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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출생신고조차 박탈당한 아이들

그림자 아기를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 / 오세조

 

그림자 아기[각주:1]를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
-교회는 최후이자 최선의 사회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오세조 (NCCK 신학위원장, 팔복루터교회)


감사 배경과 조사 경위

감사원은 보건복지부의 위기 아동에 대한 정부의 관리 실태를 조사하는 정기감사 과정에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 동안 병원 출산 기록은 있지만, 아직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영·유아가 무려 2,236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지역별로 경기 641명, 서울 470명, 인천 157명, 경남 122명, 전남 98명, 경북 98명 순 등이었다. [각주:2]
 
이에 감사원은 출생한 신생아가 출생신고 전이라도 예방 접종을 위해 7자리 ‘임시신생아번호’가 부여된다는 점을 고려해 이들을 계속 추적했다. [각주:3] 감사원은 이 가운데 이유 없이 연락을 거부하는 경우 등을 고려해 23명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 아동은 이번 감사에서 영양결핍 등으로 이미 사망하거나 [각주:4] 보호자가 베이비박스에 유기한 것[각주:5]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수원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 발생

감사원으로부터 해당 사실을 통보받은 수원시청은 이를 조사하던 중, 34세의 여성 K 씨(88년생)가 조사를 거부하자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이 사건을 의뢰했다. 사건을 의뢰받은 경찰은 출동하여 K 씨의 자택을 압수 수색한 결과, 2023년 6월 21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의 한 아파트 가정집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여[각주:6] / 남[각주:7])가 발견되어 영아들의 친모인 그녀를 긴급체포했다. K 씨는 경찰조사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적으로 검찰은 그녀를 ‘살인 및 시체은닉죄’로 구속 기소하였다.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 전수 조사 결과

보건복지부는 앞서 언급한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제기된 예방접종통합시스템에 주민등록 번호로 아직 전환되지 않고 임시신생아번호로 그대로 남아 있는 아동에 대해서 2023년 6월 28일부터 지자체 행정조사 및 경찰 수사 의뢰를 통해 시행한 전수 조사 결과를 2023년 7월 18일에 발표했다. 이 결과 보고에 의하면, 출생미신고 아동은 총 2,123명으로 밝혀졌으며, 이들 중 1,025명의 생존을 확인하였고, 나머지 1,098명 중 249명은 사망, 35명은 의료기관 오류, 814명은 현재 경찰 수사 중이다.[각주:8]
 

출생통보제 국회 본의회 통과

현행법상 병원에서 출산하면 의료기관은 이를 행정기관에 반드시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없으며, 부모가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만일 부모가 1개월 이내 지자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 5만 원이 부과된다. 이런 배경으로 아동의 출생신고 누락을 방지하기 위한 ‘출생통보제’[각주:9]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인 2022년 3월 2일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 2022년 3월 4일에 국회에 제출되었다.[각주:10] 이후 국회에서는 정부안을 비롯한 의원발의 개정안이 함께 논의되어 마련된 대안이 2023년 6월 30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각주:11] 개정법은 공포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또한 보건복지부도 출생미신고 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 소재 및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각주:12]
 

누구의 생명인가?

이 사건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단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생명을 취할 권리가 과연 부모에게 있는가는 문제이다. 신학적으로 모든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아무리 어린아이일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단지 자녀를 낳은 부모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자녀의 생존권을 박탈할 수 있는 권리는 부모에게는 없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아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 구약성서의 전통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있었던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찬조 연설을 한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저의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낼 수 없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저의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저의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저의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저에게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이 나라를 작동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각자의 개인적인 꿈을 추구할지라도, 미국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입니다.” 


이후 버락 오바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2012년에는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창세기 4장 9절에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죽인 형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 오바마는 “저는 제 형제자매를 지키는 사람입니다”라고 답변한다.

이스라엘에는 ‘고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가 있다. 형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 동생이 대신 형수에게 들어가서 형의 대를 잇는 형사취수제, 어떤 사람이 이유 없는 살해를 당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척이 이를 복수하는 피의 복수자, 룻기에 나오는 기업 무를 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동생, 가장 가까운 친척, 기업 무를 자가 곧 ‘고엘’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고엘’ 즉 대신 책임져 주는 사람이 없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엘, 즉 이들의 책임을 자발적으로 자청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다. 즉 하나님이 ‘고아, 과부, 나그네’의 ‘고엘’이다. 이런 이유로 ‘고아, 과부, 나그네’는 이스라엘이 여유가 있으면 보호해도 되고 여유가 없으면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적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라면 반드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회적 3대 약자이다. 왜? 바로 하나님이 이들의 ‘고엘’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어겼을 때는 이스라엘은 전쟁까지 불사한다. 바로 사사기 19장의 이스라엘 11 지파가 베냐민과 전쟁을 벌인 이유가 바로 베냐민 땅인 기브아에 들어온 나그네 레위 사람과 그의 첩을 환대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핍박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핍박한 것은 바로 이들의 ‘고엘’인 하나님을 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살해당한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를 형 가인에게 물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지금 “살해당한 영·유아는 어디 있는가?”를 질문하신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이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나는 나와 내 가족만을 지키는 자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 안에 불행을 겪는 모든 사람을 지키는 자인지를 말이다. 사회적 공동 책임을 지기를 주저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그림자 아기들의 ‘고엘’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소외되는 이 사회적 약자들이 불쌍해서, 아니면 우리의 삶의 처지가 그들보다 나아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고엘’이기 때문에 교회는 이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회복지의 어머니인 교회: 종교개혁의 전통

