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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3기/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교권 붕괴

서이초교 여교사 죽음에 대한 교회의 애가(哀歌) / 박창현

 


예수의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가 억울하게 죽은 예수의 무덤 앞에서 울어서 경험하게 된 예수의 부활에 대한 환희를 회복하라.



박창현 목사 (NCCK 신학위원, 감신대 선교학 교수)



0. 어떤 종교학자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진짜 계신가?에 관심이 없고, 다만 교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있는가 (보여지는가, 느껴지는가)? 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지는 성경 속의 예수님 말씀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 5:13-15). 세상은 교회라는 집단, 공동체와 그 교인들을 “입으로 먹으면 맛으로 아는 소금과 같아야 하고, 눈으로 보면 분명하게 눈에 자극이 되어 인식되는 빛으로 존재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는 사회의 사건과 사고에 우리의 입장을 내놓는데 익숙하다. 본인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에 “한국교회 신학은 그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과 모두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한 주장을 여러 곳에서 발표하였던 기억이 있다 (박창현, “세월호 이후의 신학”, 『한국기독교신학논총』, 2017 (103), 345-372). 돌이켜보면 어쩌면 우리 교회는 “이 사회 누구도 묻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 글을 쓰고 있지 않나?”는 자괴감마저 든다. 그럴 때는 우리가 쓰는 글이 “대 사회용”이라 기보다는 “교회 내부용”이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이제 정년을 코앞에 둔 한 신학자로서 이런 글을 또 쓰면서는 “너나 잘하셔요!”라는 사회의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특히 이글은 인터넷이라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공간에서 전해지기에 교회 밖의 사회들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에 글을 쓰는 부담이 상당함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한 결론에서 본인은 이 글에서는 짧게나마 지금과 같은 전 국민이 분노하고 슬퍼하는 한 초등학교의 초임 여교사의 죽음에 대하여 “교회가 있어서 이 사회에 과연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나?” “어떻게 해야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이 사회에 드러나게 될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사회에서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울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본인은 예수쟁이 신앙인으로서 이번 글에 더욱 어려운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것은, 현재 개신교회의 통계에서 해석이 가능한 교회의 상황, 한국교회는 대부분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고, 또 점점 더 그 정도가 심해져 가는 현실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1885년 이 땅에 선교가 시작된 지 138년이 지난 2023년 “자신의 종교가 개신교”라고 응답한 국민은 전국민의 15%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데이터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한국 기독교 목회자협의회 목회 데이터 연구소 2023).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15% 속에는 개신교인만이 아니라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현재 한국교회는 10%에 겨우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쓰는 중요한 나의 인식은, 우리가 138년 동안 교회가 존재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변절되고 잘못 드러낸 교회의 선교의 모습을 먼저 철저하게 회개하고, 이제 새롭게 원래의 기독교의 종교적 본질에 일치하는 예수 정신으로 선교하는 교회의 바른 모습을 다시 드러내야 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개신교의 정체성과 존재의 근거인 성서와 교회의 전통 속에서 “서이초 여교사 사망사건”을 올바로 해석하고, 그간의 교회가 이 사회 속에서 잘못 드러낸 교회의 모습을 찾아내서 회개하고 이제라도 새로운 모습으로 지향해야 할 올바른 “다시 드러냄의 선교”가 무엇인가를 제시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1. 서이초 여교사의 죽음은 이 사회와 특히 교육계가 만들어낸 한 초임 여교사에 대한 암묵적 “타살 사건”이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교회의 후배 여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고아원에서 자란 학생으로 당시 고등학교 교사이시던 나의 존경하는 N 장로님이 교회로 인도하여 소개를 받았는데 실제 나이는 나와 같았지만 늦게 진학하여 내가 1년 선배여서 나를 오빠라 부르는 관계였었다. 