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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출생신고조차 박탈당한 아이들

생명의 존엄성과 아동 인권을 위한 교회의 역할 / 조은하

 

조은하 교수 (목원대학교, 기독교교육)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금년 초, 여름 태백지방에서 지방 연합 교사 세미나를 하였다. 강의 중 최근 출생률 저하, 지방 소멸 등의 문제로 지방으로 갈수록 아동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 아동의 수도 적어지는 것을 설명하며 마을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교회뿐 아니라 마을의 아이들이 우리가 돌보고 보살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교사 세미나였지만 지방의 전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참여하였고, 강의가 끝난 후 세미나에 참여했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내가 교회 아이들 줄어드는 것만을 걱정하였는데 이제는 마을의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너무 기쁩니다.”

한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는 통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심리학자 브로펜브뢰너(Urie Bronfenbrenner)는 생태학적 체계이론으로 설명한다. 생태학적 체계이론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발달을 이해하는 것으로 미시체계, 중간체계, 외체계, 거시체계, 시간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체계들은 서로 다른 구조로 되어 있으나 상호작용한다. 하나의 층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갈등은 다른 층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인간이 태어나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직접적 환경뿐 아니라 방대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Bronfenbrenner의 생태학적 체계모델 [각주:1]
  


 
출산과 양육 그리고 아동의 인권

브로펜 브뢰너의 모형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출산과 양육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적 영역의 일만은 아니다. 공적인 책임과 관여가 있어야 하고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보살핌과 돌봄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래없이 저출생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2018년부터 만 6세 미만의 일부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국가의 책임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하는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헌법 제10조)

이러한 행복추구권은 아동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은 국제사회가 이 세상 모든 아이를 위해, 그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 증진, 실현하기 위해 만든 약속이다. 우리나라도 1991년 비준한 국제법이다. 우리 헌법 제6조에서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과를 지님을 명시하고 있다. [각주:2]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전 세계 196개국(2021년 1월 기준)이 비준한 국제협약으로 가장 많은 비준국가를 보유한 국제인권법이다. 캐나다, 노르웨이 영국, 스웨덴, 등의 선진 국가는 법과 제도와 정책, 문화와 교육 분야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은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으로 정의되며, 지금-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존귀한 존재이며, 권리의 주체자로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아동을 폭력과 차별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그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각주:3]
 

최근 영아 살해 및 학대에 대한 소식이 빈번하게 들리고 있다. 이러한 때에 아동의 인권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켜가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써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출생통보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안전한 아이, 행복한 육아,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간략하게 제언해 보고자 한다.



인권의 사각지대, 출생신고도 없이 사라지는 아이들

최근 우리는 한 가정집, 아이들도 자라고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 그 집의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30대 친모는 경제적으로 곤궁하다는 이유로 2년 연속 아이들을 살해하고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었다. [각주:4]
 
2023년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2015년~2022년 중 의료기관에서 출생했지만, 출생신고가 안된 우리나라의 미등록 아동이 2,236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들 중 23명을 선정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밝혀지며 사회문제가 되었고,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영양 결핍으로 사망했거나 출생 직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사례도 확인되었다. [각주:5]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그림자 아기’의 사례를 접하면서 우리는 영아 인권에 대한 문제와 출생과 양육의 공적 시스템에 대하여 다시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출생신고는 국적취득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되어 아동의 성장 발달에 필요한 의료, 보육, 교육 등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아동 출생신고에 대해 혼인 중의 출생자에 대해서는 부모가 신고할 수 있고 혼인외의 출생자에 대해서는 모가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1항 및 2항).

제46조(신고의무자)
①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②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UN 아동권리협약 당사국이지만, 아동권리협약에서 권고하고 있는 ‘출생등록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출생통보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출생신고가 안된 영아들이 유기되거나 살해되는 범죄를 막기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2023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우리나라에도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정보를 국가기관에 통보하는 일명 출생통보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각주:6]
 

출생통보제와 피난처 법 (Baby Moses laws)

국가가 아동의 출생 사실 정보를 인지하는 것은 영아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출생통보제 도입은 영아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기본적 체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병원밖에 태어난 영아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 마련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수원 영아 사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생활이 어렵고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았을 때, 이를 기피하기 위하여 병원 밖 출산이 더 높아질 수 있는 개연성도 있다.

