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소득과 신학

완전고용이라는 불가능한 꿈, 기본소득이라는 유토피아 / 용혜인

완전고용이라는 불가능한 꿈, 기본소득이라는 유토피아

 

용혜인(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 기본소득당 前 대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이세돌 9단이 은퇴했다. “이세돌에게 바둑이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받은 그는 쉽게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는 그는, 망설임 끝에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에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2016년 알파고에게 패배했던 것이 큰 아픔이었고, 은퇴를 결심했던 이유였다는 이세돌 9단은 역사에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남았다. 동시에 인공지능이라는 기술발달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오늘날 이윤은 더 이상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기계를 돌리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은 기존 생산영역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일상영역에서 만들어낸 데이터들을 수집하여 가공한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이윤창출의 원천을 발견했다. 빅데이터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2017년 글로벌 시가총액 5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초연결시대’라는 통신사의 카피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기술발전이 가져올 전 사회적인 변화를 매우 잘 표현한다.

 

이런 플랫폼 기업들이 만들어낸 부는 기존에 전통적인 산업영역에서 생산된 부에 비해서 거의 노동소득으로 분배되지 않는다. 2017년 시가총액 5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페이스북이 직접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12만명인 반면, 1962년 가장 중요한 회사였던 GM은 60만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190억 달러에 인수할 때 왓츠앱은 55명의 노동자만을 고용하고 있었으며,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에 인수할 때 인스타그램은 13명의 노동자만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소수의 플랫폼 기업의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빅데이터의 활용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의 발전은 다시 생산영역 자동화에 획기적인 확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계나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던 중숙련 일자리까지도 자동화 기계가 대체하거나, 크라우드 노동(crowd work), 주문형 앱 노동(on-demand work)이라는 새로운 노동 형태, 즉 ‘플랫폼 노동’이라는 극도로 불안정한 저임금의 일자리로 대체하고 있다.

 

생산영역 전체에 걸친 자동화의 확대, 생산과 소비 방식의 변화 등 경제영역 전반에 걸쳐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데이터 기반 경제로의 전환이라고 불린다.


고용을 전제로 한 복지국가는 지속불가능하다.

 

완전고용을 바탕으로 고임금-고성장이 가능했던 20세기 호황기에 완성된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다. 강제된 사회보험을 통해 노동자들이 실업, 질병, 사고 등으로 노동력을 상실하거나 퇴직으로 노동하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력이 없는, 혹은 노동력을 상실한 사회구성원들에 대해서는 자산심사를 통한 공공부조를 제공함으로서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한국의 복지제도 역시 고용을 전제로 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노동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이들을 위한 공공부조 제도가 골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불안정한 저임금의 일자리밖에 남지 않은 지금, 노동을 전제로 한 기존의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2019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탈북 모자 아사사건은 기존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생계급여를 받던 모자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벌이가 생기면서 생계급여가 끊겼고, 월세와 전기료를 16개월이나 밀리는 생활고 끝에 사망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자리의 감소와 기존 일자리의 저임금-불안정화, 이로 인한 불평등과 빈곤의 확대 등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근로장려금(EITC) 확대, ‘국립대 강의실 불끄기’, ‘침대 라돈 측정’ 같은 단기-저임금 공공일자리 확대 등이다. 혹은 노동자들이 ‘IT교육’ 등을 통해 변화하는 산업체제에 걸맞는 노동력이 될 것을 역설하기도 한다. 경제성장이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만 양산한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지금, 여전히 일자리 중심의 분배정책만을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혁신적 포용국가’의 목표와 현실의 정책방향이 불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상상력, 기본소득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여전히 일할 것을 강요하는 ‘일자리’ 중심의 분배정책은 양모 생산을 위해 쫓겨난 농민들을 빈곤 구제라는 이름하에 강제노동을 시켰던 산업혁명 당시의 ‘구빈법’을 떠오르게 한다. 축소되는 노동의 문제, 그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생산되는 부의 분배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노동’을 통한 1차 분배, 그리고 ‘노동’을 전제로 한 기존 사회안전망의 작동방식과는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본소득당은 토지, 빅데이터, 자연 등 누군가의 것이라고 특정할 수 없는 사회의 부를 ‘모두의 것’ 즉, ‘공통부’로 설정하고 이 공통부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모두가 배당 받을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부 배당’을 모두에게, 조건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노동을 전제로 한 기존의 복지제도의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다른 재분배 정책이다. 또한 ‘공통부 배당’에 입각한 기본소득은 임금을 통해 분배되던 사회적 부의 1차 분배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적 부의 분배 방식이다.

 

흔히 기본소득을 주장할 때, “비현실적이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비판을 마주하곤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선거권을 갖는다는 지금의 보편적인 상식 역시 19세기에는 비현실적이었다. 또한 1~2년에 한 번씩 전국적인 선거를 하는 것 역시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구현 방식 중 하나인 선거를 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비현실적이라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이유로 비판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전제 하에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도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모든 인간의 존엄함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고, 최소한 꼭 논의해야 하는 대안이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사람들이 현실에서 감각하게 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분명 이전에 비해 확대되었다. 이제는 개인들의 개별적인 지지를 넘어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분명한 분석과, 대안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