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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뉴노멀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갔던 사도 바울 / 한수현

 

한수현(감리교신학대학교)

코로나가 한참인 시절, 10시가 넘으면 유령도시로 변하는 서울의 한 개봉관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TENET)을 보았다. 저녁 9시에 시작하는 극장엔 나를 포함 단 3명의 사람만이 앉아있었다. 테넷은 베트맨 시리즈로 유명한 놀란 감독이 20년 동안 조금씩 완성한 각본으로 감독한 영화인데 시간여행을 중심으로 다루는, 과거를 변화시켜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류의 줄거리이다. 영화를 보면 인벌젼(Inversion)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이전의 시간에 대한 보통의 영화들이 현재를 바꾸기 위해 타임머신을 이용,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가 주종이었다. 그러나 인벌젼은 어떤 문을 통과한 물체는 시간을 거꾸로 역행하게 되는 기술이다. 그 물체에는 인간도 포함이 된다. 인벌젼이 걸린 사람은 과거에서 현재가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역행한다. 따라서 모든 물리 법칙을 반대로 경험하게 된다. 화염속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몸이 얼어붙고 운전을 하면 차는 거꾸로 움직인다. 인벌젼 된 인간은 거꾸로 흐르는 시간속의 공기를 호흡하지 못하므로 자신의 시간에서 가져온 산소를 호흡해야 한다.

 

아마도 감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듯 하다. 과연 미래가 현재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질까? 현재의 원인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일까? 감독은 미래를 위한 하나의 선택이 장및빛 미래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은 순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수많은 변수와 불확실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결과와 혼돈속에 붙여버릴 확률이 더 클 수 있다. 테넷은 바로 이러한 인벌젼이란 새로운 개념의 기술을 보여줌으로 미래를 바꾸고자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을 감행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지 않다.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이미 과거에 선택한 것이며 지금 바꿀수 있는 가능성에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파국으로 갈 뿐이다. 우리는 점점 숨쉴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모든 삶의 법칙들은 이미 무너져 버렸다.

 

희망은 과거에 사라진 현재의 가능성을 다시 되살리는 길 밖에는 없다. 이를 감독은 인벌젼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거를 되살리는 사람은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는 무모한 모험을 해야하고 그것은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난관과 고통의 길이 될 것이다. 즉, 뉴노멀의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노멀이 파괴된 과거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희생이 필요한 시대란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거리는 마치 영화의 연속처럼 황량하기만 했다. 코로나에 경도된 나의 시각이 영화를 과장해서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생각한 바울의 말이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고전 7:24, 새번역)

 

바울은 새로운 시대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밝아왔음을 확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뉴노멀’ 시대에 새로운 삶을 말한 ‘예언자’가 아니었다. 몰락해가는 당시 제국의 운명을 안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 ‘사도’(메신저)였다. 변하지 않은 삶의 처지를 끌어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라고 말하는 모진 사람이었다. 전쟁과 폭력의 시대, 욕심과 미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변화는 오로지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사랑’으로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라 말하는 무모한 자였다. 인벌젼(Inversion), 모든 처세와 윤리의 법칙을 무시하고 거꾸로 오르는 자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바울이 바꾸고자 한 것은 미래가 아니다. 바로 현재이다. 과거에 여러 선택들로 결정해 놓은 우리의 현재를 지금 바꾸는 것, 그것이 바울의 스승인 예수가 말한 회개(메타노이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