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건과 신학 1기/조국사태;가짜뉴스VS진짜뉴스? "의도없는 사실은 없다"

조국 보도참사; 팩트 체크? 팩트 만들기!

권혁률(성공회대 연구교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지명부터 임명과 사퇴에 이르기까지 몇 달간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뜨거운 논란에 휘말렸고, 심지어 사퇴 이후에도 그 여진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평생 기자로 언론계에 종사해온 필자는 남다른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흔히 ‘조국사태’ 혹은 ‘조국참사’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필자에게는 ‘조국 보도참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론의 기본기능으로 꼽는 것이 대표적으로 ‘게이트키핑’(Gate Keeping)과 ‘팩트 체크’(Fact Check)라고 할 수 있다. ‘게이트키핑’은 말 그대로 문을 지킨다는 뜻으로, 신문과 방송에서 뉴스 결정권자가 어떤 뉴스를 보도할지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 어떤 것이 보도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사회의 건전한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역할을 언론사가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몇 달간 매스컴을 장식한 조국 장관 관련 보도 가운데 상당 부분은 과연 ‘게이트키핑’ 과정을 거친 것인지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조국 장관 승용차가 아파트에 주차되어있다거나, 조국 장관의 딸이 사는 오피스텔에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급 외제차량이 주차되어 있다는 뉴스는 왜 보도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뉴스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그밖에도 무수한 기사들이 단순한 추측과 주장만으로 아무런 검증과정 없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땅의 내로라한다는 언론사들에 ‘게이트키핑’과정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 골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골키퍼를 상상할 수 없듯이, 게이트키핑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언론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언론의 기본기능으로 꼽히는 ‘팩트 체크’는 말 그대로 수없이 난무하는 여러 가지 주장과 정보 속에서 어떤 것이 사실인지, 또 어떤 정보나 주장이 허위. 과장. 왜곡된 것인지를 언론인의 전문성을 발휘한 취재과정을 통해 확인하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가짜뉴스’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에서의 가짜뉴스는 신문과 방송 등의 이른바 전통미디어보다는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가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가짜뉴스는 개인 유튜버나 파워 블로거 등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로 카카오톡 등의 SNS를 통해 전파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조국 장관 사태를 거치면서 거의 모든 언론사의 뉴스가 과장. 왜곡. 허위보도 또는 추측성 의혹제시 수준의 보도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른바 가짜뉴스 논란이 SNS가 아니라 정통미디어에서 촉발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시기에 주목할 만한 뉴스 하나가 보도되었다. 7월 17일 연합뉴스에 보도된 “한국 신문들, 팩트 체크가 아니라 팩트 만들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화여대 김창숙 박사의 학위논문을 소개한 기사인데, 한국 신문들이 취재와 편집과정에서 정치적 의도를 바탕으로 사실을 선택하고 배제해 신문사의 의견을 사실처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신문사들은 기사 작성 과정에서는 익명표기를 전제로 선별된 취재원을 통해 기자와 신문사의 주장이 강화되고 있으며 ‘~에 따르면’ ‘알려졌다’ ‘전해졌다’ 등의 무주체 피동형 문장과 주관적 술어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사실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김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에디팅 과정, 즉 간부들에 의한 편집과정에서도 사실이 확인,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정파성이 더욱 강화됐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한 근거로 “신문에서 봤다” 또는 “TV 방송에 나왔다”는 말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 자체를 우리 스스로 ‘팩트 체크’해야 하는 안타까운 언론환경 속에 살고있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김창숙 박사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사회불안 증가 등 주요 문제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 정파적으로 윤색되고 각색된 사실들이 한국사회에 떠돌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이 사실 확인자, 진실 검증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를 통해 사회통합과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언론이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며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을 하나님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뱀이 유포한 가짜뉴스에 아담과 하와가 속아 넘어가면서 벌어진 사건인 것이다. 지금 우리를 유혹하며 분열과 갈등,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가짜뉴스에 또다시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지혜와 분별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ps. 이런 안타까운 한국의 언론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는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에 ‘가짜뉴스 검증센터’설립을 제안하기로 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