그 여학생은 공부를 곧 잘하여 대학 입시원서를 제출하고 고민하던 시절에, 나는 질병으로 학교를 1년 휴학하고 다시 그녀와 같은 고3이 되어 나는 신앙 안에서 기적적으로 병 치료를 받고 복학하여 신학과를 지원하고 있었고, 그 날 따라 나는 병원선교합창단의 정기 발표회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지독한 독감에 걸려 신음할 때, 저녁 즈음에 그 여학생에게 전화가 와서 “오빠 주민등록증 좀 빌려줘!” 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나는 고열로 신음 중에 “미안하다”고 그 청을 거절을 했었다. 그런데 그날 그 여학생이 대학교 입학 합격증을 받고서 여관에서 자살을 한 것이었다. 자신이 자란 고아원 원장과 그녀를 돕던 지인들이 간절히 바라던 “명문” (?!?!) E대를 입학하지 못하고 그보다 “한 단계 떨어진”(?!) S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좌절하여 비관 자살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담임 목사님은 가엾은 그 학생의 장례식을 “자살은 죄!”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셨고, 결국 그 여학생은 그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날 때도 혼자서 고독하게 가야만 했었다. 나는 그후 교회에서 그것은 명백히 이 사회가 한 고아로 자란 여학생을 죽음으로 내몬, 이 사회가 강요한 타살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여 교회에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었다. 당시의 사회가 그렇게 어렵게 처절하게 살아 보려고 피눈물 나게 노력하였던 한 여학생에게 그녀가 혼자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 때, 아무도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않아 결국은 죽도록 방관하고 심지어는 죽음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길로 그녀를 내몰았다는 생각이었다. 
본인은 지금도 그 여학생의 죽음에 대하여는 같은 생각이고, 이번 서이초 여교사 죽음에서도 또 더욱 분명하게 그런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한 이해에서 해석해보는 서이초 여교사 사건은 교사의 권위가 상실된, 곧 교육의 목표와 순기능을 상실한 교육의 현장에서, ‘강남’이라는 대명사로 대표되는 특권의식을 가진 학부모라는 괴물 집단과 책임을 질 줄 모르는 교육 공무원들의 방관이 만들어낸 타살이라는 판단이다. 그렇게 교육자라는 순수한 꿈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여, 이제 막 그 가슴 부푸는 첫발을 내딛는 한 여교사를 이 사회가 죽음의 공간에 홀로 서도록 방치한 결과이다. 마치 아무런 보호 장구도 갖추지 않은 해병대 병사를 수해 현장의 급 물살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도록 강요하여 죽음으로 내몬 것과 같은, 이 사회의 슬픈 단면인 것이다. 이는 교사의 정당한 지도와 교과 과정 속에서 일어난 학생의 일탈 행위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허용하지 않는 “학생 인권조례”가 만들어낸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다. 지난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부모들보다 높은 교육을 받은 현실에서 교사들이 학부모를 무시하며 교사들 위주의 폭력과 폭언 등으로부터 피해보던 학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현행“학생 인권조례”가 오히려 선한 의지를 가진 교사들을 이제는 교사들보다도 훨씬 높은 교육을 받고 돈과 권력을 함께 움켜쥔 신자본주의에 길들여진 괴물과 같은 학부모들 특히 강남의 살쾡이 이리떼와 같은 소수의 학부모들의 손에 교사들에 대한 협박과 고발이라는 이름의 칼을 손에 쥐어 준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번 서이초교 여교사 죽음의 사건은 문제 학생의 아버지는 검찰 공무원, 어머니 경찰 공무원이라는 권위로 치장한 학부형에게 오랜 시간 마음을 난도질 당하도록 방관한채, 심지어는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교육계의 교사 보호조치 조차도 가동시키지 않아서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결국 잘못된 권위주의적 폭력적 교사들의 횡포로부터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생겨난 “학생 인권조례”가 교사들의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지도행위자체를 몇몇의 왜곡된 인격을 가진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범법자로 내모는데 사용되는 합법적인 무기를 손에 쥐어 준 결과를 제공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에는 교사 및 학생들의 신체를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교사의 정당방위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구체적 학칙으로 정한 훈육 방법 등의 보조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법은 돈과 권력으로 왜곡된 인격을 가진 학부모들의 법적 승리를 보장해주는 장치로 작용하였다. 결국은 이번 서이초교 사건은 인성이 잘못된 강남의 학부형들이 “학생 인권조례”로 무장을 한 상태에서 교사는 아무런 무기와 보호 장비도 없이 그들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혼자 싸우도록 내몬 사회와 기관의 무책임과 방치가 빚어낸 참혹한 결과이다. 

