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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신학

녹색전환과 기본소득 / 하승수

녹색전환과 기본소득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1. 기본소득의 의미는? : 녹색전환을 위한 실마리


영화 <인터스텔라>는 지구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면, 황사 같은 먼지가 폭풍처럼 밀려오고, 밀농사가 불가능해져서 옥수수만 심게 되며, 건강이 안 좋아져서 아픈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인류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이었다. 바로 기후변화, 아니 기후위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공상이 아니라, 곧 닥쳐올 현실이라는데 있다. 올해 여름에 유럽은 40도가 넘는 폭염을 겪었고,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산불은 벨기에보다 넓은 면적의 산림을 불태웠다. 기후위기는 잦은 가뭄과 홍수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사막화도 더 심해질 것이다. 농작물들은 바뀐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농사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래에 닥쳐올 일에 관심이 없다. 곧 빙산에 부딪혀 배가 침몰할 지경인데도,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는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타이타닉’ 호의 승객같은 모양새이다.

 

물론 소수이지만, 이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작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에서는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 지난 수십만년동안 300피피엠(ppm)을 넘어서지 않았던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410ppm을 넘어서고 있다. 매년 2ppm 이상씩 올라가고 있다.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450ppm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0년도 되지 않는다.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에서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채택됐다. 이 보고서는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의 기온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하며, 2050년까지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흡수가 서로 완전히 상쇄되는 ’배출제로(Net-Zero)’를 달성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말이 쉽지 2030년까지 45%를 감축하려면, 정말 모든 것을 신속하게 바꿔야 한다. ‘빠르고 광범위한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기후위기는 개인이 텀블러를 쓴다고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텀블러를 쓰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산업구조를 전환하지 않으면 그것을 획기적으로 감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경우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대기업들이 있다. 철강, 에너지, 발전, 석유화학, 시멘트. 모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과 하청업체들까지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이 이와 관련해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산업들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산업구조를 전환해 나가야 한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 폐기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구조 자체가 에너지 자급률, 먹거리 자급률을 높이고, 지역내에서 순환하는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지만, 기존의 산업이 이렇게 재편되는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또한 당장 기존의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면, 지금 사회로 나오는 청년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대대적인 전환의 과정에서 기본소득이라는 ‘비빌 언덕’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것 하나면 다 해결된다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렇지만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풀 때에는 ‘실마리’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이 녹색전환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녹색전환을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2. 기본소득인가, 시민배당인가?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쓸 것인가, 시민배당이라는 이름을 쓸 것인가? 라는 문제도 있다. 미국같은 사회에서는 income 보다는 dividend라는 용어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얘기가 있다. 현재로서는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쓰되, 기본소득=시민배당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기본소득=시민배당인 이유는 바로 ‘공유’에서 나오는 배당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본래 ‘공유’였던 토지나 천연자원 등에서 나오는 수익 중 일부를 걷어서 배당으로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고, 온실가스 배출행위처럼 생태위기를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 세금(또는 부담금)을 걷어서 배당으로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유개념을 좀 더 확장해 볼 수도 있다. 개인이 버는 소득도 개인이 잘나서 버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돈을 벌기까지는 사회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서 배우고 성장하고 능력을 키울 수는 없다. 따라서 소득세같은 세금을 상당히 많이 걷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그 사람이 버는 소득 중에 상당부분은 사회공동체의 몫으로 돌리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득세로 걷은 돈으로 시민들이 배당을 받을 수 있다.


국가가 세금으로 이미 걷어들인 돈도 일종의 공유자원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공유자원이 쓸데없는 곳에 많이 낭비되고 있다. 불필요한 도로를 닦고, 환경을 파괴하는 토건사업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금을 쓰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깍아주는 것도 문제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특혜성 세감면을 해 왔다. 여전히 심각한 탈세도 문제이다.


이런 예산낭비나 특혜성 세감면, 탈세는 국가재정이라는 공유자원을 낭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산낭비나 특혜성 세감면, 탈세를 없애서 시민들이 배당을 받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3. ‘알래스카 모델’에 대한 오해


시민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실제로 지급해 온 곳이 지구상에 있다. 미국의 알래스카 주에서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1982년부터 매년 ’영구기금배당(Permanent Fund Dividend)‘라는 이름으로 모든 주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 2019년에도 알래스카 주민들은 각자 1,600달러의 배당금을 받게 된다. 이 배당금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알래스카에 거주하면 받는 돈이다.

 

알래스카주의 영구기금 배당금 사례는 기본소득 또는 시민배당에 관심있는 학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그러나 알래스카주의 사례를 얘기하면, 알래스카는 석유가 있어서 가능하지만, 석유같은 천연자원이 없는 곳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 는 식으로 얘기를 할 수도 있다. 또는 환경을 파괴하는 석유개발에서 나오는 이익을 배당금을 주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이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그러나 알래스카 모델의 핵심은 바로 석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오는 배당’이라는 것에 있다.

