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건과 신학 2기/‘미나리’를 보았다.

노인의 디지털 소외, 그리고 미나리 / 김한나

 

김한나(성공회대학교)



2001년 재밌는 유행어와 함께 ‘디지털’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던 광고가 있다. 휴대전화로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한 남자와 이를 지켜보던 노인과의 대화는 여전히 생생하다. 바야흐로 21세기, 이제 디지털 세상임을 친절히 설명하던 그에게 던진 노인의 대답은 의외였다. “뭔...돼지털~?”


2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노인들에게 디지털 세상은 낯설다. 통신기술과 디지털 기기의 급속한 발달로 온라인 활동은 점차 보편화되고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새로운 디지털 정보를 창조하고, 디지털 환경에서 소통·협업하고, 나아가 실제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디지털 정보의 활용 전략을 포함하고 있다.”[각주:1] 



MZ세대들이 발 빠르게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고 디지털 정보와 기기의 활용 역량을 키워나갈 때 노인의 디지털 소외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각주:2] 이는 단순한 일상의 불편함뿐만 아니라 노년층의 문화적 소외를 가중시키며 세대 간 소통단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영화 ‘미나리’에서도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을 엿볼 수 있다. 한국 할머니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손자 간의 소소한 갈등은 관객의 공감을 자아낸다. 할머니에 대한 손자의 단호하고 반복적인 거부 표현은 문화와 세대의 격차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극 중반부 아픈 손자를 향한 할머니의 서툴지만 진정성 있는 소통의 노력은 결국 관계의 전환을 가져온다. “Strong, Strong boy!” 문맹이었던 할머니는 손자와 소통하기 위해 낯선 이방인의 언어를 배워 그를 격려하고 위로한다. 


이처럼, 디지털 문화와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세대에게 이를 배우고 활용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MZ세대와의 소통과 공감의 장이 형성되어 세대 간의 격차와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집에 심겨져 양분을 공급받는 나무는 나이가 들어도 수액이 마르지 않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푸르고 싱싱하다(시편 92:14-15). 노인세대는 삶을 통해 축적한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체험을 후손에게 전하고 그들의 삶 자체가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야 할 사명이 있다. 젊은 세대는 교회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신앙의 증인인 노인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시대 소통의 중심인 온라인 공간에 노인세대가 정착할 수 있도록 MZ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즉, ‘디지털 원주민’인 젊은 세대는 ‘디지털 이민자’인 노인세대가 ‘디지털 토양’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그들의 재능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온라인 앱 사용 교육, SNS활용 팁, 사이버 문화와 윤리 교육, 온라인 동영상과 정보 구별법, 검색 기능 활용 방법 등을 노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교육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유용한 기독교 콘텐츠 사용법과 이단 정보 구별법, SNS를 통한 교회 활동 참여, 인터넷 중독 예방법 등을 교육하여 노인세대가 효과적으로 온라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이버 세계에 대한 신학적인 관점을 깊이 성찰하여 온라인을 향하신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모든 세대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현재 디지털 세대의 일부는 SNS 활동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 인터넷 중독과 같은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상대의 관심과 호응을 얻기 위해 자기중심주의적인 소통 방식을 추구하며 진정한 상호 간 소통과 공감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조회 수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제작된 자극적 콘텐츠는 제작자뿐 아니라 이를 모방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며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일부 디지털 세대는 사이버 정체성과 현실 정체성 사이의 괴리로 혼란을 겪기도 하며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때일수록,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관통하는 삶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는 손자의 상처를 치료해 준 뒤 자신이 키운 미나리 밭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그녀는 어디서나 잘 자라고 누구든 쉽게 먹을 수 있는 미나리에 관해 설명한다. 그때 손자는 미나리 노래를 지어 흥얼거린다. “미나리,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원더풀 미나리~” 영화에서 미나리라는 소재는 어찌 보면 노인인 할머니와 젊은 세대인 손자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매개체로 보인다. 할머니가 가져온 미나리 씨앗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어느덧 울창한 숲의 일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노인세대를 디지털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은 세대 간 소통과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신앙과 지혜, 경륜의 씨앗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다. MZ세대로부터 배운 ‘디지털 리터러시’를 통해 그들은 축적된 그들만의 인생 리터러시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노인 세대의 삶과 신앙의 이야기를 엮은 블로그를 통해, 하느님의 행적과 사랑을 담은 콘텐츠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온라인 자취마다 묻어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 디지털 세상 속에 뿌려진 미나리 씨앗은 후손들에게 결국 푸른빛의 미나리밭을 남겨줄 것이다. 

  1. 이운지,김수환,이은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개발 연구,”교육연구논총 40, No. 3 (2019):201~221.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497991#none [본문으로]
  2. 김학실, 심준섭, “노인의 디지털 리터러시와 사회활동,”정책분석평가학회보 30, No.2 (2020):153~180.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36302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