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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강남 청소년 마약, 사건의 복기 / 송진순

 

 

송진순 (NCCK 신학위원, 이화여대 신약학)

 

□ 복기(復棋/復碁): 대국이 종료되면 바둑의 판국을 평가하기 위해 두었던 대로 처음부터 다시 놓는 것을 '복기'라고 하지요. 기사들은 복기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관례이기에, 그 많은 돌을 어떻게 다 기억할까 생각하겠지만 모든 돌은 선후관계가 연결되어 있기에 주요 흐름을 알면 복기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대국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검토하고 연구함으로써 나와 상대의 의도와 생각을 공유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사건의 기록

지난 4월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다. 청소년 대상 마약 범죄 사건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 사고가 쏟아지는 마당에 몇 달 전 사건이야 뇌리에서 깨끗하게 잊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강남, 학원가, 청소년, 마약'이라는 키워드가 갖는 의미는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물론 사건의 경위야 중국 소재의 보이스피싱 조직과 국내 마약 제조업자의 공모로 밝혀졌지만,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언론에서 조명되는 후속 조치는 말 그대로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병폐의 압축판임을 확인하게 한다. 이를 위해 사건의 기록을 복기한다.


4월 3일 오후 6시경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메가ADHD' 음료의 시음 행사가 있었다. 이후 행사에 참여한 학생 부모들은 자녀의 마약 투약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를 받았고, 시음에 응한 학생들은 구토, 어지러움, 환각 증상을 보였다. 병원 검사 결과 피해 학생들의 몸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었다. 경찰은 음료 한 병에 필로폰 3회 투약 분량이 포함된 것이라고 발표했고, 공식 피해자는 9명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는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사건은 중국의 마약 유통조직과 피싱 조직이 국내 마약 제조업자와 공모한 것으로 6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되었다고 한다. 시음 행사에서 마약 음료를 배부한 이들은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서 고용된 알바생으로 범죄 사실을 몰랐다고 자백했으나, 그들 중 한 명은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일한 전력이 있었다. 한편 구인 광고를 하고 피해자를 협박하는 과정에서 보이스피싱을 운영하는 전문 중계기업자도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범인 검거에 이르기까지 절차는 일주일 만에 신속 진행되었고, 본 사건은 5월 31일 자로 첫 재판에 들어갔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비대면, 온라인, 대포 물건, 초국경'이라는 특성을 갖춘 전형적인 피싱 범죄에 '마약'이라는 수단이 더해진 유형으로 설명했다. 기존 보이스피싱에서 한발 나아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테러'의 성격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진화된 범죄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각주:1] 이 사건의 목적이 청소년 마약 중독자를 양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금품 확보에 있었다 해도, 청소년 피해자가 범죄 당사자가 되는 방식으로 범행은 치밀하고 죄질은 더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한 번의 투약이 중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청소년의 마약 중독 성향은 성인과 다르게 훨씬 강력하고 뇌 기능 저하 등 그 부작용 역시 더욱 치명적이라는 데 목소리를 같이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마약에 쉽게 노출된 지금의 상황이라든가, 역으로 마약 범죄가 청소년들에게 빠르게 번지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사회적 공분을 사기에도 충분하다.


청소년 마약과 관련하여 현행법에서는 '영리 목적으로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제공하거나 투약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마약류관리법 제58조). 하지만 본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투약한 경우 법정 최고형인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내용으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각주:2] 기존 법안을 강화함으로써 청소년을 마약에서 보호하려는 조치를 제안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 각 시도 교육청과 경찰청은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유치원을 포함 초등학생 교육에서부터 약물중독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부터 마약과의 전쟁에서 범정부 역량을 총집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하여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검찰청의 마약조직범죄부를 부활하고, 검경 및 관세청 등 유관기관 인력 840명을 투입하여 강력한 방식의 동원령을 지시하였다. 전 정부의 검찰개혁 결과 마약범죄 대응능력이 약화된 것을 복원하기 위해 검찰의 강력한 법 집행 능력을 통해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되찾겠다고 선언한 것이다.[각주:3] 청소년 대상 마약 범죄 사건으로 정치권에서는 검찰 권력을 복원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작년부터 이러한 행보에 발맞춰 유명 배우의 마약 투약 사건, 마약 투약 관련 차량 사고, 폭행, 살인 등 흉악한 사건 사고의 면면을 쉼 없이 방출하고 있다. 동시에 각 교육청, 경찰청, 의료진 등 전문인들이 "NO EXIT"; 카드를 들고 마약 근절 캠페인을 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중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기 침체와 한미일과 북중러의 외교적 긴장 관계가 빚어낸 정치-경제의 갈등 속에서 한국 사회는 마약이라는 악령과 전쟁 중이다.


