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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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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장애인들의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보통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실제로도 내가 장애인 형님을 부축하며 이동을 할 때면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준다. ······· 그러나 만일 그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길을 가로막으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한다면, 사람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세상 사람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 시선의 진실이 드러난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이동과 교육과 노동을 ‘권리’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황푸하의 이 글이 우리가 4월 사건과 신학의 주제로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리 투쟁”을 삼은 이유를 잘 말해주고..
그 아름답고 복 된 발 / 황푸하 황푸하 (NCCK 신학위 사건과신학 위원,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부활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애인의 오빠는 장애인이다. 그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장애인의 가족이 되었는데, 나는 그제야 장애인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장애인을 혐오하거나 그들의 권리에 대해서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 도덕적으로 떳떳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힘든 수술들을 견디며 자라서 그런지 남들보다 겁이 많다. 사람들의 눈치도 많이 보고, 작은 일에도 오해가 많으며 이해가 느리다. 이동이 어렵고 두려움이 많아서 그 쉬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도 큰 소동을 치러야 했다. 내가 볼 때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족이 ..
장애인 인권운동, Zero-Base(제로-베이스)를 만드는 것 / 이정훈 이정훈 (NCCK 장애인소위원회 위원)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으로 인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와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만들어낸 파장, 이에 대한 이준석의 혐오 발언으로 인해 장애인 인권운동이 꿈에도 소원했던 전국구가 되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21년간이나 외쳤는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한국 사회가 드디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장애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마음의 준비는 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글 끝이 아니라, 글 앞에 사족을 붙여본다. 전장연이 장애인 인권운동을 모두 대변하느냐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겠다. 물론 아니다. 장애인 인권운동의 스펙트럼도 굉장히 넓다. 마치 한국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했던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처럼 장애인 인권운동도 동일하다는 말이..
한국교회가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에 함께 해야 하는 이유 / 유진우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저는 4월 12일 아침 8시에 경복궁 역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삭발한 이유는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에 대한 윤석열 인수위의 답변을 촉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는 장애인인 저에게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장애인인 저는 비장애인이 하는 취미, 운동을 하지 못해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머리를 자주 바꿔가며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삭발을 했습니다. 머리보다 더 간절한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에,.. 장애인권리예산은 투쟁하지 않으면 결코 쟁취해 낼 수 없기에 삭발을 결의하고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삭발식에서는 새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새민족교회 목사인 황푸하 목사가 ‘바퀴 축복식’이라는 다소 생소한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바퀴 축복식’이 어떠한..
장애인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을 생각한다 / 홍인식 홍인식 (새길교회/새길기독사회문화원) 지난 4월 17일 주일은 부활주일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과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를 통하여 시작된 하나님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지 않고 결국에는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희망을 우리에게 준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분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어떤 고난도, 아니 죽음까지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처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부활의 경험은 오합지졸과 같았던 제자들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부활이었다. 예수는 유대 땅에서 한 이름 없는 유대인으로 살다 죽었..
‘코로나 시대, 외면당하는 낮은 목소리들’ 어느덧 3년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은 코로나 그 이면의 이야기로 안전과 방역 속에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거리두기를 하고, 왜 철저히 방역을 하고 있는지 그 뜻을 잃어버린 채, 소위 “건강한 시민”이라는 정상성에 편입된 이들을 중심으로 설계된 안전조치가 작동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리두기와 방역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배제되고 가려진 낮은 이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거리를 두고, 방역을 실시하는 이유는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생명과 안전을 위한 일이기에 기꺼이 거리를 두고 방역을 하는 어려움과 불편함을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생명 살림의 일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의도된 것은 아니다. 타인의 생명과 ..
코로나19 시대에 코이노니아를 생각하며 : 정신장애인 교우 A와의 인터뷰 / 강세희 강세희 (한국기독교장로회 한백교회, 이화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석사과정) 코로나19, 3년차로 접어들며…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겨울, 나는 사건과 신학의 지면을 통해 코로나19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주일 성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에클레시아의 지향성을 성찰해야한다는 논지의 글을 2차례 기고했었다. 방역지침이 종교시설과 대면예배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예배당 중심의 ‘주일 성수’의 과정과 규모는 간소화되었다. 대신에 ‘삶의 자리’와 ‘가정’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강조하고, 온라인/미디어 예배를 활성화하는 목회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한 듯하다. ‘새로운 목회 비전’으로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예배의 확장성을 도모하는 교회가 있는 한편, 예배와 모임을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