여기에 불의한 사회가 만들어낸 일상의 모습, 모두에게 공정한 제도적 법적 정의 실현이 아니라, 특정 이익 집단에 유리한 행정적 법 처리의 문제가 더해졌다. 그러한 것은 이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다루는 학교와 지역 경찰과 교육부의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들은 미리 정해진 듯한 틀을 가지고 죽은 교사 자살의 원인을 특정사유 일면만을 발췌하고 과장 강조하여 종래 고인의 직장인 학교내 상황과는 아예 무관한 것처럼 하여 여교사의 죽음을 마치“남자 친구와 헤어진 것을 비관한 자살”로 몰고 가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에 분개한 동료 교사들과 유족들이 나서서 힘겹고 외로운 투쟁으로 그들이 만들어낸 한 여교사의 죽음의 원인에 대한 날조된 사유를 밝혀내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교사들은 연합하여 한 여교사의 죽음을, 같은 문제를 가진 교사들의 입장에서 함께 아파하며 해결을 위해 투쟁을 벌였고, 49재의 애도 모임에서는 자신들의 교사직을 걸고 수많은 교사가 참여하여 사회를 놀라게 하였다. 감추고자 하였던, 망자의 명예를 난도질하려던 관련 경찰과 교육부, 학교의 교장과 교감의 입장은 소위 “기레기”라 불리는 집단의 기자들과 야합하여 그 여교사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기사가 나가도록 하였고, 마침내는 49재 애도식에 참여하려던 교사들을 교육계에서 퇴출하겠다는 교육부 장관의 협박까지도 서슴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벌렸다. 이후 반대 기사가 다른 매체들의 기자들을 통하여 쏟아지며 여론이 술렁이고 생각보다 너무 많은 수의 교사가 질서 정연하게 49재를 엄숙하게 진행하는데 대한 여론의 긍정적인 반응에 이를 의식한 교육부 장관도 당일 49재 참여 교사의 해임을 협박하던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죽은 여교사의 사촌 오빠의 등장과, 항의, 그리고 애도의 모임 때마다 함께 하며 동료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소리 높이던 수많은 교사들, 그리고 시민들의 힘이 조금씩 불의의 검은 구름을 걷어내고 정의의 밝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만들어 내어 감히 이 사건의 해결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들고 있다.  

2. 이 사회와 교육의 현장,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사건의 문제의 핵심은 교육의 본질이 왜곡된 이 사회와 교육 현장의 깊은 병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교육은 인간 스스로가 선천적으로 깨닫고 삶의 과정속에서 깨달은 그것을 중심하여 아직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곧 경험하게 될 사람들에게 후천적으로 가르쳐 양육한다! 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이미 경험 한 자 (부모, 교사, 선배…)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자 (자식, 제자, 후배...)에게 그러나 같은 경험을 하게 될 미 경험자에게 알려 준다는 것이고, 이것을 조직적으로 하는 것이 공교육이라 한다. 그러므로 공교육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교육을 위한 가르치는 교사에 대한 이해가 부모들의 필요에 의하여 고용된 직원 정도로 이해되어지는 현실의 문제가 심각하다. 현장의 교사들보다도 교육을 질적으로 외형적으로 자신들이 더 많이, 잘 받았다고 착각하는 학부모 집단에게서 자신들은 교사집단보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졌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이 주인이다”라는 왜곡된 의식을 뿌리 깊게 갖고서 교사들을 하대하고 멸시하려는 태도 등은 여러 모습의 사례들로 자주 포착되어진다. 공교육의 현장에서는 우리 교육의 목표가“홍익인간”이라는 전인적 가치는 무시된 채, 보다 좋은 상급학교 진학과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점수를 얻는 과정쯤으로 평가절하되어 있으며, 거기에 자기의 옳음을 “선동질”로 증명하려는 갑질 문화의 만연이 문제이다. 옳음이 아닌 “법적 승리”가 최선으로 여겨지고, 가진 자가 돈으로 법조인을 고용하여 법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대중과 여론을 선동하고 조작하여 박수치는 시대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법은 이제 모두에게 공정한 법적 절차를 제공하고 모두에게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법이 아닌, 가진 자의 입장을 두둔하여 그들에게 법적 승리를 안겨주는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요술 방망이가 되어 버렸다. 