2. 사건의 진원

이제 마약은 배우나 가수, 재벌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흥주점에서 유통되고 병원 처방을 받거나 인터넷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경험이 확대되고, SNS나 가상화폐를 통한 음성 거래가 가능해지고, 코로나 이후 억눌린 불안과 스트레스가 증폭된 것을 마약 열풍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실제 인스타그램에 아이스, 작대기를 검색해도 마약 판매상과 연결할 수 있는데, 이른바 '던지기' 수법, 즉 에어컨 실외기, 주택 우편함 등 특정 장소에 마약을 두고 찾아가는 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대금은 가상화폐로 지불하고, 소통은 텔레그램 같은 다크웹에서 오가기 때문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마약은 투약자에게는 접근하기 더 쉬운 환경이 되었고, 수사관에게는 더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게다가 중독성이 강한 필로폰조차 0.05g, 10회 분량이 30~40만원, 1회 분량은 3~4만원 대라니 피자 한 판 가격이면 마약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검찰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마약사범의 수는 대략 1만 8천 명으로, 2017년 1만 4천 명에 비해 30.2% 증가했는데, 그중 10대 마약사범은 2017년 119명 대비 2022년 481명으로 30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마약 투약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대검찰청의 '마약류 월간동향'). 이와 같은 마약 중독의 증가는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원인이겠지만, 근원적으로는 마약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즉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내적 모순과 트라우마가 그 원인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사실 의학적으로 중독은 일종의 '뇌의 보상' 작용으로 약물이나 행위를 통해 뇌를 자극하여 기분 좋게 만드는 경험을 반복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도파민의 과다 분비를 습관화하여 이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중독 현상이다. 심리학적으로 중독의 원인은 인간의 내적 공허감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의 경우, 학교, 일터, 사회에서 타자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 좌절감, 공허감, 두려움, 불안함, 무기력감, 우울감에서 벗어나고자 쉽게 중독에 빠진다는 것이다. [각주:4] 물론 중독은 한 개인의 '자극추구, 위험회피, 보상의존성, 인내력'이라는 선천적 기질과 성향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 예로 스마트폰이나 마약 중독자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불안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이를 더 크게 경험한다. 이러한 감정 상태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중독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천적 기질 이상으로 개인이 놓인 사회 문화적, 경제적 상황도 중요하게 작동한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환경 자체가 중독을 유발하는 자극으로 채워져 있다. 데이비드 코트라이트는 현대 사회를 '중독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중독은 소비하고 행동하도록 충동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각주:5] 같은 맥락에서 홀거 하이데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본질적으로 중독 시스템이라고 지적한다. 중독 시스템으로서 자본은 인간의 욕망을 생산하고 재생산함으로써 무한 생산을 욕망한다. 무한성이 곧 불만족이라는 자본의 본질이기에,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욕구 충족이 아니라 끊임없는 욕구 불만족, 즉 심리적 허기 상태를 조장하게 한다. [각주:6] 한발 나아가 강수돌은 한국 사회의 중독 원인을 의학적, 심리적 원인 이외 역사와 정치에서 찾는다. 근대 일제 식민지에서 한국 전쟁과 독재정권에 이르는 집단의 트라우마와 초고속 경제성장을 추인하는 과정에서 성장에 대한 전 사회적 강박 집착은 대한민국을 심각한 중독 사회로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각주:7]