20세기의 유명한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트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는 “교회가 사회사업을 낳은 어머니였으나, 교회가 서로 돕지 못해 사회복지사업을 세속사회로 넘겨주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각주:13] 이처럼 사회복지는 교회의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편 종교개혁은 보통 중세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된 종교 분야만의 개혁으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단지 종교 분야에서만 일어난 개혁이 아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교육 분야 등 인간 삶의 전체 영역에서 일어난 그야말로 ‘대개혁’이었다.[각주:14] 특별히 루터는 사회개혁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으며 『공동기금 감리』라는 책을 통해 효과적인 사회사업의 실천을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의 사회복지로 전환되어야 함과 조직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법으로 제정할 것을 주장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종교개혁의 도시 비텐베르크의 루터하우스에 가면 ‘공동 금고’(Gemeine Kasten)라는 궤짝 모양의 금고를 볼 수 있는데, 이 금고의 목적은 이 땅의 이웃을 돌보며, 과부와 고아, 그리고 공부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모금이었다. 이 정신이 현재 독일의 ‘디아코니아’(Diakonia)의 출발이기도 하다. 이처럼 교회, 특별히 개신교회의 출발은 나의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개인적 목적이 아닌, ‘약한 이웃에 대한 것’이었다.[각주:15]
 
그러므로 진정한 개신교회라면,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 극도로 궁핍한 아이들,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앓는 아이들, 그림자 아기처럼 부모에 의해 살해당하는 영유아의 최후이자, 최선의 안전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종교개혁의 전통에 따르는 개신교회는 이 사회의 모든 약자를 사회와 연대해서 막아야 할 것이다.


최후이자, 최선의 사회 안전망인 교회

최근 신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공공신학적 관점에서도 교회는 단지 지역 사회의 사회복지단체나 국가의 행정기관에 소정의 일부 금액을 기부하는 것을 이제는 넘어서서 이 땅의 소외된 가정의 아이들의 복지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보는 정책을 세우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더불어 ‘도시의 복지를 추구하는 신학’이라는 공공신학적 관점에서도 교회는 모든 시민, 특별히 사회적,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살거나, 존엄한 죽음조차 박탈당할 수 있는 이 사회의 가장 약자인 그림자 아기들의 ‘최후이자, 최선의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1. 출생신고 없이 임시신생아번호로 남아 있는 아동. [본문으로]
  2. 감사원 보도자료 "감사원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출생신고 없이 살아가는 이른바 '무적자' 아동 중 영아 살해 등 아동학대 사례 확인", [배포 2023.6.22.] [본문으로]
  3. 질병관리청의 『예방접종통합시스템』에 신생아의 출생일, 성별, 출생병원, 보호자 인적 사항이 기록되며, 출생신고가 될 경우, '주민등록번호'로 전환하여 예방접종이력을 관리하고 있음. [본문으로]
  4. 임시신생아번호 '22xxxx-4'(22년생, 경남 창원)는 영양결핍으로 사망. [본문으로]
  5. 임시신생아번호 '15xxxx-4'(15년생)는 출생 직후 보호자가 베이비박스에 아동을 유기. [본문으로]
  6. 임시신생아번호 '18xxxx-4' (2018년생) [본문으로]
  7. 임시신생아번호 '19xxxx-3' (2019년생) [본문으로]
  8. 보건복지부 보도 참고자료 "출생미신고아동 2,123명 전수 조사 결과", [배포 2023.7.18.] [본문으로]
  9.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의 출생정보 통보로 아동의 출생을 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출생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아동이 살해, 유기, 학대되는 등 위험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본문으로]
  10. 법무부, “우리 아이의 첫 권리,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출생통보제가 도입됩니다!” [배포 2022.3.2.] [본문으로]
  11. 법무부,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아동이 없도록 출생통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배포 2023.6.30.] [본문으로]
  12.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출생미신고 아동 조기 발견 체계 구축", [배포 2023.8.18.] [본문으로]
  13. Reinhold Niebuhr, The Contribution of Religion to Social Work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32) [본문으로]
  14. 최무열, 『사회복지의 뿌리를 찾아서: 기독교 사회복지의 역사』 (서울: 나눔의 집, 2008), 135; 종교개혁은 영어로는 "The Reformation"이며, 독일어도 "Die Reformation"으로 번역하면 그냥 '개혁'이다. [본문으로]
  15. 최주훈, 『루터의 재발견』 (서울: 복 있는 사람, 2017), 135-14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