거기에 기술과 정보 위주의 4차 산업혁명을 추구하는 이 사회는 이 기술과 환경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옹호해 주는 또 다른 요술 방망이가 되었다. 이 사회는 이제 인터넷의 역기능 앞에 속수무책이다. 비인격적 선동문화 (부채질), 패거리 문화 (옳음이 아닌 내편 만드는 팬덤 문화), 한 개인이나 집단을 죽음으로 내모는 가짜 정보 유포에 무감각한 사회…. 이러한 모든 것들은 편향적인 정보 환경에서 자기 집단 문화에 갇혀서 모두가 모두를 위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기에 갈등 해소나 분쟁 조절이 아닌 여론재판으로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때려잡는데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만들어 간다. 결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옳음을 지향하는 전문가적인 견해와 판단이 아닌 선동에 의한 공개 재판이 승리하는 모습이 사건들마다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인간이 힘들게 얻어낸 보화와 같은 지식이 교육을 통하여 전수되어 우리가 사는 사회를 진보로 이끄는 것이 아닌 4차 산업혁명의 기술에 익숙한 컴퓨터와 인터넷 세대가 과거의 인간이 고귀한 경험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사회가 된 것이다. 

3. 교회는 이제 이러한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본인은 여기에서 이 사회에 대한 어떤 요구보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어찌해야 하나? 라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생각으로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종교란,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한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 자신이 있다고 믿는 신을 추구하고 살다가 그 신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므로 그 신의 뜻을 따라 일반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Jacques Waardenbugr). 고상한 말로 치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신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고, 이런 이해에서 개신교인이란,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예수를 현실의 성령을 통하여 경험하고 내 뜻이 아닌 성령에 의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예수)의 뜻을 이 땅에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이초교 교사의 죽음의 현실에서 교회로 표현된 우리 개신교 신앙인들은 어떠한 자세를 취하여야 하나? 앞서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이러한 앞에서 언급한 잘못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 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개신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된 우리네 종교적 특색을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재현해 놓은 표현물들은 2,0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도 개신교인들에게 전혀 진부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불의하게 처형된 예수를 슬픔으로 바라보던 예수의 여인들 (막달라 마리아 등 요 20: 1-18)이 그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경험한 그 여인들의 경험이 오늘의 현실, 즉 불의한 삶의 현장에서 고통 당하며 신음하는 인류에게도 위로가 되고 소망을 갖게 하는 사건의 상징이 되기 때문 이리라 생각한다 (“여자제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었다: 요 20:1-18에 나타난 선교적 함의” 『신학과 세계』 제94호 2018: 411-452). 그렇다면 여제자들의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경험한 것이란 무엇인가?

