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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대면하고 새로워지는 뉴노멀 신앙 / 강세희

 

강세희 (한국기독교장로회 한백교회, 옥바라지선교센터)

 

2020년 10월 11일, 팬데믹 선언 이후 7개월 만에 한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1단계로 격하했다. 나는 지난 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 주일성수에 대한 나의 생각과 교회의 실천에 물음표를 띄웠었다. 일상과 활동의 제약이 익숙해질 즈음 이 물음은 잠잠히 의식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다가 다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이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회 곳곳의 소식이 들려올 때면 이 물음은 다시 의식 위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적 안전망의 관심과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러한 갈망을 집약하는 단어로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나타난 듯하다. 사회 전반을 흔드는 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일상,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상성에 대한 상상력과 실천이 시대적인 요청으로서 여겨지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와 뉴노멀에 대하여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코로나19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어떻게들 주일을 지내고 계셨는지 궁금하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한백교회는 그동안 주일 예배의 방식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예배 영상의 구도를 요리조리 바꿔보기도 하고, 더 원활한 송출을 위해서 방송장비를 하나씩 갖추기도 했다. 비대면 예배에는 주의해야 할 것이 많았다. 마이크를 켜두면 나도 모르는 잡음이 들어가고, 심하면 하울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음소거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함께 읽고 부르는 시와 노래에서는 버퍼링 때문에 목소리를 모으기가 어려웠다. 설교 이후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함께 나누려고 할 때에는 오디오가 겹치지 않도록 충분히 기다려야 했다. 예배가 마쳐지고 나면 기술적으로 아쉬운 점이 항상 보였다. 이러한 비대면 형식으로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소통에서 오는 피로감과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인 ‘소통하고 나누기’를 비대면 예배를 통해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의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나는 복잡한 심경의 설문조사 통계를 보게 되었다.

 


신앙 분야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강화해야할 사항” 이민형
⌜기독교 사상⌟ 2020년 10월호 p.43


많은 교회가 예배 형식을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고초들을 생각하면 통계 결과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를 살아가야 할 교회가 강화해야 할 최우선의 것이 정말 비대면의 온라인시스템과 콘텐츠인 걸까? 코로나19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지금도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 노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감염 대유행의 끄트머리에서 코로나19는 사회적 방역체계에서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에게 향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사람들이 다중적인 고통을 겪고,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사회의 정상성에 대한 우리들의 패러다임이 어떠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난 7개월간의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팽팽한 신경전 사이에서 우리의 신앙은 어떠했는지 돌이켜보자면, 씁쓸할 뿐만 아니라 암담하다.

 

예배당의 문이 열리고 다시 우리는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교회들은 비대면 서비스를 당분간 동시에 유지하는 듯하다. 교회는 위기 상황 속에서 비대면과 일 방향 소통 방식으로 강화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불편하지 않게 소비할 수 있는 구조의 틀로 도시와 정상성의 모델로 구축하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존재들을 향한 나눔과 섬김이라는 기독교의 본질과는 한참 멀어지고, 효율적이고 실리적인 소비에서 신앙의 실천이 그쳐질지도 모른다. 기독교 신앙은 오래전부터 노멀로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의 곁에 다가가는 신앙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착취와 통제의 구조 속에서 억압되고 소외된 존재들의 삶에 대면해야 한다. 대면하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앙.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자 교회의 뉴노멀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