 사회문제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직장 내 폭력, 가정 내 폭력 등에 관한 대중들의 관심은 늘 높다. 하지만 다른 폭력보다도 학교폭력에 관한 한국 대중들의 관심은 더 높은 편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 이유는 이런 것 같다.

첫째,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곧 사회의 성공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 현장에서의 불평등과 학교폭력은 언제나 한국 사회의 주된 이슈였다.

둘째, 학교폭력을 다루는 드라마가 <더 글로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는 것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바로 ‘공정’과 ‘기회의 균등’이기 때문이다. 즉 공정이 사라지고 학생 본인들의 실력이 아닌 부모의 부의 축적 정도에 따라 균등해야 할 기회가 크게 손상당하는 우리 시대의 어두운 면이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대중들이 많이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또한 특별한 경우에는 교육자의 눈으로 학교폭력을 바라보며 그 해결책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과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드라마 <더 글로리>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본론

학교폭력의 현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은 학교폭력의 실태이다. 2022년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응답률은 1.7% (5.4만 명)으로 2021년 1차 조사 대비 0.6% 증가했으며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 3.8%, 중학교 0.9%, 고등학교 0.3%로 모든 학교급에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각주:1]

한편, 피해유형별 응답 비중은 ① 언어폭력(41.8%), ② 신체폭력(14.6%), ③ 집단따돌림(13.3%) 순으로 2021년 1차 조사 대비 집단따돌림(14.5%→13.3%)의 비중은 감소했으나, 신체폭력(12.4%→14.6%)의 비중은 증가한 수치이다.

모든 학교급에서는 ‘언어폭력’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14.6%)와 중학교(15.5%)는 ‘신체폭력’이, 고등학교(15.4%)는 ‘집단따돌림’이 높게 나타났다. 교육부는 이런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2023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 교육부의 통계수치로 보면, 학교폭력은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러면 이러한 한국의 교육 현실 가운데 김은숙 작가가 <더 글로리>에서 표현하는 학교폭력의 문제는 어떤 요소들이 있을까?

잘못된 교권과 권위

성인이 된 문동은의 복수 대상은 학창 시절 자기를 괴롭혔던 5명의 동급생만이 아니다. 부모의 돈으로 매수당해 오히려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을 감싸며 피해자인 문동은을 괴롭힌 당시 담임 선생 ‘김종문’도 문동은의 복수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문동은이 자퇴서를 내자, 교사로서 자기의 경력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오히려 문동은에게 2차 폭력을 가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후에 장학사가 되고 싶은 그의 아들 수한에게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존속살인을 당하고 만다.

하긴 드라마 속의 이런 가짜 선생은 김종문뿐만 아니다. 문동은이 근무하는 세명사립초등학교 교사인 ‘추정호’는 아동의 사진을 몰래 찍는 변태 선생으로 문동은에게 이 사실이 들통이 나서 학교에서 해고당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 속의 보건교사인 ‘안정미’ 같은 선한 인물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더 글로리>에 그려진 교사들의 모습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면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이런 교사들의 부정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까? 학교폭력은 단순히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의 방관, 무능, 무책임 등도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요인임을 지적한다. 결국 잘못된 교권과 타락한 권위로는 학교폭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공권력의 부패

드라마 속에 박연진 패거리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은 사실 문동은만이 아니다. 박연진 패거리는 문동은을 괴롭히기 전에 이미 ‘윤소희’라는 동급생을 폭행했다. 문동은은 이런 윤소희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자, 윤소희 대신 박연진 패거리가 찾은 새로운 괴롭힘의 대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윤소희는 끝내 박연진에게 살해당한다.

