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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2기/코로나 시대, 외면당하는 낮은 목소리들

어느 이주노동자 고백 -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 박흥순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3년째 지속하고 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세가 급격할 때, 한국 사회 일부가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을 제한하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며 요청했다. 이주노동자가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는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 사회는 이제 이주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는 ‘사람’이란 인식보다 ‘노동력’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불편을 넘어서 무시와 배제를 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불편을 호소했던 이주민 목소리를 듣고 쓴 글이다. 지역이나 출신국가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당사자가 직접 글을 작성한다고 생각하며 쓴 글이다.

 

한국어를 거의 다 잊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있기 전에는 이주민지원기관이나 교회에 가면 한국 사람을 만나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모두 다 이해하고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어를 듣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벌써 2년 넘게 한국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모두 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지만 단순 노동이 대부분이어서 회사 동료와 말할 기회도 많지 않다.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밥을 먹을 때도, 말할 때도 조심한다. 회사 관리자는 일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외에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한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확진되면 회사 관리자는 몇 번을 거듭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며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몇 달 전에는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가 식당에 갔다가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 그 친구와 동선이 겹쳐서 나와 아내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이럴 때마다 조마조마하고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더 걱정이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났다. 3개월 전 일이다. 이주민이 한자리에 모여서 질문하고 돌아가며 답변하는 교육 시간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2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이주민 성도와 선주민 성도를 만난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를 물었는데 거의 모든 이주민 성도는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나는 시간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모든 참가자가 말했다. 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단순 노동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밥 먹고 또 출근하는 일만 반복해서 힘들었다. 그런데 나와 아내만 그런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니 위안이 되긴 하지만 힘든 것은 힘든 거다. 다른 이주민 성도가 경험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비슷했다. 코로나19에 확진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조심했고, 가족 외에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최대한 멀리했다. 혹시 코로나19에 확진된다고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한국 사람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그래서 날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다행스럽게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지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미등록 이주민으로 사는 어려움이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접종을 한 것은 다행이고 고마움이다.

미등록 이주민으로 사는 어려움 가운데 신분이 불안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주는 압박도 커다란 두려움이다. 하지만 더 큰 공포와 두려움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확인하는 ‘안전안내문자’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주민에게 그 문자는 정보가 아니라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료 이주민 가운데 ‘안전안내문자’를 잘못 이해하고 오해해서 이주민 공동체에 불안을 조성하는 일도 벌어졌다. 텔레비전 자막에 영어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주민 상당수는 영어를 모른다. 이주민지원기관에서 이주민이 이해하도록 모국어로 번역해서 알려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뭐라고 부르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한국인 관리자나 이주민 동료가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불법체류자’라는 말을 나도 생각 없이 사용했었다. 그런데 몇 달 전 이주민이 모여서 참여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자리에서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불법(illegal)’이란 단어를 붙여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다시 마음에 담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2년 넘게 지속하니 몸과 마음 모두 다 지쳤다. 가장 힘든 부분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몇 달 전에 만난 이주민 성도 모두는 같은 목소리로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민 신분으로 불안하게 살지만, 만나서 안부를 묻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큰 힘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조속히 끝나서 서로 격려하고 안부를 전하는 공동체 모임에 나가고 싶다.

 

700만 명이 넘는 재외동포가 전 세계에서 산다. 어떤 사람은 체류자격이 있고, 어떤 사람은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으로 살아간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는 급박한 현실에서 체류자격에 따라 배제하고 제한한다면 삶이 어려움에 부닥칠 재외동포가 많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200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한국 사회 일원으로 산다. 어떤 이주민은 체류자격이 있고, 어떤 이주민은 체류자격이 지난 미등록 이주민으로 살아간다.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출신 국가와 관계없이, 외모나 성별을 차별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구약성서는 누구나 ‘나그네’와 이주민이 될 가능성(레위기 19:33-34)을 염두에 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임시 거주자’(레위기 25:23)로 살다가 간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경험한 이주노동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여정에 교회와 성도가 참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