 

그리고 공유재는 석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유재는 어디에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석유같은 지하자원이 없는 주 중에 하나로 버몬트주가 있다. 개리 플로멘호프트(Gary Flomenhoft)라는 미국학자는 버몬트주의 공유재로부터 나오는 수익으로 시민배당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얼마를 지급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작게는 연간 1,972달러, 많게는 연간 10,348달러를 지급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각주:1]

그의 연구에서는 물, 깨끗한 공기, 광물, 숲, 물고기와 야생동물, 토지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인터넷, 방송주파수처럼 사회 전체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공유재로 보았다. 이런 인위적 공유재도 사회 공통의 재산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방송주파수가 처음부터 특정한 기업의 소유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공유재를 사유화(私有化)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에 대해, 환수하여 배당을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공유재>

공유재는 자연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J.K. 깁슨-그레이엄 등이 쓴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동녘)」에 따르면 공유재에는 아래와 같이 생물물리적 공유재 뿐만 아니라, 문화적 공유재, 사회적 공유재, 지식공유재도 있다.

- 암석, 토양, 햇볕, 물과 공기, 동식물 생태같은 생물물리적(biophysical) 공유재
- 언어, 음악적 유산, 성스러운 상징, 예술작품 같은 문화적 공유재
- 교육제도, 보건제도, 정치제도같은 사회적 공유재
- 토착 생태지식, 과학 및 기술적 진보같은 지식공유재

공유재가 법적인 소유권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의 공유재란 철학적, 윤리적인 개념이다. 누가 어떤 공유재를 법적으로 소유하는가의 문제는 열려있다.

 

4. 탈성장과 기본소득


간혹 기본소득이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해서 생태계를 더 파괴하게 될 수 있지 않느냐? 는 우려를 하는 사람도 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런 우려가 나오는 면도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기본소득없이도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고 되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은 거의 종교의 수준이다. 국가가 최고의 정책목표를 ‘경제성장률을 몇%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으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경제성장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은 미신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은 사람들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국내총생산(GDP)의 증가를 의미하는 경제성장이 이뤄져도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조사결과들이 보여주고 있다. 경제성장을 한다고 한들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 해고가 자유로워지고 비정규직이 양산된다. 대한민국이 그런 현실을 겪고 있다.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명분도 경제성장이다. 핵발전소를 더 짓는 명분도 경제성장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지 않으려는 명분도 ‘경제성장에 지장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성장주의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주의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경제성장없이는 먹고 살기 힘들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는데 있다. 언론을 통해서도 이런 얘기들은 끊임없이 유포된다. 그래서 소위 ‘진보’라고 하는 정치인들도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경제성장을 내세워야 표가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성장주의로부터 벗어나는 ‘탈성장’이 필요하지만,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일자리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불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이 존재하는 이상, 개발주의와 경제성장주의는 이 사회를 계속 지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생태적 전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다른 사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사람들 사이에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친환경농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농민에게 기본소득은 ‘전환을 위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관행농업을 하는 것보다 시장에서 얻는 소득은 줄어들더라도, 기본소득이 삶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둘째, 기본소득이 생태적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기후변화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기존에 도입하거나 논의된 정책으로는 실효성있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획기적인 방안이 없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은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귀농/귀촌을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귀농, 귀촌은 대도시로부터 인구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가져온다. 그리고 닥쳐올 에너지 문제, 먹거리 문제를 푸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처럼 인구가 대도시에 몰린 상황에서는 에너지 문제, 먹거리 문제 등에 대해 대안을 모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대도시는 외부에 에너지와 먹거리를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귀농이나 귀촌이 쉽지 않다. 특히 축산이나 시설농업(비닐하우스같은)을 하지 않고 농촌에서 어느 정도의 소득을 올리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친환경농업을 짓는 소농은 경제적으로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귀농, 귀촌을 했을 때 부딪히는 어려움 중에 하나는 당장에 현금수입이 없다는 것이다. 막상 귀농을 했다가도 기본적인 현금수입이 없어 어려움을 겪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경우도 생긴다. 모아놓은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귀농, 귀촌도 쉽지 않다. 아마도 매월 일정액의 현금수입이 보장된다면 귀촌, 귀농을 선택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청년들의 귀농, 귀촌도 활발해질 것이다. 농촌이라고 해서 농사만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복지, 문화, 환경, 교육 등과 관련해서 다양한 일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청년들은 농촌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기가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가장 확실한 농촌살리기 정책이고,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정책이다.

