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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신학 1기/뉴노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

지금 할 일이 있다면? 생각일 뿐. / 김조년

 

김조년(한남대 명예교수, 퀘이커)

 

모두가 다 지금이 살기가 어렵고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한다. 전망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의 경로와 방향 그리고 기한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고, 아직까지 백신이 나오지 않아서 모두 불안해한다. 인간의 모든 삶, 정치, 경제, 산업, 교육, 종교, 군사,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이제까지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들이 혼란스럽게 질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와 인류의 문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길면 분명히 달라지겠지만, 짧게 끝나면 잠깐 움찔하다가 다시 이제까지 오던 우려되는 길을 그냥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상황이 길든 짧든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


물론 물질이 풍요하지 않으면 삶이 어렵겠다. 그러나 풍요한 물질이 곧 의미 있고 제대로 된 삶을 이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명과정은 언제나 물질을 끝없이 창출하는 데로 흐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어려운 상황은 바로 그것을 잠깐 중단하고 생각하여 보라는 의미라고 본다. 그러니까 정신과 영혼의 문제도 함께 생각하고 조화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과 영원을, 정신과 물질을, 사람과 다른 만물을 한 체계 속에 넣어 깊이 생각해 보라는 뜻 아닐까?


그러려면 일단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당연해’라고 말할 것은 없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제나 ‘당연하다’고 하는 것들은 문화, 상황, 시대, 장소에 따라서 판단되는 것들이었다. 그 말은 언제나 모든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상황은 정말 이렇게 살아도,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인가를 심각하게 따져보고 생각하여 보라는 뜻이란 말이다. 모든 나라 문화들이 추구했듯이, 풍요로운 물질은 꼭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어렵게 하고만 가능한 것일까? 한 나라의 발전과 의미 있는 삶은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모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야 하는 것인가? 나 말고 다른 모든 존재는 나의 적이거나 내가 잘 살기 위하여 마구잡이로 이용하고 써먹어도 되는 하찮은 존재인가? 자연은 무한히 파먹기만 해도 되는 것인가? 아무리 인간이 자연을 파먹어도, 괴롭혀도 자연은 스스로 말끔하고 깨끗한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인가? 사람이 적을 때는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팽창할만큼 팽창한 지금, 파괴와 착취의 기술이 첨단을 달리는 지금은 인간은 더 이상 자연스런 자연의 일부가 아니게 됐지 않은가? 자연은 무한하지 않으며, 인간의 도움과 철저하고 주의 깊은 보호를 받지 않으면 지속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지 않는가? 할 일은 하나 밖에 없다고 본다. 생각과 삶의 전환의 혁명이다. 함께 살기 위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그 길을 찾을 때라고 본다.


찾는 이에게 그 길은 열려 있다고 하지 않던가?! 너무 풍족해서 펑펑 써도 부족하지 않게 생산해도 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많이 생산되어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것들이 어떤 맘을 가지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이나 다른 어떤 생명체라는 것만 느낌과 감정과 생각과 뜻을 품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무생물이라 여기는, 그냥 단순한 물질이라는 것 속에 무한의 기운과 영성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이제는 생물-무생물, 물질-정신, 삶-죽음, 순간-영원 하는 것들을 분리하고 구별하던 버릇을 고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모든 것들은 한 체계 안에, 하나로 있는 것이 아닐까?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새 길이 열려있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개인이나 단체나 새롭게 생각하고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언제나 문제 속에 해답을 품고 있지 않던가? 언제나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평안한 맘으로 대처할 일이다.(2020년 10월 30일)