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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국가조찬기도회

국가조찬기도회 / 최태육

국가조찬기도회

- 최태육(사단법인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설립초기(1965-1970) 연례 대통령 조찬기도회

설립초기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통령의 통치 이념과 정책을 지지하고 이를 기독교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대통령은 자신의 통치이념과 정책을 지원할 수 있는 세력을 얻었고, 기독교는 권력의 품에서 안정적으로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1966년 2월 3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2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기도회를 갖고 “국제기독교지도자협의회(International Christian Leadership) 한국국회의원 조반기도회”를 결성하였다. 회장은 평양 남산현감리교회 출신으로 공화당 소속 박현숙 의원이었고, 총무는 민중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었다. 이 모임을 주선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김준곤 목사의 제안으로 참석자들은 1966년 3월 8일 조선호텔에서 대통령 초청 조찬기도회를 가졌다. 이효상 국회의장, 정일권 국무총리, 김종필 공화당의장, 이환신 감독을 비롯한 각 교파 지도자, 군 장성, 정재계 주요인사 등 5백여 명이 참석하였지만 정작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정일권은 “6.25동란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대항”하자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다는 신념아래 조국근대화에 노력하자”고 하였다. 김활란은 “모세와 같은 능력으로 이 민족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에게 지혜와 능력의 지팡이를 달라”고 기도하였다. 김준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신론의 사회는 절망뿐이니 우리는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의 앞에 서자.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민족을 움직이고 구제하는 역사적 기회가 되자. 우리 민족에게 발전이 없다고 하는 자는 민족반역자.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박 대통령도 링컨같이 하나님의 은총 받은 사람으로 되어주기를 바라며 다 같이 기도하는 민족이 되자.

이들은 박정희 정권의 통치이념인 반공을 내세웠다. 또한 반대자를 반역자로 규정하면서 박정희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년)과 경재개발 정책을 적극 지지하였다. 국가권력의 통치 이념과 정책을 기독교인의 신앙과 사회생활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당선(1967년 12월)된 지 5개월 만인 1968년 5월 1일 워커힐호텔에서 ‘제1회 연례 대통령 조찬기도회’가 열렸다. 이 기도회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의원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정재계 인사, 외국인 등 5백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환신 목사는 1961년 5.16 세력의 “혁명공약” 3조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舊惡)을 일소(一掃)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청신(淸新)한 기풍을 진작시킨다.’(혁명공약 3조)에 나타난 국민, 도의, 민족정기, 청시한 기풍, 이 세 가지는 바로 민족양식의 본연의 자세를 말하는 선언입니다.

그는 박정희가 쿠데타 당시 발표한 “혁명공약”을 민족양식의 정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우리의 영도자 박 대통령께 하나님의 말씀이 같이 하시어서 빛과 조화로 힘차게 발전하는 우리나라에 영광이 오기를” 빈다고 하였다.

제2회 조찬기도회에서(1969.5.1. 세종호텔) 김준곤 목사는 박정희가 추진하는 개발정책과 기독교의 영적 부흥을 연결시켰다.

우리는 민족의 근대화와 민주화, 그리고 민족중흥의 과제 앞에 섰습니다. 이 사명을 달성하기 위하여 뉴우프론티어 정신의 용기를 발휘하고 그 활력소를 조처에서 찾아야 합니다. 땅 속에도 바다 속에도 경제와 과학에도 미개발의 영역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인간개발, 그 정신력 개발, 그 도덕적 부흥, 영적 신앙의 부흥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 정책을 지지하면서 기독교도 이에 발맞추어 영적 발전과 부흥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개발과 발전을 통한 근대화를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교회 성장과 부흥에 연결하였다.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끝날 무렵 기독교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와 국가보위비상대책회위원회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최종과정에서 조찬기도회를 열었다.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나라를 위한 조찬기도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도한 KBS영상 자막에는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라고 적혀 있었다.

일 시 - 1980년 8월 6일
장 소 - 롯데호텔 에메랄드 룸
연락자 - 보안사 군목 문만필
참석자 - 한경직, 조향록, 김지길, 정진경, 김인득, 강신명, 김용도, 김윤식, 김준곤, 김창인, 김해득, 민영환, 박정근, 박치순, 신현균, 유흥묵, 이경재, 이봉성, 장성칠, 조덕현, 지원상, 최태섭 등 23명

참석자는 예장 한경직, 기장 조향록, 감리교 김지길 등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또한 보안사령관 출신으로 1980년 8월 5일 대장으로 진급한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과 분과위원장 전원이 참여하였고, 기도회는 KBS, MBC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조찬기도회가 개최된 지 26일 후, 9월 1일 전두환은 장충체육관에서 실시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 기도회에서 정진경 목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이 시간은 특별히 전두환 사령관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가 일찍이 군문에 헌신해서 훌륭한 지휘관으로 나라를 방위하는데 충성을 다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최근에 이렇게 어려운 시국에 모든 사회악을 제거하고 정화하는 운동에 앞장설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민주화가 이 땅 위에 온전히 실현되는 데 큰 공헌을 해서 그의 업적이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물려지게 해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제 간절히 원하옵는 것은 그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시고 또 인간의 차원을 넘는 하나님의 지혜와 용기를 그에게 허락해 주시고 그의 신변을 보호해 주시며….

정진경 목사는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주도한 정화운동을 사회악의 제거로 인정하면서 그 통치이념에 동조하였다. 이에 전두환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지금 우리는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 그것은 이 어렵고도 막중한 국운 개척의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여 안정된 복지국가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힘을 모아 노력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는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며 이 자리를 빌어 여러 분과 함께 이러한 결의를 새롭게 하고자 한다.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는 5.18 광주학살의 지휘명령자를 위한 기도회였다. 이 기도회는 광주 학살을 자행 한 후 국보위를 통해 정부조직을 장악하고 전두환 정권을 창출하는 최종 과정에서 실시되었다. 조찬기도회를 조직한 이는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의 군목이었다. 그런데 어느 목사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를 하였고, 어떤 내용으로 설교를 하였다는 것보다 기독교가 쿠데타와 학살의 최고 지휘명령자를 위해 기도회를 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대통령 조찬기도회를 통로삼아 국가 권력과 기독교는 서로의 권익을 주고받았다.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정책과 통치이념을 지지할 수 있는 기독교세력을 얻을 수 있었고, 기독교계는 권력의 인정 속에서 부흥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조건들을 얻었다. 그런데 양자가 이렇게 밀착할 수 있었던 것은 김준곤 목사의 설교에서 발견되듯이 개발과 발전이라는 통치 이념과 성장과 부흥이라는 교회의 열망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기독교인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대통령 조찬기도회라는 회랑(回廊)을 통해 국가 권력의 통치이념과 교회의 부흥성장이라는 신념이 밀착되었고, 이러한 정교밀착은 국가권력의 안정과 기독교계의 종교적 기득권 보장이라는 상호 이익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태도는 쿠데타와 5.18광주 학살을 자행한 신군부의 권력창출을 지지하는 데까지 나갔다. 교세확장과 기득권 유지를 보장한다면 그 권력이 어떤 것이든 관계없다는 식이었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기독교는 신앙의 양심과 상식을 잃었다.

교세확장과 부흥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국가권력의 이념으로 대체하고, 학살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와 국보위를 위해 기도회를 열었다. 이제 기독교는 자신이 걸어왔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