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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의 의미는?

집은 무엇인가? / 이민희

 

이민희 목사 (옥바라지선교센터)

소유하는 집

한국 사회에서 주택은 주로 부동산 재산, 평당 가격으로 이해된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주택을 소유하기 위한 장기 계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이를 착실히 갚아 나가는 삶은 매우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추앙되며, 누구나 추구해야 할 정당하고 일반적인 비전처럼 제시된다. 정부마다 내세우는 주택 정책도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주택 공급과 소유를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기와 하락기 모두, 주거 및 주택 시장의 안정을 위해 주택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안일한 대책이 반복적으로 제시되곤 한다. 현 정부 역시 주요 정책으로, 향후 5년간 27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할 계획을 발표했다(<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 국토교통부, 2022.8.16). 이를 위해 신규 정비구역 지정, 재건축 부담금 감면, 안전진단 규제 조정 등을 통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정상화, 국공유지의 매각(용산정비창), 민간 도심 복합사업을 위한 규제 완화를 특례로 제시했다. 비정상 거처 등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대안도 재해취약 주택 밀집 지역에 대한 정비구역 지정요건 완화, 용적률 상향 등 정비사업을 위한 여건 개선이 주된 내용이다. 

사회적 통념과 국가의 정책이 이렇게 주택 소유를 부추기는 분위기에서 실제 주거 현황은 어떠할까? 통계는 다르게 말한다. 신축 주택은 꾸준히 건설되었으나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주택의 자가 점유율은 2017~2019년에만 아주 미세한 상승을 보였을 뿐, 그 이전이든, 이후든 매년 하락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1년을 보면, 전인구의 42.7%가 임차 및 무상가구이며, 특히 고소득층의 자가 점유율은 74.6%, 중소득층은 61.9%인 반면, 저소득층은 44.8%에 머물러 있다. [각주:1] 몇 개의 숫자에서 즉시 추론할 수 있듯, 지금까지 내 집 마련의 개념이 금융권으로부터 막대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하고 소유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부담 가능한 금액으로 존속이 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 무리해서 소유하는 것이 아닌 적합한 공간을 찾고 사용하게끔 유도하는 방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필요성은 주거 취약 계층에게 초점을 둘 때 더욱 선명해진다. 특히 기후 위기가 기후 불평등으로 출현하는 가장 단적인 장소가 바로 쪽방, 반지하 같은 주거 환경이다. 작년 8월, 폭우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거민 일가족 3명이 사망했고, 상도동의 반지하에 거주하는 5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염의 피해도 극심하다. 대다수 반지하, 쪽방, 고시원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에 밀집해 있으며 고층빌딩과 시멘트 바닥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변 건물들이 냉방 시설을 쉴 새 없이 가동하면서 외부로 내뿜는 열기도 상당하다. 이뿐만 아니다. 매년 겨울 쪽방촌에서 발생하는 화재 사고, 고시원 화재 사고 등은 소득이 주거 안전과 긴밀히 연결되는 사회의 단면을 아프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은 외곽으로 이들의 거처를 옮기는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취약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주거지로 선택하는 이유는 대중교통 같은 사회기반시설, 편의시설에 대한 접근성, 일자리, 공동체 등의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무조건 도심 안에 거주해야 생계가 가능하다. 저소득층에게만 발생하는 취약한 환경과 주거 참사 유형은 소유를 위한 주택 공급 외에 다른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일깨운다. 

전세 사기는 어떠한가? 구조적 사기 행각의 배후에는 주택 시장의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무분별한 개발 규제, 불법 건축 허용 및 대출 완화 정책의 허점들이 자리한다. 게다가 주택을 소유하는 방식은 다방면으로 열어놓은 반면, 전세는 고액의 보증금이 오가는 계약인데도 불구하고 임차인의 점유권을 인정하는 제도, 나아가 점유권을 재산권으로까지 이해하고 보호하는 제도는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다 보니 집을 개발 수단으로만 보는 정부와 무지한 정책을 악용한 조직적 사기의 피해는 집을 삶의 기반이자 장소로 이해한 서민이 고스란히 진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열 달간 진행한 전세 사기 특별단속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전세 사기 피해자는 총 2천 996명이었고 피해 금액은 4천 599억 원에 달했다. [각주:2] 지역 범위도 전국적이다. 서울(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등), 경기(용인, 화성. 하남, 부천 등), 인천(미추홀구), 대구, 전라남북도, 제주도 등 광범위하다. 이 정도 되면, 전세사기 피해는 사실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허술한 법 때문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현황이다. 사회는 현대 도시 생활자의 유일한 구원이 건물 소유에만 있는 듯 굴고, 모든 금융 및 국가 체계는 이를 위해서만 작동하는 반면, 사람들은 소득 대비 집값이 너무 높다고 느낀다. 주택을 소유하는 것 외 궁극적인, 존속가능한 주거 대안도 마땅치 않다. 이런 모순된 문화 안에서 그 괴리를 줄이려면 주거와 집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전환하고 확장해야 한다. 소유권이 아닌 다른 사회적 권리에 기반한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각주:3]
  

