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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의 의미는?

한국사회와 전세사기 / 김판임

 

김판임 (NCCK신학위원회위원, 한신대학교 대우교수)

 

들어가는 말

 

2023년 우연한 기회에 난생처음으로 도봉구에 살아보았다. 공기가 확실히 좋다. 암환자에게 맑은 공기는 매우 중요하다. 암진단을 받은 2021년 이후 맑은 공기를 찾아 강원도나 제주도까지 가지는 못해도 서울에선 북한산 가까운 곳으로 자주 산책을 다녔다. 화계역 한신대학교도 좋고, 경전철로 두 정거장 더 가서 419민주 묘역 쪽에서 크리스찬 아카데미 옆 북한산길도 좋고, 두 정거장 더 가서 우이동 종점에 내려 걸으면 공기가 더 좋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아예 수유리나 우이동에 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름방학을 맞이하며 전셋집을 알아보았다. 강남에 비해 강북은 집값이 오르는 일이 드물 뿐만 아니라 올라도 아주 더디 오르기에 굳이 매매로 집을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강북구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이도록 고도제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즐비한 높은 아파트가 강북구에는 드물다. 그 대신 개인주택이나 빌라가 많다. 건강이 나쁜 사람이나 노인들이 많고, 대개 실거주 목적인 것같다.

전셋집을 알아본 결과, 적절한 면적과 가격의 빌라를 보게 되어 계약을 하고 싶었다. 나의 이사 계획을 알고, 집을 여러 번 사고 팔아본 경험이 있는 친구가 조언을 했다. 물은 제대로 나오는지, 지붕에서 비가 새지는 않는지, 하수구는 잘 빠지는지, 윗집에서 소음은 심하지 않은지 꼼꼼히 체크하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빌라는 별로라서, 나중에 이사 나갈 때 전세금 회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좀더 생각하라고 한다. 즉, 교통 요충지나 역세권은 사람들이 선호하기에, 내가 이사 나가려고 할 때 아무 문제가 없이 후임 세입자를 구할 수 있지만, 수유리 빌라에서 나갈 때는 세입자를 구하기가 곤란할 수도 있고, 그러면 집주인이 전세금을 지불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전세 사기”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떠오른다. 작년 말부터 터진 전세사기 사건은 여러 조직이 함께 사기를 치려고 작정하고 한 경우지만, 예전에도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사례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이번에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사기 사건이었다면, 보통은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전세 사고”정도로 인식되었다.

 

2. 전세제도의 장점과 단점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태어난 집에서 줄곧 자랐다. 나보다 세 살 위인 오빠도 같은 집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한 번도 이사한 적이 없다. 집은 누추했지만, 소위 자가주택이었으므로, 전세를 올려달라거나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를 나가달라거나 하는 집주인의 요청도 들어본 적이 없이 한 집에서 맘 편히 살았다. 그러다가 독일 유학생으로 가서는 대학 기숙사에, 그리고 개인 주택에 살았다. 기숙사든 개인주택이든 매월 얼마씩 정기적으로 지불하는(거의 자동이체) 월세이다. 내가 알기로 전세제도는 세계에서 몇 나라 안 되는 지역에서 시행되는 독특한 제도이다. 세입자가 매매금액의 일정부분, 가령 50%, 많게는 70-80% 정도를 보증금으로 지불하고 살다가 나갈 때 되찾아나가는 방식이다.

한국 경제가 어렵고 주택 공급이 적을 때 이 제도가 확립되었다고 한다. 전세 세입자는 월세로 매달 지출되는 일 없이 목돈(보증금)을 되찾아 나가니 돈을 모아 내집 장만에 좋은 제도로 활용되었다. 월세가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인 반면, 전세보증금은 계약만기에 온전히 회수할 수 있어서 전세는 자가 주택 취득을 위한 중간 단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제도의 단점은 명확하다. 소위 “갭투자”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임대인은 임차인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무이자로 받아 집을 사는데 사용하고 차액만으로도 집을 살 수 있다.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을 빼주고도 돈이 남는, 소위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집값이 오를 때 발생하는 이익은 갭투자를 유도해 가수요를 발생시킨다. 즉, 자금 여유가 없는 사람이 본인의 능력을 초과한 주택을 구입한다. 거주용 주택이 아닌 가수요인 것이다. 갭투자로 인한 가수요는 매매수요를 증가시키고 집값 상승을 가져온다. 집값이 상승한 만큼 전세값도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삼성동 모 아파트에 전세로 살 때 일이다. 그 집 주인은 이 아파트를 6억에 사서 3억에 전세를 두고 외국에 몇 년 출장 나가 살다가 왔더니 12억으로 두 배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삼성동 한전부지를 현대가 사면서 높은 건물을 짓는다는 것과, 영동대로 지하 개발건, 그리고 아파트 재건축 등 호재가 맞물리면서 우리가 사는 동안 해마다 2억원 이상씩 올라 24-26억원에 달했다. 재건축이 완공되면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금액이 될 것같다. 재건축을 위해 세입자가 이사를 나갈 때 집주인에게 전세금 빼주라고 은행에서 대출도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남구 삼성동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호재로 인해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도 문재인 정부 기간에 아무리 대단한 주택정책을 내놓아도, 주택 시장은 정책을 비웃듯이 주택가격은 계속 올라만 갔다.