a. 그것은 “이 여인들은 먼저, 고통 당하는 예수, 사랑하는 예수가 당한 슬픔을 자신들의 슬픔과 고통으로 이해하고 함께 슬퍼해 주는 행위를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예수에게서 배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9)는 말씀을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한 여인들이 실천한 것이다. 이는 신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정해진 예언에 따라 아무런 감응없이 이루어진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아직 부활하여 신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의 인간 예수, 갈릴리 나사렛의 한 청년이 당한 불의한 죽음에 대한 애도의 마음에서 나온 행동을 의미한다. 로마의 불의한 재판정에서 십자가 처형을 받는 의로운 청년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며 눈물을 삼키던 여인들이 로마군의 살벌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황제모독죄로 처형된 죄인 예수의 시체가 안장된 동굴을 찾아가서 그를 애도함으로써 마지막 예를 갖추고, 폭정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전달하려던 연대의 행동을 하는 양심들이 맞닥친 기쁨이 부활이었다. 예수만이 아니라 그 양쪽에 같이 매달렸던 다른 두 명의 처형자처럼 처참한 죽음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현장에 그 여인들은 몸으로 직접 참여하여 예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건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에 산 증인이 된 것이다. 이 사회에는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전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있었고, 그 후에도 계속하여 교사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건이 교사가 학생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을 빌미로 학부모들의 무모한 개입과 폭언 그리고 협박과 고소 고발이 만들어낸 죽음의 늪이었다. 교사들의 죽음은 교사의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하다 발생된 사건에서,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교사 개인이 혼자 감당하다가 결국은 지쳐서 선택하게 만든 교육계의 사회적 타살이라는 정황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점에서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사건에서 이전에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와 같이 슬퍼하며 예수와 함께 울며 항거하는 여인네 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예수의 불의한 죽음의 경험을 가진 집단으로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반성하고 계승하여 신의 참여에 의한 억울한 죽음에 길에 들어선 예수의 부활을 위해 연대하였던 것처럼, 이제 서이초 교사의 참혹한 죽음에서도 그녀와 함께 슬퍼하며 사회와 연대하여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서 부활을 통한 치유와 회복을 사회와 공유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교 46개 단체와 연대하여 성명을 발표하고,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교육부와 정부를 향해 교육현장 한복판에서 헌신적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하며 49재에 교인들의 직접 참여를 독려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b. 억울하게 죽은 예수의 부활이 없이는 오늘의 교회를 생각할 수 없듯이, 유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만이 아니라,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바로 해석하고, 그녀의 죽음의 부활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 부활을 함께 꿈꾸는 행동의 연대를 통해 슬픔에 갇힌 사회의 한복판에서 부활의 축제를 경험하는 사건을 이루어 내야 한다. 초임 교사가 혼자서 “살고 싶다”고, 교내 갑질과 따돌림을 경험하고, 처음은 목숨을 던진 이들에게 “왜 남은 목숨이 아깝게 죽냐?” 생각했던 젊은 이가, “내 상황이 되니 이해가 된다”며, 스스로를 “행복한 생활과 여유가 없다”고 비관하고, “나 좀 살려달라!”, “(나를) 함부로 욕하지 마라” 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을 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6-17) 고 하던 예수의 그 말씀을 따라 그녀의 곁에 있어줘야 했던 교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삶에 지쳐서 도움을 청할 곳을 찾아 방황하며, 그 와중에 교실에서 선생을 향하여 애가 물건을 집어 던지는 최악의 현실에서 그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매일의 무기력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 그러다가 그녀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삶의 줄을 놓아버렸을 때, 이 사회의 교회는 어디에 있었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땅의 초기 선교 때 가난한 자, 병자, 배우지 못한 사람들, 상놈들이 문을 두드리던 교회는 어디에 간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교회는 세리와 죄인, 창녀들, 소외된 자,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와 가난자 편에선 약자들을 위한 종교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위한 가진 자의 종교로 변하여서 세상을 향하여 세상 속에서 세상을 섬기는 선교를 하라는 명령을 교회 안에서 자기 교인들 만을 위한 교회로 변화되어 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증거가 이전에 1919년 나라를 잃은 서글픔 가운데서 3.1 독립 운동의 기수가 되어서 사회의 모범을 보였던 교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60년 7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도시빈민들과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편에서, 핍박당하는 정치인들의 편에서 용공주의자로 내몰리면서까지 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며 민주사회의 발전에 기여했던 교회의 모습은 요원하기만 하다. 요즘 교회는 세월호 사건에서, 이태원 참사에서 우리가 그들과 함께 울었고 또 서이초교 사건에서도 우리가 함께 울고 있지 않냐? 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말 그들을 위해 끝까지 동행한 적이 있었던가? 