거주하는 집

육체로 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공간을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삶은 반드시 공간을 요구한다. 공적 활동은 물론 개인의 일상을 전개하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가 어느 공간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자세히 관찰하면 된다. 점유된 공간은 그곳을 점유한 이의 관계이고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실존은 곧 공간 내 한 자리로 드러난다. 

이런 시각으로 집이라는 주거 공간을 들여다보면, 집은 평당 가격으로 가치 매김이 되는 부동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집은 먹고 자고 쉬는 곳이다. 생애주기 안에서 돌봄을 주고받고, 몸과 영혼이 성숙해지며 성장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삶의 터전인 집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일상을 영위할 만한 최적의 자리에 부담 가능한 금액으로 필요한 만큼 존속할 수 있어야 한다. 전세든, 월세든, 자가든, 공유주택이든, 공공임대주택이든, 정당하게 노동하고, 안전과 안정을 느끼는 관계를 맺고, 타자를 이해하고 연대하며 곁을 내주는 삶이 주거의 방식과 본질이 되어야 한다. 주거할 집을 갖는 것은 곧 생존이고 온전한 권리이다. 따라서 소유에 치중된 집의 의미는 주거를 목표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

주거권(the right to housing)은 보편적 인권으로, 세계인권선언에 규정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항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에는 음식, 의복, 주거, 의료,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포함된다.”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국가들에서 의무적으로 이행하도록 만든 것이 국제인권규약이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총 9개의 주요 인권 조약 중 7개 인권 조약에 가입 및 비준하였다. 그중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 제11조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 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당사국은 그러한 취지에서 자유로운 동의에 입각한 국제적 협력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권리의 실현을 확보하기 위한 적당한 조치를 취한다.”라고 규정한다. [각주:4]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한 한국은 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진다(1990년 가입). 이렇게 인권으로 선언된 주거권의 구체적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 것이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가 1991년 채택한 “적절한 주거에 관한 일반논평 4”이다. 여기에서는 적절한 주거권을 구성하는 요소 일곱 가지를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각주:5]


1. 강제 퇴거의 위협으로부터 임차 기간을 보호받아야 하는 점유의 법적 보장
2. 물, 전기, 도로, 에너지 같은 서비스, 물자, 시설, 기반 시설의 이용가능성
3. 주거비용의 부담 적정성
4.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거주 적정성
5. 노인, 장애인, 어린이의 접근성
6. 일터나 학교, 병원 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입지
7.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적 적절성

주거권을 구성하는 요소에 따르면 집을 갖는다는 것은 공간을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 내 삶을 통해 도시를 만들어 가는 작업에 가깝다. “주거권은 주택이라는 물리적 거처에 대한 권리로 좁게 해석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주거생활에 필요한 경제적⋅사회적 환경까지 포함한 권리를 의미한다. 즉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주택에 거주할 권리를 넘어서, 제대로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집과 동시에 생활환경을 갖춘 동네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거권은 곧 생활공간, 삶의 공간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다. [각주:6]

전세 사기 피해자, 반지하, 쪽방, 고시원 같은 취약한 주거 환경 거주자, 부동산 시장의 비합리적인 전월세로 2~4년 주기로 옮겨 다녀야 하는 임차 가구, 무분별한 재개발⋅재건축으로 강제 퇴거를 당하는 원주민들, 그 안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도시의 문화와 역사는 주거 공간의 파괴에 따른 삶의 파괴를 경험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모두 연결되어있는 도시라는 유기체 안에서 모두의 삶이 일부분 함께 깎여나가는 현장이다. 