그는 거대한 집단적 폭력과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회가 생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강자나 혹은 시스템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을 '포스트-트라우마 사회'(Post-traumatic Society)라고 부른다. 흔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개인 차원의 장애라면, 사회적 차원에서 집단적 장애의 명백한 징후가 중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각주:8] IMF 금융위기 이후 불안정한 고용 상황, 취업 및 실업 문제, 극단적 양극화, 혐오와 차별 등 사회적 갈등 속에서 개인의 삶은 오로지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사회는 내면의 괴로움(집단적 두려움, 우울감, 불안 등)을 개인 문제로 환원해갔고, 각자는 이를 보상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집착하는 중독 현상이 일종의 사회 보편 현상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른바 쇼핑중독, SNS 중독, 스마트폰 중독, 알콜중독, 성형중독, 일중독 등 폐쇄적인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을 압박함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병리적 징후이다. 이렇듯 중독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중독, 경쟁중독에 빠진 이 사회의 중독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또 다른 문제는 중독을 대하는 언론과 정치의 관점이다. 마약을 비롯한 중독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한다고 해도,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전혀 사회적이지 않고, 정권 강화의 정치적 선전 속에서 다뤄진다. 중독은 여전히 한 개인의 일탈이나 심리 문제로 취급되고 있고, 개별 범죄 사건으로 규정된다. 이를 증명하듯, 언론이 마약을 다루는 일련의 방식은 마약의 심각성, 마약 중독자 개인의 나약함, 심리적 불안, 사회관계의 문제를 집중 취재한다거나, 그들이 보여준 파행적 태도, 마약 중독의 극단적 폐해만을 자극적으로 보도할 뿐이다.


마약과 마약 중독이 갖는 심각함을 간과하거나 축소하자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마약은 단독 투약을 넘어 성범죄와 폭력 사건으로 집단화될 가능성이 크기에 무엇보다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 하지만 범죄라는 하나의 차원에서 보도된 마약 관련 보도에서 대중의 인식이 한 방향으로 고착화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이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두려움, 누구도 마약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그래서 더욱 강력한 방식의 처벌과 규제가 요청된다는 절박감이 그것이다. 마약과 마약 투약자에 대한 극단적 경계과 두려움은 또 하나의 사회적 혐오와 배제를 형성한다. 최근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강병철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중독자를 '악인'으로 잡아넣는 방식에 질문을 던졌다. 마약은 범죄 이전에 질병으로,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재발과 전과자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예로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악 대결로 몰고 간 실패의 과정을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한 사람을 영구 낙인찍고 격리하는 것보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주:9]


지금과 같은 마약 대응 방식에서는 마약 투약자는 회복하여 사회로 복귀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마약사범이라는 범죄자의 낙인, 우리 대 그들이라는 넘을 수 없는 경계, 나약하고 취약한 잉여 존재라는 혐오 속에서 이 사회 보이지 않는 위계적 구조의 또 다른 희생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민 안전 보장과 마약 청정국의 복권이라는 약속 하에 정치권에서 주도하는 마약과의 전쟁은 강력한 국가 권력의 귀환은 물론 정권 능력의 입증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위기와 불안을 조성하게 한다. "마약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겠다";, "국가 역량을 총집결하겠다";라는 대통령과 법무장관의 발언이나 "마약이라는 악의 축과의 전면전";이라는 경찰총장의 발언은 사회적 안전과 중독 사회로의 해방이라는 길과는 요원해 보인다. 강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 사회의 '중독' 특징이 오랜 집단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강자와의 동일시라는 포스트-트라우마적 장애라 할 때, 지금 정치권에서 행하는 검찰 주도의 마약 근절 조치는 선과 악 대결의 폭력적이고 이분법적 구조를 양산하고 대중에게 강한 권력과의 동일시를 요청할 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한국 사회의 지난한 갈등들―세대 갈등, 젠더갈등, 지역 갈등, 계급 갈등에서 빚어진 혐오의 상처로 분열되고 얼룩진 상황을 치료하거나 봉합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말이다.