삼성동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전세를 살면 억울한 생각이 든다. 집주인은 몇 년 사이에 수억을 버는데, 세입자는 자기가 낸 보증금을 이자도 없이 원금을 받을 뿐이다. 그래서 입지가 좋다면, 내가 살지 않아도 갭투자로 집을 사두는 전략을 세워 자산 증식을 꾀하는 사람을 우리는 소위 투자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2020년 주택가격이 미친 듯이 오를 때, 너 나 할 것 없이 주택을 매매하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은 마음에 많은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돈을 끌어 모아 매매에 임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거나 내려갈 때는 위험이 크다. 집값 하락기에 세입자가 나갈 때 후임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은 전임자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다. 그 경우 차액을 임대인이 보충해주어야 하는데,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전세 계약 시절보다 만기에 전세값이 떨어진 경우를 역전세라 한다.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경우도 있는데, 이를 소위 깡통전세라고 부른다.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집값이 항상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도 있다. 2020-2022년 사이에 미친 듯이 올랐다. 많은 부동산 관련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 사회도 일본처럼 부동산침체기에 들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제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인데 이미 전세 사기 사건으로 우리나라 주택 정책의 문제를 관심가지고 봐야 할 때가 되었다.

 

3. 전세사기 사건

 

이번에 나타난 전세 사기 사건은 신축빌라의 경우 정확한 시세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집값보다 높은 전세금을 책정하거나, 부동산 중개인과 건축자, 지불능력이 없는 바지 사장 등이 협작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경우에 따라 수천 개의 빌라를 소유한 사람도 있어 “빌라왕”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중 몇 사람은 이미 사망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주로 주택 거래에 경험이 없는 2030세대가 사기를 당한 경우여서 매우 마음이 아프다.

전세로 인해 사건이 터지자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며 전세제도를 없애자는 발언까지 하여 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세종대 부동산학과 임재만 교수는 이번 악질 사기단이 나오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은 주택정책에 있다고 분석한다.

1) 전세대출

전체 주거유형 중에서 전세비중이 차츰 줄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전세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세대출을 실시하였다. 소득 등 개인의 조건과 상관없이 전세금의 80%를 대출해주었고, 나머지 20%도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전세가 비정상적으로 폭증하였다. 전세대출이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는 기여했다는 순기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악질 사기단의 표적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2)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전세사기 피해를 방지하겠다며 추진한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도 전세사기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사기단은 전세금 전액을 보증해준다는 점을 악용해 매매가격 이상의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전세비중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을 제안한다.

1)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 확충 2) 주택구입비용절감을 통해 자가 소유 촉진, 3) 월세 시장의 안정화

월세보다는 전세, 전세보다는 자가주택에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제안이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너무나 비싸진 주택값이 다시 내려갈 수 있을까? 공시지가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는데, 시가가 내려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언제 우리는 급속한 집값 상승이나 급속한 집값 하락이라는 위기 없이 안정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을까? 전세든 월세든 자가든 상관 없이 살고 있는 동안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4. 합리적인 주거생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메시지는 식생활과 의생활에 대한 염려를 놓으라는 내용이다. 주생활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

주택은 사람이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여름엔 더위를 막아주고, 겨울엔 추위를 막아주는 집, 고급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튼튼하게 지은 집이면 살기에 좋을 것같다. 마당도 있어서 자녀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집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집은 많지 않다. 현재 한국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높이 올린 아파트들이 대세이다. 같은 자재로, 비슷한 모양으로 지은 아파트이지만 입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주택의 원래 목적은 주거이지만, 자산에 속하기도 하다. 주택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대개는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주택을 자산으로 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재산의 가치로만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집이 온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담보하고, 나중에 재산적 가치로도 높게 평가된다면 좋지 않겠는가? 가격과는 상관없이 지역적으로는 직장 가까운 곳, 자녀들의 학교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이 이상적일 것이다.

지난 3년 강남이나 서초 송파의 주택 가격의 비이성적 상승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르면 강남3구에 사람들이 원하는 학교와 학원, 그리고 많은 직장이 있다는 이유에서 수요가 많아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강남 3구의 아파트 가격은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서고 있다.

 

5. 나오는 말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을 부동산 시장의 원리에 맡기자고 말한다. 즉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가격이 정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입시제도가 있는 한 대치동의 사교육이 있을 것이고, 남보다 잘났다는 인정을 받고 이 사회에서 특권층의 혜택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특정 지역에 다른 지역보다 많은 일자리가 있는 한, 적절한 가격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어느 지역의 아파트에 사느냐가 신분규정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서 주거의 안정은 주택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교육정책, 노동정책과 함께 해야만 조금 길이 보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