 

농민들 사이에서도 이미 양극화가 많이 진행되었다. 대규모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축산, 시설농업을 하는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은 크게 다가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년 동안 농사지어서 얻을 수 있는 현금수입이 연 1천만원도 안되는 소농들도 있다. 특히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가족의 노동력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소농들에게 기본소득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지급되어 귀농인구가 늘고 친환경농업을 하는 소농들이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일자리 정책이기도 하다. 앙드레 고르는 프랑스에서 유기농업이 활성화되면 농사를 전업적으로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5배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대한민국도 그럴 것이다.

 

5. 기본소득의 재원마련과 경제성장


한편 ‘경제성장이 지속되기 어려워지는데, 조세수입도 줄어들지 않겠느냐? 그럴 경우에는 기본소득 재원마련이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총조세수입은 경제성장과 직접 연동되는 것은 아니다. 조세란 과세대상과 세율 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경제성장과의 연동성이 높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경제성장이 제로 또는 감소하더라도 상속세를 강화하면 상속세 수입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전체 사망자의 2%남짓에 대해서만 상속세가 부과되고 있고, 대부분의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세가 과세되지 않는다. 이것을 개혁해서 비과세 범위를 축소하고 세율을 올리면, 상속세 수입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것은 경제성장과는 무관한 얘기이다.


부동산임대소득, 금융(이자, 배당)소득과 같은 불로소득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는 것도 경제성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불로소득은 경제성장 여부에 관계없이 발생하고 있고, 이런 부분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부동산가격 수준은 비교가능한 국가들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토지가액의 합계액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배가 넘는다. 반면에 핀란드같은 나라는 1배도 되지 않는다. 독일도 2배가 되지 않는다. 이미 대한민국의 부동산가격은 국민들의 소득수준에 비해서도 높아도 너무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보유세 수준은 미미한 편이다. 2016년 기준으로 민간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 총액은 8,417조 6,000억원이다. 그런데 그 해의 보유세 세수는 종합부동산세 1조 5,000억원, 재산세 10조 2,000억원, 기타 부가세 1조 7,000억원으로 합계 13조 4,000억원이었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0.16%에 불과했다. 이는 OECD 평균인 0.33%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각주:2] 문재인 정부가 2018년에 종합부동산세 세수를 1조 150억원 증가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너무 미약한 수준의 증세이다. 따라서 부동산보유세를 강화하면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이것역시 경제성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앞으로 경제성장이 안 될 것이므로, 조세를 통한 기본소득 재원마련이 어렵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또한 조세 이외의 재원마련 방법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등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현대화폐이론은 정부가 적자재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기존의 주류경제학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이 이론은, “자국 통화를 가진 나라는 재정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필요하다면 재정적자에 얽매이지 말고 화폐를 발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만약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세금을 올려 화폐를 걷어들이면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주류경제학은 무시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논의하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제안1 자율선택 기본소득
이제는 막연하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할 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도입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만 18~64세 사이의 시민들이 자신이 받을 기본소득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선택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자기 삶의 계획에 맞춰서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는 데 들어가는 재원의 규모가 그렇게 커지지 않으면서도 정책의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

 

만 18세가 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아동수당과 청소년수당 지급을 확대해 나가고, 만 65세가 넘은 사람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대상을 확대해 나간다(현재 기초연금을 지급 대상자는70%에 못 미치는데 100%로 늘린다). 그리고 만 18~64세는 ‘자율선택 기본소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자율선택 기본소득’의 유형은 훨씬 더 다양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세 가지 유형만 제안한다. 세 가지 유형 모두 한 개인이 받는 금액을 모두 합치면 5,400만 원이다. 실제로 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물가상승률 같은 것도 고려해야 하지만, 일단 그런 부분은 빼고 생각하자. 그것이야말로 기술자인 관료들과 전문가들에게 계산을 맡기면 될 문제이다. 주권자는 주권자답게 판단과 선택을 하면 된다.

 

유형 1은 3년 정도 동안에 최저임금의 70% 이상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 것이다. 가령 월 150만 원을 3년 동안 받는 것이다. 그러면 이 돈을 활용해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고, 귀농·귀촌처럼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유형 2는 9년 동안 유형 1에 해당하는 금액의 3분의 1 정도를 받는 것이다. 가령 월 50만 원을 9년 동안 받는 것이다. 이 돈을 활용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선택들을 할 수 있다. 더나은 주거에서 생활한다든지, 더 나은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유형 3은 적은 금액을 긴 기간 동안 받는 것이다. 월 10만원을 45년 동안 받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 돈을 활용해서 생활에 보탤 수도 있지만, 문화생활을 한다든지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한다든지 하는 선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정책을 시행하는 데 들어가는 돈의 규모는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규모이다. 만 18~64세 인구(2020년 기준으로 3,604만 1,376명, 통계청 장래인구추계)가 모두 월 10만 원씩을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에 연간 43조 2,496억 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사람은 3년 동안 큰 금액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눠서 받을 수도 있으므로 일정한 조정은 필요할 것이다. 시행 초기에 모두가 유형 1을 선택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면 유형 1, 2의 경우 초기에 그 수를 어느 정도로 제한하면 된다. 그럴 경우에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우선순위를 정하면 될 것이다.