미국과 영국은 출생통보제도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로 미국은 출산에 관여한 의료기관 등이 출생증명서를 국가기관에 직접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영국은 의료기관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출생등록을 한 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은 혼인관계가 아니어도 부모로 출생등록증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등 미혼모나 미혼부의 아동들까지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각주:7] 또한 미국은 부모가 아이를 포기할 시 아이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일명 ‘피난처 법’을 많은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피난처법(Infant Safe Haven Laws)은 ‘버려진 영아 보호법(Abandoned Infant Protection Laws)’으로 불리기도 하며 부모가 양육할 수 없는 환경이거나 양육을 원하지 않는 경우 영아를 안전한 지정 장소에 익명으로 두고 갈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다. 1999년 미국 텍사스에서 시작하여 ‘아기 모세의 법 (Baby Moses laws)’ 라고 불리기도 한다. [각주:8] 뉴욕주의 ‘버려진 영아 보호법’에 의하면 부모가 출생 30일 이전의 아기를 포기할 시 익명을 보장하고 처벌의 두려움 없이 포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아기가 안전하게 보호되도록 하고 있다. [각주:9]
 

우리나라에 베이비박스가 시행된 2010년 이후 2017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영아는 총 1,186명인데 2017년 보건복지부 연구에 의하면 양육 곤란과 입양 곤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양육 곤란의 사유로는 경제적 어려움 (38.80), 심리적 어려움(32.4), 단독 양육의 어려움 (34.3)이 가장 컸으며 입양 곤란으로는 출생신고 건 (15.1%)이 가장 컸다. 양육 곤란의 경우는 가족과 이웃의 지원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며 입양 곤란의 경우 익명출산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프랑스, 체코, 독일, 미국 등의 사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서로 충돌하지 않는 법제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안전한 아이, 행복한 양육, 건강한 사회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그 생명은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자신이 스스로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영아는 한 사회의 법률과 제도, 문화와 인식 등이 그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형태로 바뀌어져야 한다. 법제에 대한 부분은 그 첫걸음이다. 아동 유기의 이유로 ‘양육의 어려움’을 들었던 바와 같이, 양육을 한 개인의 책임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육아의 사회적 분담과 책임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나아가 아이의 부모가 행복한 양육을 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가족의 지원,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인 지원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2015년 육아정책연구소가 예비 부모와 영유아 부모 1.020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가정 내 아동 양육에 대하여 부모 교육 제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85% 이상이었다. 이러한 교육이 임신과 출산을 앞 둔 신혼부부 시기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양육 태도 및 가치관에 대한 교육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응답하였다. 부모 교육의 내용도 세분화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90% 이상이었으며, 영아기에는 건강 영양에 대한 교육, 유아기에는 자녀와의 대화 방법을 가장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각주:10]
 

교회는 아동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근접한 미시체계에 있다. 교회는 행복한 육아를 감당해 갈 수 있는 교육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과 아울러 우리 사회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는 법제나 사회, 정치적 차원의 지원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미혼모나 입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하며, 출생한 생명이 고귀하고 존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세 어머니-모세의 누나-바로의 딸 그녀들의 이야기

레위 가문의 어떤 남자가 레위 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자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석 달 동안이나 길렀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 공주가 갈대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그때에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바로의 딸이 대답하였다.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주겠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젖을 먹였다. 그 아이가 다 자란 다음에, 그 여인이 그 아이를 바로의 딸에게 데려다주니,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공주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출애굽기 2장 1-10, 표준새번역)

아이를 기를 수 없으나 안전하게 갈대 상자에 넣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 모세의 어머니, 바로의 딸이 아이를 발견했을 때 지혜롭게 나서서 어머니를 유모로 데리고 온 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삯을 지불하고 아이를 기르고 양자로 삼았던 바로의 딸. 그녀들은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 아이를 보호하고 살리기 위하여 지혜와 힘을 모았고,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내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물에서 건져낸 자 모세는 한 민족의 역사를 가르는 인물로 성장하였다. 

이 이야기가 더욱 더 선명하게 들려지는 때이다.

  1. 출처:Shaffer, D. R.(1999). Developmental psychology: Childhood and adolescence (5th ed.) Brooks/Cole. 크리스천 라이프, 2005년 9월25일 이미지 참고. [본문으로]
  2. 『유엔아동권리협약』, (서울: https://www.ncrc.or.kr/uncrc_child/index.html#page=2 dbdpsdk) [본문으로]
  3. 국제아동인권센터, "유엔아동권리협약이란?" [본문으로]
  4. iMBC, 2023.6.30.보도. https://imnews.imbc.com/news/2023/society/article/6498773_36126.html [본문으로]
  5. 한국일보, 2023.6.22. 출생신고 안된 신생아 23명 추척. 3명 사망 [본문으로]
  6.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17096,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3.6월 30일 [본문으로]
  7. 오유빈,"미국과 영국의 출생신고제도", 2023년 7월 27일 국회자료 [본문으로]
  8. https://www.childwelfare.gov/pubpdfs/safehaven.pdf. “Abandoned Infant Protection Laws“ [본문으로]
  9. https://ocfs.ny.gov/programs/safe/ [본문으로]
  10. 차선자, "영아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한 법의 역할", 2019 육아정책 심포지움 <아동행복, 육아 행복 실현을 위한 생애주기별 육아정책의 방향과 과제>, 1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