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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위기의 에큐메니칼 운동

에큐메니컬 운동의 과거 / 한석문

에큐메니컬 운동의 과거

 

한석문 (NCCK 신학위 부위원장)

 

들어가는 말

 

에큐메니컬(Ecumenical)이란 영단어는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의 어원은 ‘오이코스(oikos)’로서, 볼프강 후버는 이 어원을 '주님께 속한 전 세계'[각주:1]라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오이쿠메네'는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대표적으로는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회의에서이다.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행 15:1) 사이에 이방인의 구원문제로 인한 논쟁이 발생했을 때(행 15: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예루살렘회의에서 오이쿠메네가 사용되었다. 이때의 오이쿠메네에서, 갈등을 극복하고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오이쿠메네에 근원을 둔 에큐메니컬은 이후로 그리스도교 일치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오이쿠메네의 실천 방법이 공교회적 ‘협의성(conciliarity)’이듯이 에큐메니컬 역시 공교회적 협의를 통한 일치를 지향한다. 이 지점이 중요한 것은 공교회적 일치에가 교회의 본질에 속하며, 니케아 신조도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 및 사도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큐메니컬이 교단의 물리적 통합이나 각 교단의 교리를 통합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교회의 교리와 직제와 정치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교회 간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에큐메니컬 정신이다. 부연하자면 에큐메니컬은, 교회의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과 직제운동, 교회의 사회참여를 통한 디아코니아 봉사, 그리고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운동을 신학적 근간으로 삼고 있다.[각주:2] 에큐메니컬 운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 안에서의 일치와 창조질서의 보존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를 중심으로 한 영적 세계만이 아닌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세계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이 모든 창조세계를 향한 선교를 지향한다.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컬

 

18-19세기 이후로 기독교는 근대화 문명을 주도하며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하였지만, 동시에 그로 인한 후유증을 낳기도 하였다. 이른바 서구교회의 선교활동이 식민지 확장에 협력함으로서 피선교지 민족운동 진영에서의 반(反) 기독교 운동을 야기한 점, 서구에서 시작된 교파주의가 피선교지에 이식되어 교회 분열을 야기한 점, 각 교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의 과열된 선교경쟁이 추문거리가 된 점 등이다. 이러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20세기 초 세계교회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191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사 대회에서 위의 문제들을 다루게 되었는데, 그것이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출발이 되었다. 에든버러 선교대회 계속위원회는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로 발전했으며, 1961년 뉴델리 제3차 WCC 총회에서 WCC와 IMC가 통합함으로써 선교에서의 일치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동의 소명을 가지고 일치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른바 삶과 봉사의 일치, 신앙과 직제의 일치가 그것이다. 현재 WCC는 세계 140개국, 349개 교단, 5억700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교회협의회로서, 정교회, 성공회, 감리회, 개혁교회, 침례교회, 루터교회 등이 회원교회이며,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 성공회 등 4개 교단이 정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 회원교회를 중심으로 한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 교회의 일치와 친교, 둘째, 인류의 정의와 평화(Justice and Peace), 셋째, 창조질서(Integrity of Creation)의 보전이다.

 

1) 교회의 일치와 친교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 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친교(Fellowship)이다. 1982년 1월 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WCC 신앙직제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에서 숙의(熟議) 끝에 발표한 ‘세례, 성만찬, 사역(BEM: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문서’는 전 세계의 교회를 향해 공교회성과 일치의 중요함을 크게 각성시켜주었다. 하지만 BEM 문서가 보다 넓게 공유되지 못한 점은 크나큰 아쉬움과 함께 과제로 남겨져 있기도 하다. 1998년 제8차 WCC 하라레 총회에서 콘라드 라이저(Konrad Raiser) 총무는 ‘공동의 이해와 비전(CUV: Common Understanding and Vision)’ 문서를 통해 WCC의 영역이 담을 수 없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더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수 있는 글로벌 기독교포럼(GCF)이 창립되었고, 세 차례에 걸친 세계대회를 가졌다. WCC와 GCF는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확인하고 그 관계를 확립하는 이해 각서를 체결하였다.

 

2) 인류의 정의와 평화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회의 일치를 넘어 인류의 화해,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참여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만이 아닌 우주 전체이기 때문에 인류의 정의와 평화 문제는 교회의 책임영역이 된다는 점, 그리고 20세기에 인류의 분열이 교회 분열로 연결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한 점이 그 동기가 되었다.

