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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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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장애인들의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보통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실제로도 내가 장애인 형님을 부축하며 이동을 할 때면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준다. ······· 그러나 만일 그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길을 가로막으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한다면, 사람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세상 사람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 시선의 진실이 드러난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이동과 교육과 노동을 ‘권리’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황푸하의 이 글이 우리가 4월 사건과 신학의 주제로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리 투쟁”을 삼은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장애인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을 생각한다 / 홍인식 홍인식 (새길교회/새길기독사회문화원) 지난 4월 17일 주일은 부활주일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과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를 통하여 시작된 하나님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지 않고 결국에는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희망을 우리에게 준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분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어떤 고난도, 아니 죽음까지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처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부활의 경험은 오합지졸과 같았던 제자들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부활이었다. 예수는 유대 땅에서 한 이름 없는 유대인으로 살다 죽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