어쩌면 이 살인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었으면, 문동은을 향한 박연진 패거리의 학교폭력은 여기서 멈추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박연진이 살인죄로 감옥에 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박연진의 엄마 ‘홍영애’의 사주를 받은 비리 경찰 ‘신영준’의 개입 때문에 그냥 자살 사건으로 종결된다. 이것이 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학교폭력은 반드시 사회법으로 처벌받아야 하며, 그 과정에는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개입하여야만 한다. 하지만 공정해야 할 공권력이 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면, 학교폭력은 근절될 수 없다. 이는 시즌 2에서 문동은이 “그동안 제 이야기 들어줘서 감사했어요”라고 했을 때 “들어야죠. 18년이나 늦었지만”이라고 말하는 다른 경찰관의 대답에서 우리는 드라마의 복선처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올바른 공권력은 공정과 권위라는 면에서 앞서 언급한 올바른 교권과도 매우 상관이 높다. 특별히 최근에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사의를 표명했던 ‘정순신 변호사 사건’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그려지고 있는 일들이 그저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우리의 현실의 삶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크게 시사한다.

가정교육과 학교폭력의 관계

학교폭력은 수적으로 많은 패거리가 소수의 학생 또는 한 명을 괴롭힐 때 주로 발생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더 글로리>의 악역 5명 중에서는 서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서열은 바로 ‘부모의 부의 축적 정도’이다. 즉 부모가 상당한 부를 가진 박연진과 전재준은 집단 내 서열 1, 2위이며, 대형교회 목사의 딸인 이사라가 3위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세 명은 대화 중에 서로의 말에 대해 반박할 정도로 서열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리 부유해 보이지 않은 최혜정과 손명오의 집단 내 위치는 위 3명과 크게 다르다. 해서 최혜정은 늘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녀가 학창 시절부터 부자 부모를 둔 전재준을 동경하는 이유도 아마 전재준을 통해 신분을 상승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 때문이다. 손명오도 성인이 된 후에는 전재준 밑에서 일하지만, 문동은이 이런 손명호를 은근히 비난하자, 곧 분개한다. 가해자 그룹에서도 부에 따라 서열이 엄격히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부모의 부는 엄청나지만, 가정교육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집단 내 서열 1인 박연진의 엄마인 홍영애는 돈만을 추구하는 인물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그 일이 범죄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시즌 2에 보면 자기의 안전을 위해서는 딸을 버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감옥에서조차 딸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악녀이다. 이런 엄마에게 올바른 가정교육이 이루어졌을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딸에게 부정을 막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등의 행동으로 엄마에게 받은 가정 내 폭력이 박연진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아무 잘못을 하지 않은 동급생인 문동은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괴롭힐 수 있는 그녀의 내적 원인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문동은에게는 자신과 같은 부모의 재력과 힘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반면 피해자인 문동은의 엄마는 자기의 딸을 심하게 괴롭힌 박연진에게 돈을 받는 조건으로 딸 문동은의 학교폭력을 그저 방치하고 시즌 2에서는 오히려 딸을 괴롭히는 모습에서 가정 내 폭력이 학교폭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더 글로리>에 개신교회의 모습

위의 요인뿐만 아니라, <더 글로리>에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주의 깊게 봐야 할 한 인물과 그녀를 둘러싼 장면들이 있다. 바로 드라마 속에서 학교폭력에 가담한 ‘이사라’는 서울의 각계각층의 친목의 장인 ‘성한믿음교회’ 담임목사의 딸이라는 점과 그녀의 대사, 그리고 문동은의 시각에 보여지는 대형의 모습이다.

