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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코로나19 이후 종교의 역할 / 하성웅

 

하성웅(한국기독청년협의회 총무)

 

코로나19 이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진단하듯, 분명한 것은 코로나 이전의 세계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전과는 분명한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일상의 많은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마스크 없는 일상생활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비대면 온라인을 활용한 업무, 재택근무가 사회전반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대규모의 인원이 모이는 행사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고, 신체적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인사도 사라졌습니다. 사회문화, 일상 전반에서 이미 변화는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숙고해야 할 것은 코로나19가 이러한 일상적이고 표면적인 변화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추동한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목격한 것은 단지, 우리들의 표면적인 삶의 방식의 변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우리사회를 지탱하던 자본의 수레바퀴가 비거덕 거릴 때, 인간의 삶이 얼마나 속절없이 흔들리는지 보았습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은 어려워졌고, 이는 극심한 경제침체로 이어졌습니다. 견고하던 자본주의 시스템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상황 앞에서, 근본적인 자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염병의 두려움과 공포가 불러내는 타인을 향한 혐오와 폭력도 보았습니다.

 

하여 코로나19는 우리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어떻게 다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구성해야하는가?”, “어떤 토대 위에서 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서, 가장 제가 주목하고 싶은 키워드는 공존입니다.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인간으로 하여금 함께 존재하는 방식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승자독식, 과도한 경쟁, 무한한 소비욕망에서 벗어나, 함께 공존하는 경제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주문합니다. 단절이 아닌 소통과 협력의 사회시스템을 만들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공존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봅니다. 변화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존의 관습과 가치관, 삶의 방식이 견고하게 자리 잡은 상황에서, 변화의 요청은 거부당할 수도 있습니다. 표면적인 변화는 받아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강조되는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내면의 영적 차원에서 변화를 추동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시적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무엇보다도 공존의 실현,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 요구되는 현실 속에서, 종교는 조건 없는 타자를 향한 사랑과 환대, 평화의 방식, 대안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더불어, 그것은 교리와 강령 같은 당위적이거나 논리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영적 감동에 의해서 제시되어야 합니다.

 

안개 자욱한 거리를 걷는 심정으로, 우리는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 상례화 된 예외상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어주며, 공존의 가치를 지향하는 가운데, 함께 길을 찾아나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