비슷한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불의한 사회 속에서의 수많은 고통을 반복하여 경험하면서도 자기의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무감각 해져서 살아내는 우리의 이러한 방법에 대하여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던진다.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잠시 눈물을 흘렸을 뿐이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손택은 이러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의 문제를 “좌절”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캄보디아의 폴포트 정권하에서 너무 많은 사람의 참상이 오히려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반복되는 이미지로 충격이 엷어지고, 고개를 돌리게 만들고, 그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라는 포기 상태에서 자기의 무능력을 인정하게 되고, 이러한 이미지를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즉 “연민”의 감정으로 “불쌍하다”정도로 잠시 일정기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이런 일들을 다루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마음 깊숙이 담아둠의 실패” 라는 말로 표현한다. 결국 공감의 실패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무능력에 대한 보호 장치로 작동한다. “고통의 강도가 높고 장기간 지속될 때 일수록, 사람들은 그 고통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쉽게 좌절하고 마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이 서이초교 여교사의 죽음과 같은 반복되는 사건을 접하는 오늘 우리 교인들의 심령을 갈아먹은 듯한 현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4. 교사들에게서 배우는 애가(哀歌)와 우리의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다시 드러냄의 선교”. 

이번 49재를 참여하면서 “퇴직의 위기”를 극복하고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세상의 애도에서 함께 부를 애가(哀歌)를 배운다. 우리 교회도 그 교사들처럼 퇴직의 위기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슬퍼하는 자, 우는 자들과는 어떠한 불의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동행하는 마음, 즉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배운 것 같은 잘못된 일에는 십자가를 질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하려는 신앙적 결단과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슬퍼하는 자와 함께 끝까지 울어 주는 일을 감당해 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때, 사람들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만큼 울었으니, 이제 그만하자!” “이제 되었으니, 충분하니 그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자식이 없이는 그냥 돌아갈 곳이 없다. 별이 된 자식들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은 그 참사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로 그들의 죽음이 부활하는 모습이 없이는 해결될 수가 없다! 예수를 잃어버린 제자들은 예수 없이 잘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의 제자들은 막상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자, 골고다 언덕에서 도망쳐서 다락방에 숨어 버렸고, 베드로와 다른 주의 사랑하는 남자제자는 빈무덤에 놀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불려서 죽은 예수가 없어진 곳에 가서 함께 부활한 예수를 찾아보자 하지만 빈동굴까지 와서 예수의 시체가 동굴에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고는 급히 돌아 가서 다시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갔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울면서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곳을 지키며, 예수의 억울함에 깊이 눈물 흘리다가,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를 기쁨으로 만나서 부활의 증인이 된다. 우리는 이 세대의 슬픈 역사 가운데서 끝까지 슬퍼하는 자들과 동행하며 그들과 함께 울어주며, 우리의 믿음으로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부활의 사건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해야 한다.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는 교회는 교회 자신만을 위해 존재할 때는 아무런 존재의 이유가 없고, 교회의 자기 중심성에서 탈피하여 세상을 위한 교회로 존재할 때, 세상의 고통의 한 가운데서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평화(Shalom)을 위한 교회로 살아갈 때에 비로서 존재의 이유를 갖는다고 한다. 테오 쥰더마이어(Theo Sundermeyer)는 교회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축제를 벌이는 “세상과 함께 축제 함의 선교”를 말한다. 이제 교회는 서이초교 여교사의 죽음의 문제에서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으로 경험되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본래 예수의 맛을 잃어버린 교회의 지금 모습을 회개하고, 예수의 죽음의 십자가에서 생명의 부활을 경험하는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갔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다시 드러냄의 선교”를 이루어 내야 한다. 교회의 참가치는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행동과 가르침을 체화해낼 때, 사회 속에 빛과 소금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벗어주고, 오리를 가자는 사람에게 십 리를 동행하는, 바로 그 행동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에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