드라마 속 ‘이사라’는 화가이지만, 뒤로는 마약을 한다. 그런데 친구인 최혜정에 의해 마약한 자기의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이 공개되자, 그녀는 그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남의 아픔을 기뻐하는 자, 사탄일지어다!”라고 하며, 최혜정의 목을 연필로 찌른다. 마치 죄의 심판관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사라의 자기의 대사 그대로라면, 학창 시절 문동은의 몸을 고대기로 지지며 아픔을 주면서 기뻐한 이사라 자신이 사탄이다. 그럼에도 이사라는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최혜정만을 사탄으로 규정한다. 즉 이사라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는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논리적 장치일 뿐이다. 이는 죄인과 사회적 약자를 돌보신 예수의 사랑을 강단에서는 선포하지만, 정작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생산하며 또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심판이 마치 교회에게 있는 것 같이 행동하는 한국 교회의 이중성을 드라마 속 의 대형교회 목사의 딸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투사한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교회로 찾아온 문동은에게 과거 학교폭력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건네면서 ‘상도덕은 지키자. 삥 뜯어가며, 왜 이렇게 신성한 곳에서 보재’라는 대사에도 그녀는 이미 교회를 사업으로 생각하는 면을 은근히 드러낸다. 또한 그녀는 문동은에게 돈을 건네면서 ‘넌 이제 천국 못 가. 난 갈 수 있거든.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라는 대사에서 한국 개신교회의 믿음은 중세 시대 면벌(죄)부 신학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면벌(죄)부에 대한 신학적 논쟁으로부터 탄생한 교회가 바로 개신교회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문동은은 이사라의 이 말에 ‘빽 좋네, 그래 죽으면 꼭 천국 가, 사는 동안은 지옥일테니까!’라고 말로 한국 개신교회의 구원신학이 그저 죽은 후 천국 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을 꼬집고 있다. 더욱이 이 장면의 배경에 흐르고 있는 찬송가의 가사는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변했네”이다.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처럼,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아 삶이 변해야 하지만, 정작 구원받았다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신자의 삶은 전혀 바뀌지 않는, 즉 한국 개신교회의 모습은 찬송가의 가사, 그리고 그리스도교 교리와는 정반대임을 작가가 은연중에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드라마 속의 장면들은 현재 한국 개신교회가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를 낱낱이 고발하는 장면들이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더 글로리>에서 김은숙 작가에 의해 그려지고 있는 학교폭력의 요인들을 몇 열거했는데, 요약하면 1) 잘못된 교권과 일그러진 권위, 2) 공정해야 할 공권력의 부패, 3) 가정교육의 부재 및 가정 폭력 등이다. 여기에 덧붙여 드라마 속 대형교회 목사의 딸인 이사라라는 인물을 통해 4) 현재 한국 개신교회가 드라마에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를 함께 살펴보았다. 그러면 교회가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도록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실 공의와 공정은 우리의 사회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사람들은 이런 공의와 공정이 무너질 때 분노와 무기력함을 느낀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더불어 공정과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시대의 공의가 무너질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인 예언자를 보내셔서 이를 경고하셨다. 이처럼 교회의 기능에는 예언자의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잘못된 교권이나 공권력의 부패에 대해 늘 경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불어 교육의 기초는 바로 가정교육이듯이 신앙교육의 기초 역시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이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였다. 그래서 루터는 『소교리문답』을 쓸 때, 항목마다 ‘가장이 가족에 가르쳐야 할’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어쩌면 공교육이 무너지고 학원 교육이 이를 대체하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학교를 기초로 한 가정교육의 회복이 교회가 이 시대의 학교폭력을 막는 방법을 제공할 수도 있다.

끝으로 그리스도교는 ‘용서’의 종교이다. 그래서일까? ‘이사라’라는 목사의 딸을 굳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등장시킨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이 처절한 복수 전에 박연진을 직접 만나 자기가 한 일을 자백하고 공개적인 용서를 구하면 자신의 복수를 멈추겠다는 장면을 넣는다. 박연진에게 일종의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박연진은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니 인생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옥이었어. 아,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며 이를 철저히 무시한다. 사실 권선징악, 인과응보는 용서와 함께 구약성경의 또 다른 큰 주제이다.

용서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 회개하고 그 죄에 대해 책임을 질 때만 이루어진다. 이사라처럼, 그저 진정한 사과도 없이 가해자인 문동은에게 돈만을 지불한다고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나라, 즉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교회는 자신들만의 게토에서 살면서 그리스교의 교리를 무기로 사회적 약자를 심판하는 심판관도 아니다.

어쩌면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를 통해 한국의 개신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이 시대의 올바른 권위는 무엇이며 어디서 나오는지를 함께 질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작가의 이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도 그저 입이 아닌 행동으로서 말이다.



<사건과 신학> 시즌 3은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자료(교육부, 2022년 9월 5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