 

3) 창조질서를 보전 및 생명 존중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조질서보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1년 뉴델리 총회에서 루터교 신학자 조셉 지틀러(Joseph Sittler)가 골 1:15-20절에 기록된 ‘우주적 기독론’을 옹호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물질세계를 은혜에서 분리시켜서는 안 되며,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구원자라고 주장했다. 1983년에 밴쿠버 총회는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JPIC)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과정을 통한 상호연대 계약(conciliar process of mutual commitment)에 회원교회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WCC 프로그램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그 결과 1990년 서울에서 개최된 JPIC 세계대회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주 전체의 원천이요 지탱자이며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사랑하신다.”는 선언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이 화해사역은 만유를 화해케 하시고 우리를 모든 창조세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사역으로 부르신다.”는 선언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후로 1991년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총회에서는 “오소서 성령이여-모든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를 채택하기도 하였다.[각주:3] 이상과 같이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의 일치와 친교뿐 아니라 인류의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 보전 등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도 함께 실천되어 왔다.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140여 년 정도로서, 서구교회의 장구한 세월에 비해 짧지만 세계 기독교의 어느 역사 못지않게 괄목할 만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 특히 19세기말 해방전후로 이루어진 근현대사 속에서 전쟁과 분단, 군부독재와 민주화운동 등으로 점철된 역사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서, 때로는 민족의 수난과 함께, 때로는 노동자 농민의 수난과 함께 해왔다.

 

초기 에큐메니컬 운동

 

초기 선교사들은 교단과 신학적 배경이 서로 달랐음에도 교회일치와 연합운동에 개방적이었다. 그 결과 몇 개의 조직이 탄생했는데, 1889년 조직된 ‘한국선교연합공의회’를 시작으로 1893년 ‘장로교회선교공의회’, 1905년 ‘재한 개신교선교부공의회’가 탄생했으며, 같은 해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으로 「The Korea Mission Field」라는 영문 잡지가 발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역시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연합으로 ‘그리스도신문’이 창간되기도 하였다. 이후 양 교단은 1908년 합동 ‘찬숑가’를 발행하는 등 문서 선교 사업에 함께 힘을 합쳤고 의료와 교육사업 분야에서도 연합 사업은 계속되었다. 1924년은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사에서 뜻 깊은 해였다. 그동안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대표자들이 연합 사업을 전개해 왔던 경험을 기반으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Korean National Christian Council)’를 조직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모태가 된 이 조직은 당시 장로교와 감리회 등 교단 뿐 아니라 기독교의 어려 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이후 교회의 일치를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 기구를 중심으로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은 세계교회와 교류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위기

 

하지만 1930년 이후 일제의 탄압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투옥 및 망명 등으로 인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크게 위축되고 만다. 무엇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사건을 계기로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각주:4]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난 교회는 단순히 교회조직 뿐만 아니라 해방된 조국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섰지만, 6.25 전쟁을 겪으면서 기독교인들은 더욱 깊은 암흑을 경험하게 된다. 전쟁은 국토 뿐 아니라 교회마저 분단시키고 말았다. 1952년 장로교회에서 고신파가 분리해ㅐ 나갔고, 1953년에는 기장이 분립해 나갔으며, 감리회 또한 1954년에 호헌파와 총리원파의 내분으로 분열을 맞이하고 만다.[각주:5]

 

에큐메니컬 운동의 재건 및 정착

 

1970년대부터 한국교회는 역사 참여를 통해 정치, 경체, 사회의 영역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유신체제 반대운동이나 군사정권 퇴진운동, 그리고 도시산업선교, 도시빈민운동, 농민운동 등 군부독재의 폭압 속에서도 한국교회의 민주화 운동은 더욱 빛을 발하였다. 한국사회에 내제되어 있던 모순과 부조리들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격변의 1970-80년대를 거치며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많은 한계 속에서도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내었다. 무엇보다 공교회성이 무너져 내린 한국 개신교의 현실 안에서, NCCK는 공교회성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최근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주류 기독교 세력의 민낯은 같은 기독교인이 보기에도 혐오스럽기 그지없으며, 차별금지법 저항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그들의 속내는 섬뜩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성을 다듬고 생태환경, 이주민 노동자, 농촌, 여성을 품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내하고 있는 에큐메니컬 운동가들은 숭고하기 그지없다. 선한 일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 일이다.

 

맺는 말

 

‘주님께 속한 전 세계’로서의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라는 덕목을 영성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공교회적 협의성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 가운데 에큐메니컬 교회에 주어진 사도적 직무는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를 넘어 사회 속에서의 디아코니아 봉사 및 창조질서의 보존을 통해 그 빛이 더욱 밝아질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에큐메니컬 진영은 거센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역사는 늘 그래 왔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향해 저항해 왔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발생하는 모든 진리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때 우리의 고백은 이 저항을 제압할 수 있는 힘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혹 그 저항이 우리 내부에도 있는 것이라면 치열한 변증법적 성찰을 통해 이겨나갈 일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항상 영원히. 아멘.

 


 

  1. 볼프강 후버/채수일역 「진리와 평화를 위한 교회의 투쟁」(한국신학연구소 1991) 25쪽. [본문으로]
  2. 이형기 「세계교회협의회와 신학」(북코리아 2012) 18-19쪽. [본문으로]
  3. 정병준 "21세기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패러다임 변화와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과제"(한국교회사학회지 제54집 2019) 355-387쪽. [본문으로]
  4. 김주한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담론 분석"(대학과 선교 제26집) 176쪽. [본문으로]
  5. 위의 책 181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