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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하나님 뜻 안에서 내 일상이 재편될 수 있기를 / 양다은



양다은 간사(한국YMCA전국연맹)

 

코로나19.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가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이며, 무한 생산과 무한 소비에 기초한 경제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 철저한 위생 관리를 위해서 더 많은 일회용품을 생산하고 버린다. 어떤 카페는 개인 컵도 받아주지 않고, 배달음식은 늘고 일회용 마스크 소비도 계속해서 증가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새들의 두 발이 마스크 끈으로 묶여서 날지를 못하는 사진이 SNS에 돌아다닌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로 환경 문제에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생겼고 특히 ‘무한 소비’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미니멀리즘이다. 내가 필요해서 실제로 쓰는 물건만 쓰면서 사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소비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일회용품을 계속 사서 쓰는 것보다 대체 물품을 들고 다니면서 일회용품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미니멀리즘을 6개월 정도 시도해보고 있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시작할 때는 몰랐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덜 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물건을 없애는 일이다. (물건을 없앨 때는 기부하거나 팔거나 버린다.) 나는 여전히 쓰지 않는데 없애지를 못하고 있는 물건들이 많다. 나름의 이유로는 크게 3가지인데, (1) 언젠가는 쓸 것 같아서 (2) 비싼 물건이라서 (3) 선물 받은 것이라서 이다. 그런데 이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어떤 물건을 쓰지도 않으면서 없애지 못하는 건 그 물건이 내 삶에 가지는 이유를 제대로 못 찾기 때문이다. 감정, 기억, 의미가 약한 물건들은 쉽게 없앨 수 있다. 그런데 애매한 물건들이 있다. 어떤 기억들과 생각, 연관된 감정들을 일으켜 적잖게 내 마음을 끌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은 정리하는 것이 참 어렵다.

 

미니멀리즘 실천을 통해 물건에 엮인 생각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가 사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건들이 말하는 내 일상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나는 실제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있을까? 그 중심에 환경이 있을까? 그 중심에 하나님이 있을까?

 

주방에 실리콘 빨대가 있지만 쓰지 않으면 그건 환경보호의 노력이 아니라 환경보호 컨셉의 인테리어다. 침대에서 보이는 빨간 십자가와 성경책 역시 내 일상의 중심이 하나님인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일상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종교적 컨셉의 인테리어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번잡하고 중심이 약한 내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다. 최근 몇 주간 꾸준히 기도하면서 중심을 잡는가했는데 바쁘고 피곤한 스케줄이 진행되면서 다시 그 감각을 놓치고 티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어수선한 방에서 기계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다시 기도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쓰지 않는 물건들과 환경적이지 않은 물건들을 몇 개 더 없애야겠다. 기도했을 때의 충만함, 정리된 공간이 주는 정신적 상쾌함과 안정감, 그런 감각들도 다시 되찾아야겠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내 일상과 공간이 하나님 뜻 안에서 완전히 재편될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환경에 대한 강박적이고 율법적인 실천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기쁘게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크게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내 몸짓의 기도도 더 크게 들어주시지 않을까? 기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