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그리고 쉼
- 홍인식(순천중앙교회, 해방신학)
독일의 한인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의 사회를 “피로사회”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 말의 뜻은 쉼이 없는 사회라는 뜻이다. 쉴 새 없이 일하고 성취하고 무엇인가를 쫓아다니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모두가 피로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 사회는 피로사회일까 따라서 쉼이 없는 곳일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휴가철이 되면 TV에는 관광여행에 대한 광고가 쏟아진다. 실지로 공항이나 역을 나가보면 휴가철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피로하지 않는 사회이며 얼마든지 쉼을 즐길 수 있는 나라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회는 쉼이 있는 사회인가?
나는 40여년의 세월을 라틴아메리카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들의 문화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음으로 양으로 나의 삶의 스타일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 글에서는 나의 삶을 통하여 경험하고 성찰한 오늘과 내일 그리고 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에 대하여 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를 특징짓는 세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첫째는 amigo(친구)라는 단어이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있어서 친구는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모든 관계가 친구관계로 변한다. 대통령과 같은 고위정치가들도 그리고 경제인들도 재벌들도 친구처럼 사람들을 대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는 평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친구사이에는 소박함이 첫째 조건이다. 권의의식을 보이지 않고 소박한 모습(옷차림을 비롯하여)을 보여야 한다.
두 번째 단어는 fiesta(축제)이다. 축제는 미국 혹은 유럽의 파티 문화와는 조금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개방성에서 그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축제에서는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떤 차이도 극복되어진다. 축제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열려진 공간과 시간으로 간주된다.
축제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을 대변해 주는 독특한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축제에서 경험하는 자유로움과 즉흥성 그리고 개방성을 통하여 그들의 삶의 의미와 재미를 찾아간다. 축제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로 하여금 삶은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이들에게 인생은 고달픈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어는 mañana(내일)이다. 내일이라는 이 단어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점적인 단어이다. 우리는 늘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지 않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내일의 의미는 여유로 받아들여진다. “오늘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 내일이 있으니까.”라는 것이다. 내일의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급하지 않다. 그러기에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내일이 있기에 오늘의 삶에서 축제를 즐길 수 있으며 친구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특징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로 하여금 여유와 쉼을 갖게 만든다. 결국 여유와 쉼이 없이는 친구도, 축제도 그리고 내일의 희망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다른 한편으로 친구와 축제와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여유로운 생각 없이 ‘쉼은 없다’는 순환적인 생각이 발생한다. 친구, 축제와 내일 그리고 여유와 쉼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또 그것은 서로를 향한 순환적 작용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풍요롭지는 못해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대다수 민중들이 휴가(쉼)을 즐기는 모습을 살펴보는 일이다. 얼마나 소박하고 검소하고 간단한지! 버스 혹은 기차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간단하게 보이는 여행 도구를 소유하고 휴가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 화려한 시설과 장비로 가득 차 있는 우리들의 휴가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마음껏 즐기고 행복해 하는 그들의 휴가와 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질문을 갖기도 한다. ‘화려하지도 않고 경제적 능력도 없어서 초라하게 지내면서 뭐가 그리 행복하다고 저렇게 웃고 떠드는 것일까?’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의 휴가는 첫 출발부터 온갖 화려한 소비적 광고에 의해 시달린다. 장비 구입부터 시작하여 여행을 위한 화려한 의상을 준비하고 방문지의 명소들과 맛 집들을 검색한다. 기념품 구입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다. 어떤 경우에는 출발하기도 전에 준비기간에 이미 지치기도 한다. 휴가나 혹은 쉼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일로 전환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와 성취목적의 삶의 스타일에 젖어 있고 물들어 있는 우리들에게 휴가 혹은 쉼은 이미 하나의 매력적인 소비상품으로 변질되어 있다. 기업들은 휴가 혹은 쉼이라는 상품 판매를 증가하기 위하여 각종 광고 선전으로 고객들을 향하여 다가간다. 쉼이라는 상품의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가성비를 운운하면서 자신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들을 고르기에 노력한다. 이러한 쉼의 상품화와 소비재로의 전환은 우리 모두를 진정한 의미의 휴식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우리는 소비적 상품화된 쉼을 통하여 또 다른 의미의 실적(성과)주의에 빠지게 됨으로서 또 다른 의미의 피로를 경험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쉼에는 친구, 축제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여유로운 개념이 있다. 오늘 한국 사회의 쉼에 과연 친구와 축제와 내일이 있는 것일까? 오늘 우리는 마치 쉼을 소비재의 하나로서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비는 또 다른 피로를 우리에게 준다.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의 노동으로 다가온다. 오늘 우리가 필요로 하고 있는 진정한 휴식과 쉼은 무엇일까? 진정한 휴식과 쉼은 우리에게 재창조의 의미로 다가와야 한다. 쉼을 통하여 성과와 실적주의, 소비문화 그리고 소모적인 경쟁으로 피곤한 우리의 삶이 새로운 생기를 얻고 그래서 보다 나은 형태의 삶과 사회를 향한 역동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쉼과 휴식에서 배워야 한다. 친구, 축제 그리고 내일에 대한 여유로운 생각과 연결된 휴식과 쉼에서 배워야 한다.
상품화 되고 소비재로 변질된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쉼과 휴식을 넘어서 친구와 축제와 내일을 회복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휴식과 쉼을 찾고자 하는 운동이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인들 사이에서 발생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쉼과 휴식을 통하여 그동안 소홀히 생각하고 있던 우리의 친구들과 이웃들을 회복하고, 쫓기듯 경쟁에 매몰되었던 우리들의 삶의 태도를 변환시키면 좋겠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를 넘어서서 “걱정하지 말아라.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된다.”를 생각하면서 진정한 쉼과 휴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친구와 잔치가 있는 휴식과 쉼 그리고 경쟁을 넘어서 내일에 대한 시간적 여유를 회복하는 휴식과 쉼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삶은 경쟁에 찌들고 성과에 매달리는 피로사회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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