 

또한 어떤 해는 50조 원, 어떤 해는 40조 원 정도로 발생하는 지출 규모의 차이는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시적 국채 발행 등을 통해서 조정하면 될 문제이다.

 

그렇다면 연간 43조 원 정도의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있는지만 검토하면 될 것이다. 연간 43조 원이면 대한민국의 명목ㅍ국내총생산 GDP 1,730조 원(2017년 기준)의 2.48% 정도이다. 이정도에 해당하는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예산낭비를 줄이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탈세를 없애고 약간의 증세만 하면 된다.

 

물론 지금 제안하는 방식보다 더 나은 기본소득(시민배당) 제도도 얼마든지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도입하자는 것, 그리고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그래야 제도의 도입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 현실성 있는 기본소득 도입 방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토론해도 좋다.

 

지금 제안하는 방안은, 2016년 총선 당시에 녹색당이 제안했던 노인(만 65세 이상), 청소년·청년(만 15~29세), 장애인, 농어민에게 우선적으로 월 30만 원 또는 월 40만 원을 지급하자는 정책보다 재원 규모는 줄이고 지급 대상은 확대한 것이다. 이런 수정을 제안하는 이유는 재원 규모를 줄여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지급 대상을 확대해서 기본소득의 정신에 보다 부합하는 제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물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만 18세까지의 사람에게는 아동수당이나 청소년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 현재 만 7세까지 월 10만 원이 지급되기 시작한 아동수당을 확대해나가면 될 일이다. 또한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재산·소득 기준에 따라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대상자가 현재 70%에 못 미치는데 그 지급대상을 확대하고 금액도 늘려야 할 것이다. 장애인연금은 별도로 지급 대상과 금액을 늘리고, 농민들에게는 농사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여 농민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 그럴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것보다 필요한 재원은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재원마련은 불가능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먼저 국민부담률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국민부담률이란 세금(국세,지방세)과 사회보장기여금(국민연금 보험료,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 등)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이 국민부담률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한 재원마련은 충분히 가능하다.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덴마크의 연도별 국민부담률 변화를 보면, 내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민부담률을 보여주는 덴마크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덴마크의 국민부담률은 1965년에는 29.1%였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덴마크는 1966년 29.7%, 1967년 30.2%, 1968년 32.9%, 1969년 32.5%, 1970년 36.9%로 국민부담률을 올려 1971년에는 39.4%까지 올렸다. 5년 만에 무려 10% 가까이 국민부담률이 늘어난 것이다. 지금도 덴마크의 국민부담률은 46.0%(2017년 기준)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인 34.2%보다 한참 높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민부담률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26.9%(2017년 기준) 수준이다. 몇 년 전보다는 올랐다. 1999년까지는 20%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아직까지 올릴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세금을 쓰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저항감이 심하다. 이 부분은 예산개혁과 정부조직 혁신을 통해 해결할 일이다. 어쨌든 ‘자율선택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아동·청소년이나 노인, 장애인, 농어민에게 지급될 수당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제안2 농민수당
2018년 12월 1일 기준으로 전체 농가는 102만1천 가구까지 줄었고, 농가인구는 231만 5천 명으로 줄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대한민국의 농업은 생존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농민들에게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농산물을 일정 가격으로 매입할 것을 보장하는 기초농산물 수매제가 있을 수 있고, 농사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해서 농민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농민수당제도가 있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두가지 모두 도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농민수당을 이미 도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국가가 지급하는 농민수당에 덧붙여서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농민수당(현재는 연 60만원 수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농민수당의 재원은, 기존의 농업예산을 조정해서 만들 수도 있고, 앞에서 설명한 재원마련방법을 통해서도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월 40만~50만 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농민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농산물개방정책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국가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셈인데, 이를 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농업은 여러 산업 중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생존 기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1. Flomenhopt, Gary. "Applying the Alaska model in a Resource-Poor State : The Example of Vermont", Exporting The Alaska Model " Adapting the Permanent Fund Dividend for Reform around the World. Ed. Karl Widerquist and Michael W. Howard.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2.104-105 [본문으로]
  2. 전강수, 앞의 책, 194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