그러므로 지금껏 개발, 속도, 효율에만 초점을 두었던 도시 구성을 멈추고, 주거권에 입각한 공공임대주택, 전월세 임차인 보호제도, 원주민의 생활을 고려하고 인정하는 도시 정비사업 등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또한 주거권과 연결되고 중첩되는 다른 사회권들, 건강권, 사회보장권, 교육권, 이동권 등이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어쩌면 수동적으로 주어진 권리를 찾아 누리는 데서 나아가, 적극적이고 참여적으로 필요한 권리를 주장해야 할 수도 있다. 도시와 사회 중심에서 배제되었던 사회적 약자가 같은 도시 구성원임을 전면으로 주장하고, 보다 활동적으로 도시를 전유하며, 도시 곳곳을 점유하고 사용하는 것이 소유권보다 앞선다는 것을 여러 언어로 표현해야 할 수도 있다. 교회도 도시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이다. 또한 교회 기관 안에는 도시인들이 모여 신앙 공동체를 이룬다. 교회는 주거권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도시를 전유하고 사용하는데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 질문과 고민의 책임은 교회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개역개정)

성서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채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스도교의 여러 전통이 동일하게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 역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인정하는데 있다. 하나님은 그 공간을 빛과 어둠으로, 낮과 밤으로, 따뜻함과 시원함으로, 노동할 시간과 쉴 시간으로 구성하셨다. 물을 모아 육지를 드러내어 공간을 더욱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만드셨다. 모아진 물을 없애지 않고, 생명을 위해 바다라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셨다. 육지와 바다 공간 안에서 여러 식물이 풍성하게 생긴 대로 자란다. 우주가 조화롭게 펼쳐진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동물들이 사방에 본성대로 거주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보기 좋다고 선언하셨다. 이렇게 쾌적하고 아름답고 좋은 공간에 마침내 인간이 등장한다. 인간은 그곳에서 생육하고 번성한다. 즉 주거한다. 성서가 전하는 천지창조의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심지어 비인간 생물까지도 온전하고 통합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런 삶의 공간은 어떤 공간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나님이 직접 성서 전체를 통해 보여주신다. 그리스도인이 주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 특히 삶의 공간을 빼앗기고 파괴당한 동료 인간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며 연대해야 할 이유는 무엇보다 주거의 문제가 우리의 신앙 고백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삶도 소유권으로 치환할 수 없다. 주거권과 소유권은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다. 주거권은 더 앞서 있고 더 근간이 된다.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소유권도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삶을 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집을 살 권리가 보장될 리 없다. 주거권이 충분히 이해되고 온전하게 실현되어야 할 때가 왔다. 

  1. 전체 자가 점유율은 2019년(58%) 기준, 2020년(57.9%), 2021년(57.3%) 모두 감소하였다. 2021년 전체 임차가구율은 39%이다. 국토교통부, 2021년 주거실태조사 참조.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16&tblId=DT_MLTM_6689&vw_cd=MT_ZTITLE [본문으로]
  2. "전세사기 기획조사 결과 및 특별단속 중간결과 발표",<대한민국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briefing/policyBriefingView.do?newsId=156574158 (2023.6.8.) [본문으로]
  3. 한국의 실정법 안에서 임차인의 점유권을 재산권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소유권이 없다고 해서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도 있다. 이계수는 우리나라 헌법의 재산권 개념을 우리 사회의 지금까지의 통념인 민법상의 소유권과 동일한 것으로 협소하게 해석하지 말고, 그 대신 임차인의 점유권도 포함된 개념으로 새롭게 확장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재산권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물질적 기초와 관련된 내용도 재산권에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권으로 재구성된 재산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헌수, ‘삶의 공간을 지키고 보호할 권리’, 『공간주권으로의 초대』(한울아카데미, 2013), 58쪽에서 다음을 재인용, 이계수, “주거권의 재산권적 재구성: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운동에 붙여”, 『민주법학』, 제46호(2011) 13-55쪽 참조. [본문으로]
  4. "국제인권협약문", <외교부> https://www.mofa.go.kr/www/wpge/m_3996/contents.do [본문으로]
  5. 국가인권위원회, 『유엔인권조약감시기구의 일반논평 및 일반권고–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2006) 참조. [본문으로]
  6. 『공간주권으로의 초대』 (한울아카데미, 2013), 59-6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