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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성착취 폭력사건, n번방

집단 불법 성착취 영상거래사건(n번방 사건)과 여성신학적 실천 / 최은영

 

 

최은영(한국여신학자협의회 사무총장)


코로나19 사태가 인간이 자연환경을 억압하고 차별한 결과임을 드러냈다면, 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해왔음을 알려주었다. 일찍이 로즈마리 류터(R. Ruether)를 위시한 생태여성신학자들이 주장해 온 쌍둥이 차별이 떠오른다. 이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자연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매우 닮았다는데 연유한다.

 

n번방으로 불리는 사건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범죄로 주도자, 그들에게 동조한 가해자, 그로 인한 피해자가 존재한다. 여성 피해자와 남성 가해자라는 명확한 구분법으로 성소수자는 오히려 배제되어 있으며,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과 죽음에 못지않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지목을 억울해 하기보다,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일상을 위협하고 평생의 트라우마와 죽음까지 생각하는 심각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작년 한 대학교 강의에서 어느 여학생이 학교에서는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는 학생이 몇 년을 그래왔다는 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불법거래영상의 피해자들 대부분 특정 여성이 아니었던 것을 볼 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영상을 지우려 할 때조차도 많은 돈이 요구될 정도로 성산업이 발달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다른 성별격차지수(임금, 의료, 복지, 교육 등)에 비해 ‘안전’에 대한 남녀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여성은 딸, 아내라는 이유로 다른 남성들의 성적 대상물이 되기도 했다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성착취의 대상이 모든 여성으로 확대된 채 이루어지고 있다.

 

주도자로 체포되어 신상이 공개된 조주빈, 강훈은 연령대가 낮았으며, 컴퓨터를 잘 다루었고, 생활도 착실해 ‘범죄자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범죄행동은 영웅시되었고 많은 남성들(약 26만명)이 이에 동조했다. 평생 자신을 탓하며 상처 속에 살아갈 여성 피해자들이 있음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피해 범위도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넓었으며, 피해 내용의 가학성 또한 심각했다. 해당 사건에 가담한 남성들이 낱낱이 공개되고 처벌받아야 할 이유다.

 

성서에는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을까? 존재했지만 지금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성서는 온라인이라는 현대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사례 자체의 유사성을 띈 내용은 없다. 하지만 성서는 뿌리 깊게 내재화된 가부장제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성서의 저자와 독자는 성폭력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온라인상에서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언어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 채 50년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온라인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20년도 되지 않았고, 가해자의 연령대도 상당히 어리다고 한다. 그러한 영역에서 나이 든 남성이 배제되었다고 하기에는 온라인 외의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절망적인 것은 이러한 디지털성범죄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가해자의 편에 서 옹호하는 언론, 집단이 존재한다는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부탁하시던 문자에서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성착취사건’으로 정의된 문구를 발견했을 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성 목사님이 작성한 문구지만, 험난한 시절에도 성별을 떠나 마음을 나누고 연대의 힘을 가질 수 있겠다는 믿음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서가 오늘날에 다시 기록된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딸을 타인에게 성적 대상물로 내주거나,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를 여동생으로 속이거나, 최고권력자가 자신의 욕정을 참지 못해 남편 있는 여성을 강간하는 내용을 쓰진 않을 것이다. 그런 내용이 성서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면, 잘 알려진 롯(창 19), 아브라함(창 12, 20), 이삭(창 26), 다윗(삼하 11)이라고 답할 수 있다. 십계명 중에서 아내조차 종, 가축과 같이 놓여 누군가가 탐할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남성 기득권, 종을 가진 주인(자유인)의 입장만을 드러낼 뿐이다(출 20, 신 5). 더 나아가, 성서 곳곳에는 여성 차별을 배경으로 전쟁 혹은 왕위 찬탈사건 중 발생했던 개인, 집단 간 일어났던 성폭력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자세한 것은 직접 읽고 찾아보기를 권한다. 쉽게 찾는다면 성인지감수성이 높음을 칭찬해 드리고 싶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물질만능주의의 소비지향적 사회분위기는 성산업에 유입되는 여성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주여성들이 더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약한 자가 떳떳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와 교회가 필요하다. 피해자의 작은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가해자의 편에서 듣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겨자씨를 발견하는 심정으로…

 

한 가지 부연하자면 n번방, 미투(MeToo)등의 고유대명사로 지칭하는 것은 정작 중요한 내용을 감추게 될 여지가 있다. n번방 사건은 디지털 범죄의 일환으로 온라인상에서 일어난 불법성착취영상물 교환, 매매, 유포 등을 의미하며, 미투(MeToo)는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는 선포로 이에 대응하는 위드유(WithYou)는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는, 재판의 결과를 지켜보며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는 것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의식의 변화와 성인지감수성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느리게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지난 40년 간 성평등한 교회와 사회를 위해 노력해온 ‘한국여신학자협의회’를 소개하고 싶다. 1980년에 창립되어 90호까지 꾸준히 발행해온 『한국여성신학』을 비롯한 여성신학 관련 책들과 기독교여성주의상담, 청소년성교육 관련 자료 등 유익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소개하고 알릴 준비가 되어 있으니 주저 말고 문의해주길 바란다. 단, 열린 사고로 교회의 성평등문화를 위해 실천하고자 하는 이였으면 좋겠다. 그것은 성 뿐만 아니라 그물망과 같이 연결된 인종, 계급, 세대, 생태계 등에 대한 존중과 환대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