3. 사건과 신학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다시금 펼친 그물망을 거둬 처음의 사건으로 돌아온다. 강남 학원가에서 청소년에게 마약이 뿌려졌다. 청소년 마약 중독이 수위를 달구며 투약자(범죄자라 명하지 않고)가 확산되고 있다. 비록 마약이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SNS, 쇼핑, 다이어트, 게임 등의 청소년 중독 현상과 학교 폭력, 심리적 불안증은 우려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중독, 폭력, 불안과 위기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서 있는 자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한복판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인도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어 피폐해지는 상황에서 가장 취약하고 손상 받기 쉬운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왜 버티지 못하고 중독되는가 묻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이는 청소년을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존재로 생각해서도 아니고, 중독과 폭력의 피해자로 바라봐서도 아니다. 적어도 청소년이 왜 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 폭력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가,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선 자리에 인식하는 작업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중독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가정의 불화가 아니라, 이 사회가 오랫동안 앓고 있는 구조적 병폐에서 기인했다는 비판적 성찰을 요청하는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화평' 대신 꺼내 보인 '검'은 제국의 압제와 폭력의 트라우마로 착취받고 있는 피해 당사자들에게 무력시위를 종용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야훼 종교의 신성함과 사회 안정을 빌미로 강요되는 율법적 형식주의, 기존의 권력과 체제를 고수하고자 자행되는 비인간적 행위들 이것으로 가득한 세계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였다. 흔히 교회에서 선전하는 복음과 절대 진리 수호의 상징이 아니라 사회의 불의와 부당함을 고발하고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불화의 상징이 바로 검이었다. 이를 위해 예수는 당시 요동하는 대중의 불안과 좌절에 공감했고, 사회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분노를 치밀하게 읽어내었다. 그리고 종교,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의 병폐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와해했는지 알아차렸다. 이에 누가복음서에서 예수는 화평이 아닌 분쟁을 주러 왔다고 선언하면서, "너희는 천지 기상을 분별하면서 어찌하여 이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눅 12:56-57) 따져 물었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시장 경제 속 소비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예수의 예언적 선포, 즉 시대를 분별하고, 사회적 불의에 균열을 냄으로써 구원 종교가 갖는 초월의 힘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교회와 신학이 중독과 폭력에 노출된 취약한 이들이 놓인 삶의 자리, 이 사회 병폐의 원인을 읽어낼 줄 아는 분별의 힘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동력이 희미하다. 정부 차원에서 마약 중독을 예방 단속하고 마약사범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소년 마약 중독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단속과 처벌 이상으로 질병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중독자를 배출하는 사회적 원인 파악, 단약과 재활을 위한 당사자 중심의 의료지원과 체제 정비 등 전 사회적 관심과 인식의 전환이 요청되는 일이다. 이에 적어도 교회가 선악 이분법에 근거한 정치적 선전에 편승하여 병폐의 진짜 원인을 읽지 못하고, 낙오자를 양산하는 데 동조하거나 한발 나아가 선인(교인)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집단의식을 구축하는 어리석은 일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는 중독 당사자를 위한 시혜적 도움을 넘어 중독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걷어내고 우리 안에 분명하게 그어진 경계를 허물어 나와 다른 사람을 인간 존재로 대하려는 인식, 그것이 시대를 분별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청소년 마약 사건의 복기를 통해 짚어야 할 지점은 너무나 방대하다. 하지만 그리스도 시민으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모두의 질문에서부터 교회 안에서 한국 사회의 병인에 대한 다양한 성찰과 질문들이 어떻게 오갈 수 있을까 질문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해답들이 충분히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에서 청소년 마약이라는 빙산의 일각이 드러낸 한국 사회의 병인에 대한 고민들이 또 다른 균열과 불화를 내며 예수의 선포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1. "보이스피싱+테러로 '변종 진화' ... 대본이 바뀐다,"; 한겨레, 2023.4.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87514.html, 2023.6.4. [본문으로]
  2. "與유경준, '미성년자 속여 마약 투여 시 최대 사형' 개정안 발의,"; 2023.4.7. https://www.yna.co.kr/view/AKR20230407096000001 2023.6.4. [본문으로]
  3. "대검 마약범죄 전담부 부활...AI가 24시간 마약거래 감시,"; 2023..4.18. https://www.mk.co.kr/news/politics/10715653 2023.6.4. [본문으로]
  4. 강수돌, 『중독 공화국』(서울: 세창미디어, 2021), 61-64. [본문으로]
  5. 데이비드 T. 코트라이트, 『중독의 시대』, 이시은 역(서울: 로크라이트, 2003) [본문으로]
  6. 홀거 하이데, "노동 중독증의 문제,"; 「녹색평론」, 51/2000, 85. [본문으로]
  7. 강수돌, 『중독 공화국』, 72-3. [본문으로]
  8. 위의 책, 70. [본문으로]
  9. "마약과의 전쟁, 승리란 무엇인가,"; 2023.5.15,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1879.html, 2023.6.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